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하다가 임의로 늘였습니다. 수기 교육 현장 공모가 A4용지 약 5장이라서 공부삼아 적어 보았습니다.
「흠집 앞에서」
안명환
1. 신학기가 시작되면 학교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작은 소동을 만난다. 다툼이 있고 울음도 있다. 그리고 그 소동들은 저마다 작은 흠집이 되어 아이들의 마음에 남는다. 교사들은 그런 흠집이 깊어지지 않도록 하루 종일 학교 곳곳을 살핀다. 올해 봄에는 자전거가 문제였다. 1학년 학생들 사이에 자전거 통학이 부쩍 늘면서 학생부에서는 매일 같이 안전모 착용과 지정된 장소 보관을 방송했다. 하지만 아직 젖 볼살이 남은 아이들은 어른들의 걱정보다 친구들과 함께 달리는 즐거움에 마음이 더 가 있는 듯했다.
2. 생각지도 못한 일은 아주 사소한 데에서 시작되었다. 지킴이 어르신께서 교문 담벼락에 기대어 세운 자전거 한 대를 화단 석축 옆으로 잠시 옮겨 놓았다. 지정된 장소도 아니거니와 통행에 방해가 되니 등교 시간에 쫓긴 아이가 곧 제자리로 옮겨 놓을 줄 아신 모양이었다. 심술궂은 봄바람에 그 자전거가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이에 따라 자전거 프레임 한쪽에 길게 흠집이 생겼다. 하굣길이 되어서야 확인한 아이는 한동안 흠집 난 프레임을 만지작거렸다. 결국 학부모 항의 전화가 걸려 왔다.
3. 그 자전거는 무려 삼백만 원이 넘는 고가였다. 학부모는 단순 수리가 아니라 부품 전체 교체를 요구했다. 아이가 애지중지하던 물건이라며, 며칠째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자전거를 사기 위해 용돈을 모으고 주말마다 아르바이트하듯 집안일을 거들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담임교사가 먼저 전화를 걸어 학교의 입장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학생부장도 나섰다. 지정 장소가 아닌 곳에 세워 둔 데에도 책임이 있다는 점을 조심스레 설명했지만, 학부모의 마음은 좀처럼 누그러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교감이 전화를 넘겨받았다. 원칙적으로 자전거 통학은 사전 승인을 받은 경우에만 허용된다는 점까지 설명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래도 학교 안에서 일어난 일 아닙니까?”
짧은 한마디였지만 단단한 빗장 같았다. 누구도 더는 마땅한 말을 찾지 못했다. 모두의 시선이 하나둘 내게로 향했다.
4. 문득 아침에 스쳐 지나간 지킴이 어르신 얼굴이 떠올랐다. 평소와 달리 웃음기가 없었다. 올해 여든을 넘기셨지만 언제나 모자를 벗어들고 먼저 인사를 건네시던 분이다. 비 오는 날이면 우산 없는 아이를 교실까지 데려다주었고, 운동장에서 다친 학생이 생기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응급 도우미가 되어주곤 했다. 급히 교문 옆 사무 공간으로 향했다. 어르신은 작은 의자에 걸터앉아 모자를 만지작거리며 먼 곳만 바라보고 계셨다. 평소처럼 허리를 펴고 앉아 계신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괜한 짓을 했제. 교장선생님 뵐 면목이 없심더....”
말끝이 흐려졌다. 어르신은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그때마다 주름진 손이 모자챙을 더 세게 움켜쥐었다. 작은 활동비를 받으며 학교 일을 돕는 분께 수십만 원의 배상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학교에 마땅한 보상 규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학부모의 단단한 목소리와 어르신의 풀이 죽은 모습이 뒤엉키자, 가슴 한쪽이 먹먹해졌다. 그날 이 일은 단순히 자전거 흠집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5. 재차 학교의 사정을 아무리 설명해도 학부모의 빗장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 결국 여기저기 자투리 예산을 긁어 변상하는 쪽으로 마무리했다. 마음 한구석이 씁쓸했다. 솔직히 그 순간만큼은 아이와 그 부모가 너무 야속했다. 그날 이후 학생부에는 자전거 통학 규정을 더욱 엄격히 적용하라고 지시했다. 안전모 미착용, 지정 장소 위반은 더 이상 눈감아주지 않겠다고도 했다. 어쩌면 화풀이였는지도 몰랐다.
