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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복음묵상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2022.12.14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작성자송진호 대건안드레아 청년회 회장|작성시간22.12.14|조회수33 목록 댓글 0

https://youtu.be/kX-jrxRlRUg

#양승국_스테파노_신부님

12.14.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 학자 기념일


<요한 사제의 눈은 언제나 개혁과 쇄신을 향한 불꽃으로 이글거렸습니다!>

하느님과 교회, 세상 앞에 장엄하게 청빈 서약을 한 수도자로서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과연 나는 오늘 진정으로 청빈한가? 라고 자문해보니, 너무나 부끄러운 나머지 할 말을 잃습니다.

더 이상 가난하게 살지 않은 동료 수도자들의 한심한 모습이 안타까웠던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한탄 조로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청빈은 우리 축성생활자들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방벽입니다. 고급 승용차에, 최첨단 기기를 장착하고 살아가는 사제, 수도자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자전거를 쌩쌩 타고 다니시는 비서 신부님의 모습이 정말 멋져 보입니다.”

오늘 축일을 맞이하는 십자가의 성 요한 사제(1542~1591)가 살아가던 중세 시대나 지금이나 물질과 안락한 삶에 대한 애착은 수도자들에게 있어 큰 유혹꺼리로 작용했던가 봅니다.

당시는 수도 생활의 부흥기를 지나 일종의 쇠락기에 접어든 시기였습니다. 더 이상 수도자들에게 있어 완덕에 대한 열망이나 하느님 중심의 삶은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타성에 빠진 수도자들의 얼굴은 냉랭했고, 게을러빠진 수도자들은 자꾸만 회칙을 완화시켰습니다.

이를 보다 못한 충실하고 올곧은 가르멜 수도자 요한은 원칙대로! 를 강조하며 고난과 형극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안토니오 수사를 비롯한 마음이 맞는 수도자 몇 명과 더불어 엄격한 금욕과 극기, 기도와 고행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안락하고 쾌적한 대 수도원 건물을 뒤로하고 다리를 뻗기도 힘들고 서 있기도 힘든 작은 방에서 함께 생활했는데, 여기저기 비가 새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다는 얼굴로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지냈습니다.

외출을 할때는 신발도 신지 않고 맨발로 다녔습니다. 이러한 쇄신된 삶을 살아가면서 끝끝내 회개하지 않는 동료 수도자들을 회개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자연스레 얼굴과 뱃속에 기름이 가득한 게을러빠진 동료 수도자들에게 미운털이 깊이 박혔습니다. 자신들의 비행이나 과오는 덮어둔 채, 갖은 방법으로 요한 사제를 괴롭혔습니다.

총회가 개최되자 요한 사제를 오해한 총장은 그를 톨레도 수도원의 깊은 지하 감방에 가두었습니다. 그가 총회에 나타나서 어떤 행패를 부릴지 몰라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 사제는 갖은 학대와 모욕을 묵묵히 견뎌냈습니다. 사악하고 매정한 동료 수도자들을 향해 일언반구도 항변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바꾸었습니다. 부족한 내게 겸손의 덕을 쌓게 하는 은인!

이토록 탁월한 성덕은 오래가지 않아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머지않아 요한 사제의 결백과 인품이 알려졌고, 비오 5세 교황과 그레고리오 13세 교황은 그의 이상을 추구하는 수도자들을 위한 특수한 가르멜회를 정식으로 인준했습니다.

혈기왕성하던 젊은 시절을 수도회 개혁에 몸 바친 요한 사제의 눈은 언제나 개혁과 쇄신을 향한 불꽃으로 이글거렸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의 삶도 조금 바뀌었습니다. 좀 더 너그럽고, 좀 더 풍요로워졌습니다. 자신을 다스리는 데는 엄격했지만, 타인을 대하는 데는.ㄷ 한없이 관대해졌습니다. 그렇지만 수도회 개혁과 쇄신을 향한 그의 노선을 단 한치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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