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8일 토론 때 ' 전환적 표현과 비전환적 표현'에 관한 설명이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전환적 표현과 비전환적 표현
‘전환적轉換的 표현’과 ‘비전환非轉換的 표현’이란 말은 문학 장르의 구분 기준으로 거론되는 용어이다. 조동일 교수가 주장한 이론이다. 그는 문학 장르를 서정, 서사, 극(희곡), 교술 네 종류로 분류했다. 서정, 서사, 극은 전환적 표현(픽션)으로, 교술은 비전환적 표현(논픽션)으로 규정했다.
전환적 표현은 꾸며낸 허구의 세계를 말한다. 다시 말하면 ‘체험과 생각을 허구적 장치로 바꾸어(전환) 표현하는 것’이다. 작가의 실제 경험이나 생각을 그대로 노출하지 않고 문학적 장치(허구, 상상력, 인물, 비유 등)를 통해 다른 형태의 세계로 전환해 표현하는 방식이다. 시, 소설, 희곡이 여기에 해당한다.
비전환적 표현(교술)은 있었던 일을 기록한 논픽션의 세계를 의미한다. 즉 체험과 세계를 가공 없이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허구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작가가 현실에서 직접 겪은 사실(체험)과 생각을 변형하거나 바꾸지 않고(비전환) 솔직하게 드러내어 기록하는 방식이다. 수필, 일기, 서간문, 전기, 기행문, 사설, 칼럼, 비평, 평론이 여기에 해당한다.
문제는 교술이 실용성과 기록성에 무게를 둔 글쓰기이고 경험을 재구성, 재창조하여 드러내기 때문에 문학이기도, 문학이 아니기도 하는 속성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문학의 장르 구분과 수필의 장르적 위치를 재어 보기 위해 다른 분류법과 비교해 본다.
국문학자 김수업은 우리 문학을 노래 문학, 이야기 문학, 놀이 문학, 어름 문학 4대 갈래로 구분했다. 이를 조동일 교수의 분류법으로 맞추어보면 각각 서정(시), 서사(소설), 극(희곡), 교술에 대응하는 범주이다.
어름 문학은 수필 이외에도 일기, 편지, 제문, 행장, 전기, 기행, 만필, 감상, 비평, 평론 등과 같은 실용을 목적으로 하는 글이라고 한다. 어름이란 말은 문학과 비문학이 뒤섞여 있는 중간의 갈래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그는 문학과 비문학의 기준을 허구성에서 찾고 있다. 허구성이 문학의 가장 본원적 속성이라고 전제한다. 네 번째 갈래 어름 문학은 ‘있을 수 있는 세계(상상의 세계)’가 아닌 ‘있었던 세계(일상 세계)’를 다룬다는 점에서 문학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용성과 기록성에 무게를 두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애초에는 실용과 기록 기능에서 시작되었으나 차차 비유적 기능이 생겨나면서 문학적 요소를 갖추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바로 비유적 기능을 문학성의 핵심 기능의 하나로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르 구분의 조동일, 김수업 두 사람 이론을 다 살펴보아도 수필, 비평, 평론을 제외한 다른 글 즉 일기, 편지, 전기 등은 사실에 기초한 기록에 바탕을 둔 비전환적(비허구적) 글쓰기란 점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다시 말하면 문학이라고 할 수 없다는 점을 누구나 인정한다. 하지만 수필을 동일한 선상에서 보기는 어렵다. 지금의 수필은 이미 비유적 기능과 상상력(상상의 허구성)을 통해 ‘전환적 표현’방법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필의 허구 문제는 쟁점으로 남아있다. 한때 수필에서 허구(있을 법한 세계)를 수용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지만, 그렇게 하는 순간 수필은 비허구라는 장르로서의 본질적 존재 이유를 상실한다. 단편 소설보다 더 짧은 소설 같은 가공의 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상으로서의 허구성은 수필의 문학적 장치로 수용된다고 보는 것이 보편적 주장이다. 그것마저 부인한다면 문학으로서의 수필 장르는 소멸하고 만다.
그렇다면 수필이 문학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실을 기록하는 교술 문학이라고 해서 사실을 직설로만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 문학성과는 멀어진다. 비유적 기능을 통한 예술로서의 형상화를 지향해야 한다. 비유적 기능은 단순히 문장의 수사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직유, 은유, 환유, 의인화 등 단락과 글 전체의 층위에서 유비 구조를 얼마나 문학성 있게 드러내느냐의 문제다. 수필이 비유적 기능이 약하고 형상화가 어렵다고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허구의 장르와 마찬가지로 작가 개인의 문학적 역량에 의해 문학성이 담보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로도 소설로도 드러내기 어려운 세상의 일을 그려내는 것이 수필의 몫이다.
장르 구분 층위에서의 허구, 비허구, 전환적 표현, 비전환적 표현의 담론과는 달리 최근 구조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언어 자체가 허구라고 한다. 인간이 구사하는 언어로는 이 세상의 물체나 사실을 원래의 본성 그대로 표현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인간은 이 세상을 알지 못한다는 전제다. 사물의 이름은 인간이 식별하기 위해 붙여놓은 기호체계일 뿐 본질은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수필의 허구 문제를 본다면 크게 논쟁할 일도 아닐 것 같다는 생각도 한다. 인간의 언어 자체가 허구니까. 명백한 거짓이나 날조가 아닌 한 사실에 바탕을 둔 상상력의 허구성을 통한 수필 창작은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문학이 되기 위해서다. 만약 사실과 동떨어진 명백한 허위를 상상력의 산물이라 주장한다면 그건 작가적 양심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