6. 그 이후 자전거 통학 관리는 한층 까다로워졌다. 때마침 학교 앞 재개발 구간에 임시 도로까지 개통되면서 아침 등굣길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출근하면 등교 완료까지 늘 신경이 곤두섰다. 학생부 교사들이 번갈아 서고, 등교 지도 인원도 늘렸다. 아이들은 투덜거렸지만, 규칙은 이전보다 훨씬 엄격해졌다. 어쩌면 자전거 흠집 하나가 남긴 뒤끝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침마다 교문 앞을 분주히 오가는 지킴이 어르신의 모습도 자꾸 눈에 밟혔다. 차와 자전거 사이를 오가며 아이들을 챙기는 뒷모습이 전보다 더 작아 보였다. 주름이 늘어난 것인지, 괜히 내 마음이 그렇게 보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7. 올 신입생들은 유난히 자전거 타기를 좋아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등·하교하는 모습이 제법 신이 나 보였다. 안전모 착용이며 지정 장소 보관 같은 규칙도 처음 걱정과 달리 제법 잘 지켰다. 번잡한 학교 네거리에서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는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점심시간만 되면 자전거 보관소에는 몇몇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그 가운데는 지난번 자전거 흠집의 주인공도 있었다. 아이는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자꾸만 프레임의 긁힌 자국을 손끝으로 쓸어보곤 했다. 친구들이 어깨를 툭툭 치며 웃음을 건네도 시선은 좀처럼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그러다가는 변속기어를 만져 보고 브레이크를 눌러 보며 타이어 공기압까지 살폈다. 아이들은 저들끼리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나누는 듯 수군거렸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동안 자전거에 난 흠집보다 아이 마음에 남은 흠집이 더 크게 느껴졌다.
8. 그 모습을 보며 규정을 어긴 것은 사실이지만, 자전거에 난 흠집을 바라보며 속상해했을 아이의 마음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배려는 아예 없고 오직 아이를 감싸며 학교를 향해 날을 세웠던 부모에 대한 원망도 조금은 옅어졌다. 그때 문득 오래전 어른들이 하시던 말이 떠올랐다.
“자식 새끼 인간 만들라 카먼 부모 속부터 문드러지는 기다.”
젊을 적엔 그저 흔한 어른들의 훈계쯤으로 들렸다. 그런데 살다 보니, 부모가 조금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하며 살아야 자식의 숨통이 트인다는 말이 괜한 소리는 아니었다. 그날따라 그 말이 자꾸 가슴 한쪽을 툭툭 건드렸다.
9. 아이들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학교의 일은 참 단순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학교는 원칙으로 움직여야 하지만 부모의 마음은 늘 원칙보다 먼저 달려간다. 자식 일이라면 작은 흠집 하나도 크게 보이고, 남들은 지나칠 일에도 가슴이 먼저 반응한다. 그래서 학교는 늘 어려운 줄타기를 한다. 모두를 위한 기준을 세우면서도 그 기준 밖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사정을 놓치지 않아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이란 결국 원칙과 이해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10. 간만에 봄비가 흠뻑 내린다. 등교 시간부터 학생부장의 생활지도 방송이 교내 스피커를 타고 찌지직 울려 퍼진다. 점심시간이 되자 복도는 아이들 재잘거리는 소리로 들끓는다. 창밖 빗소리와 복도의 왁자지껄함이 묘하게 뒤섞였다. 신록이 짙어가는 계절과 아이들의 북적거림이 희한하게 닮은 듯하다. 모처럼 여유가 찾아온 듯했다.
11. 교장실 문이 벌컥 열린다.
“교장 선생님, 큰일 났심더.”
학생부장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와 점심시간 매점 앞에서 학생끼리 시비가 붙었고, 한 학생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말다툼이었는데 감정이 격해지며 주먹이 먼저 나갔고, 결국 한 학생의 코뼈가 내려앉을 정도로 큰 싸움이 된 모양이었다. 순간 한숨이 먼저 나왔다. 오랜만에 감상에 젖어있었는데 학교장의 현실은 늘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12. 내용을 파악하고 관련 학생 이름을 듣는 순간 잠시 멈칫했다. 바로 얼마 전 그 자전거 일로 학교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그 아이가 관련자였다. 순간 속으로 못난 생각이 스쳤다. ‘그래, 이번에는 니도 한번 당해봐라.’ 속이 시원했다. 참 못난 생각이었다.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솔직했다. 교장이라는 자리가 사람을 늘 너그럽게 만드는 건 아니었다. 마음속 어딘가에는 여전히 다 내려놓지 못한 옹졸한 인간 하나가 웅크리고 있었다.
