덧칠
심재숙
매일 오가던 길목, 유난히 허름해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상가 건물 하나가 어느 날 거대한 가림막 뒤로 자신을 숨겼다. 몇 달간 이따금씩 들려오던 둔탁한 파열음과 망치 소리는 건물이 오랜 세월 견뎌온 낡은 흔적을 허물고 뼈대를 세우는 과정이다. 한때는 그 거리에서 가장 빛나는 얼굴이었을 테지만 속절없이 흐르는 시절의 무게를 비워내고 시대에 맞추어 거듭나기 위해 혹독한 진통을 겪는 중이다.
가림막이 걷힌 자리에는 전과 너무나 다른 생경하고도 멋진 건물이 서 있다. 비바람에 깎여나갔던 거친 시멘트 외벽은 매끄러운 대리석으로 마감되고 아귀가 맞지 않던 낡은 창틀 대신 맑은 통유리가 눈 부신 햇살을 머금고 있다. 허물어짐의 위기를 견디고 새 생명을 얻은 그 눈부신 광경을 한참 동안 올려다보며 자연스레 내 삶의 궤적을 그 위에 가만히 포개어 보았다.
사람의 일생 또한 아무것도 없는 빈터에 자신만의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는 숭고한 건축의 과정이 아닐까. 내게는 '교직'이라는 이름의 터가 그러했다. 그곳에 단단한 주춧돌을 놓고 아이들과 함께 지어 올린 긴 시간은 한 편의 동화 같았다. 교실 안을 꽉 채우던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세상에서 가장 다채롭고 예쁜 색깔로 꿈을 칠하던 선생이었다. 하얀 분필 가루가 햇살에 부서지던 그 시절 아이들의 반짝이는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은 아마도 가장 화려하게 채색된 아름다운 색깔이었으리라. 그때는 그 순수한 색채와 견고함이 영원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영원한 것은 없는 법이다. 뜻하지 않게 맞은 명예 퇴임으로 정든 교정을 떠나며 비로소 화려했던 내 인생의 건물이 낡아가고 있음을 느꼈다. 아이들과의 동화 같던 시간을 등지고 낯선 세상 앞에 섰을 때 사람들의 발길이 끊기고 손볼 곳만 무성해진 오래된 건물처럼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지난 시절의 빛바랜 영광만을 반추하며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설주가 삐걱거리고 외벽의 칠이 벗겨질 때 삶은 우리에게 '리모델링'의 청사진을 펼칠 것을 요구한다. 내 삶에도 기꺼이 가림막을 치고 허물을 벗어내는 덧칠의 시간을 갖기로 마음먹었다.
깨진 도자기의 틈새를 옻칠로 메우고 그 위에 금가루를 뿌려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는 '킨츠기'라는 일본의 전통 수리 기법이 있다. 흠집을 감추어 버리는 대신 오히려 황금빛 선으로 강조하여 이전보다 더 고유하고 단단한 작품으로 빚어내는 것이다. 나의 리모델링 역시 과거를 허물어 완전히 지우는 것이 아니다. 교단에서 아이들을 품어내며 길렀던 인내와 다정함이라는 오래된 골조 위에 '스마트폰 활용지도사'라는 새로운 시대의 쓸모를 금가루처럼 덧입히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시작된 노인 일자리 사업은 내 인생 건물의 가장 눈부신 이정표가 되고 있다. 거대한 칠판 앞에 서서 분필을 쥐던 내가 이제는 작은 액정 화면 앞에 서서 시니어들의 서툰 손길을 이끈다. 기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그들의 두려움을 녹여내는 것은 다름 아닌 수십 년 교직에서 다져진 따뜻한 경험들이다. 아이들에게 세상을 읽는 법을 가르치던 언어는 이제 어르신들을 디지털 세상으로 안내하는 친절한 접속 코드로 변했다. 낡았다고 생각한 나의 외벽이 시니어들과의 교감을 통해 황금빛 킨츠기처럼 아름답게 변하는 중이다.
스마트폰을 강의하는 일은 시니어들의 인생 건물에 '소통'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통유리창을 내어주는 멋진 작업이라 생각한다. 쓸쓸하던 어르신들 거실에 와이파이라는 보이지 않는 길이 열리고 디지털의 빛이 환하게 쏟아지게 만든다. 화면을 보며 터뜨리는 그들의 환한 미소가 나의 외벽을 반짝이게 한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반듯하게 지어진 새것만이 좋은 줄 알았다. 하지만 황혼의 나이 앞에서 비로소 알게 되는 게 있다. 비바람에 깎이고 수없이 고쳐 칠하면서도 자신만의 고유한 향기와 결을 지켜낸 낡은 건물이 훨씬 깊고 아늑하다는 것을. 사람 또한 마찬가지다. 켜켜이 쌓인 세월의 흔적을 부정하지 않고 그 위에 시대의 새로운 배움을 겸손하게 얹어낼 때 인생은 비로소 완성의 미학을 얻는 게 아닐까.
삶의 리모델링은 한 번으로 끝나는 마침표가 아니다. 어제의 명예라는 낡고 무거운 벽지를 과감히 뜯어내고 오늘이라는 현장에서 '봉사와 나눔'이라는 투명한 코팅제를 쉼 없이 바르는 진행형의 과정이다. 이제 낡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겠다. 육신의 벽면에 때가 타면 연륜이라는 지혜로 닦아내면 되고, 열정의 색이 바래면 시니어들과 나누는 다정한 온기로 다시 덧칠하면 될 터이다. 중요한 것은 건물의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여전히 멈추지 않고 뜨겁게 박동하는 삶의 열망이리라.
리모델링을 마친 멋진 건물이 많은 이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내 2막 인생도 누군가에게 희망의 이정표가 되면 좋겠다. 동화 같던 교직에서의 뼈대 위에 시니어들과의 의미 있는 시간이 만나 새로운 인생을 덧칠하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만의 인생 건물을 짓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