13. 잠시 뒤 학생부장이 재차 교장실로 왔다. 다친 학생의 보호자와 통화한 내용을 전해 주었다. 학부모는 아이 상태와 향후 절차를 묻던 끝에 한참을 망설였다고 한다. 그리고 통화를 마무리하며 조용히 이런 말을 남겼다고 했다.
“그래도.... 애들 일 아닙니까. 크게만 안 됐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부장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오래 귓가에 맴돌았다.
14. 마음이 묘하게 흔들렸다. 얼마 전 자전거 일로 학교를 몰아세우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그제야 자전거 프레임의 작은 흠집 하나에도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던 부모의 마음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날 학교를 향해 단호했던 것도 결국은 아이를 향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 역시 부모였다. 아이들을 키우며 크고 작은 일에 마음을 졸였고, 때로는 감정을 앞세워 학교에 전화를 걸었던 적도 있었다. 문득 오래전, 자식 일 앞에서 평정심을 잃고 목소리를 높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부모라는 이름 앞에서는 누구나 조금씩 흔들리는 존재인지도 몰랐다.
15. 학교에 작은 불꽃 하나 튀었다고 학부모를 미워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자전거 흠집 하나를 두고 학교를 몰아세운다고 여겼지만, 정작 그 부모가 왜 그토록 예민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원칙을 지키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 원칙 너머에 있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 역시 교육의 몫이었다. 교육자라고 해서 늘 넓은 마음만 품고 사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서운해하고, 때로는 편견에 갇히며, 뒤늦게 자신의 부족함을 돌아보기도 한다. 결국 학교란 아이들의 흠집을 보듬는 곳인 동시에, 어른들 또한 서로의 흠집을 마주하며 배우는 곳인지도 모르겠다.
16. 여전히 오늘도 등교하는 아이들을 챙기시는 지킴이 어르신의 모습이 보인다. 후다닥 박카스 몇 병을 챙겨 내려갔다.
“이제 다 잊었심더”
하시며 박카스를 주머니에 넣으신다. 학생부장을 재차 불렀다.
“가해 학생 손도 한번 확인해 봐라. 주먹 휘둘렀으면 그 아이도 다쳤을 기다.”
말은 무심하게 했지만, 그래도 감정은 많이 누그러졌다.
17. 아내는 아이들 이야기가 나오면 늘 ‘자식은 다 아픈 손가락’이라고 말하곤 한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말만큼 부모의 마음을 잘 설명하는 말도 없는 듯하다. 아무리 애써 키워도 부모 눈에는 잘한 일보다 부족한 부분이 먼저 보인다. 남들이 스쳐 지나갈 작은 흠집도 부모에게는 오래 마음에 남는 상처가 된다. 자전거 프레임에 남은 긁힌 자국 역시 그 부모에게는 단순한 흠집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이가 애써 모은 시간과 애정이 다친 것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마음속에 남아 있던 작은 앙금도 서서히 녹아내렸다. 어쩌면 흠집이 난 것은 자전거만이 아니었는지도 몰랐다.
18. 한 아이의 자전거 프레임에 남은 흠집은 이미 지워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일은 내 안에 숨어 있던 또 다른 흠집 하나를 드러냈다. 상대를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쉽게 판단하고, 교육을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미워했던 흠집이었다. 아이들이 자라듯 어른도 그렇게 조금씩 다듬어진다. 그날 이후 흠집은 감추어야 할 상처라기보다, 사람을 조금씩 다듬어 가는 흔적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19. 밤새 내리던 봄비가 그치자, 운동장 가장자리 나무들이 한층 짙은 초록빛을 띠었다. 빗물을 머금은 잎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창밖을 한참 바라보다 문득 웃음이 났다. 아이들만 자라는 줄 알았는데 어쩌면 나 또한 조금은 자라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자전거에 남은 작은 흠집 하나가 결국 내 마음의 모난 부분을 먼저 들여다보게 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