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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생의 음식-호일맥 목사💗

작성자예수님좋다오|작성시간26.06.05|조회수6 목록 댓글 1

☞예수가좋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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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의 음식-호일맥 목사💗

 

🎧영생의 음식

요한복음 6장47-56절 / 호일맥 목사

 

➤“47.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느니라. 48. 내가 곧 그 생명의 빵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으나 50. 이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빵이므로 사람이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아니하리라. 51.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누구라도 이 빵을 먹으면 그는 영원히 살리라. 내가 줄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내가 줄 내 살이라, 하시니라. 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자기들끼리 다투며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서 먹게 할 수 있느냐? 하매 53.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55. 내 살은 참으로 양식이요 내 피는 참으로 음료이니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며 나도 그 안에 거하느니라.”(KJV)

 

첫째,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에 [진실로], [진실로] 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아’(אָמַן)◀ 우리말로 ▶‘아멘’이라는 말입니다. ‘진실로’, ‘참으로’, ‘그렇습니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멘’이란 감탄사는 히브리어로 적힌 성경의 초판부에 등장합니다. 이 단어는 유대교에서 사용되다 초기 기독교로 유입되었고 이후에는 그리스어, 라틴어, 영어 등으로 옮겨갔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멘이라는 단어는 유대인들의 기도문에서 마지막에 언급됩니다. 유대인들의 문헌 어디에도 아멘이라는 단어가 문장의 앞에 [아멘]이라는 표현은 기독교 예배에서도 받아들여졌는데, 기독교 예배에서도 [아멘]은 기도가 끝나거나 성경 낭독이 끝날 때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말씀하실 때 ‘아멘’이라는 단어를 문장의 앞에서 사용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강조하실 때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오늘 47절에서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말을 성경 원문대로 보면 이렇다. “아멘! 아멘! 이렇듯 아멘을 예수님만의 고유한 언어습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궁금함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아멘]을 앞에 두고 말씀 하셨을까? 어떤 사람 보기에 이것은 사소하게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은 “이게 뭐가 중요합니까?”라고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습관적인 표현 하나를 통해서도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라는 이 표현 속에서 예수님은 말씀이 곧 예배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고 그분에게 부름 받은 주의 종입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셨다고 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오병이어의 이적과 같은 큰 이적을 보고도, 예수님 말씀을 많이 듣고도 그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6-29절 “26. ¶ 여드레가 지나서 다시 그분의 제자들이 안에 있을 때에 도마가 그들과 함께 있더라. 그때에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님께서 오사 한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화평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그 뒤에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들을 보고 네 손을 이리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으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시니 28. 도마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나이다. 하매 29.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도마야, 너는 나를 보았으므로 믿었으나 보지 않고도 믿은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보지 않고도 믿는 자는 복이 있는 자.

 

이 말씀은 다르게 보면, 보고도 믿지 않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광야에 있을 때 아침마다 나가서 하나님이 내리신 [만나]를 거두어서 육신의 생명을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리신 “참 빵”이요, “생명의 빵”이신 하나님의 빵은 세상의 생명, 육적인 생명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곧 생명의 빵”이라는 압축된 말씀 가운데 주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철학이나 교훈은 이 세상에서 통용되고 이 세상에서 끝나는 원리이기 때문에 우리의 영생을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빵”이신 예수그리스도를 우리가 만나고 접촉하고 신뢰하게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하신 대로 영원한 생명을 허락해 주십니다.

 

➤53-56절을 읽겠습니다. “53.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안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일으키리라. 55. 내 살은 참으로 양식이요 내 피는 참으로 음료이니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며 나도 그 안에 거하느니라.”

 

앞에 47절에도 [아멘! 아멘]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먹어야 우리의 몸이 살듯이 우리의 영혼은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먹고 마시게 될 때 삽니다. 구약에 절기 제사를 드리고 피는 제단에 뿌리고 고기를 삶아서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상징하는 유월절 양을 먹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36절을 읽겠습니다.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도 나를 보았으되 믿지 아니하도다. 하였느니라.”

 

예수님에 대한 당시 유대인들의 태도는 어떠하였습니까? 당시 유대인들은 빵에만 관심이 있었고, 영생의 빵을 주신 주님에 대해서는 오해하며 믿지 않았습니다. 육신으로 오셨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다른 이를 불러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자라 하면서도 세상 복에만 집착하여 복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믿음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은 너무나 큰 비극입니다.

 

예수님 말씀이 영혼의 양식입니다.

 

➤요한복음 6장 48-51절을 읽겠습니다. “48. 내가 곧 그 생명의 빵이니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으나 50. 이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빵이므로 사람이 그것을 먹으면 죽지 아니하리라. 51. 나는 하늘로부터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니 누구라도 이 빵을 먹으면 그는 영원히 살리라. 내가 줄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해 내가 줄 내 살이라, 하시니라.

 

과거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탈출 이후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죽었습니다. [만나] 역시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양식이었지만 그것이 영원한 생명을 주지는 못했습니다. 반면에 생명의 빵이신 예수님의 살을 먹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광야의 만나는 매일 먹어야 하지만 하늘에서 내려오신 빵이신 예수님의 살을 먹는 사람은 단번에 영원히 배부르며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사람들은 오늘날 선(先) 지식을 가진 우리처럼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영생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지금도 다툼이 일어납니다. 구약은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실 예수님 전에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옛 악속은 만나입니다. 그래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다고 하셨습니다. 신약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노아 이전에 있던 땅에 오셔서 복음을 전하신 생명의 말씀입니다. 생명의 말씀을 먹으라고 전하면 “너나 먹으라”고 거절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자기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에게 부름을 받은 자들도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서 거부를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그리스도의 종이 되야 합니다.

 

➤빌립보서 3장17-18절을 읽겠습니다. “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따르는 자들이 되고 너희가 우리를 본보기로 삼은 것같이 그렇게 걷는 자들을 주목하라. 18. (이는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한 적이 있고 지금도 심지어 눈물을 흘리며 너희에게 말하는 많은 자들,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걷고 있기 때문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구약 시대의 사람들이 있고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고 여호와의 종들이 있기에 십자가의 원수로 걷고 있지만 자신을 모르고 하나님의 원수가 된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자들은 구원이 내 노력과 공로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은혜에 감사하여 오실 주님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기다리며 주님을 닮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입니다. 내가 푯대를 향하여 부지런히 달려가지만 이 달음질 때문에 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겸손히 기도하면서 주님의 때를, 주님의 일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셔서 율법을 지키는 것을 통해 기다리던 메시야가 왔을 때, 이 분이 메시야임을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율법의 제사와 절기에는 메시야의 그림자들이 담겨 있어서 기다리는 동안 그것을 행함으로 메시야를 분별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제 기다리던 메시야가 오셨고, 예수님이 메시야이심을 알았으면 그 제사와 절기는 더 이상 의미 없는 것이 된 것입니다. 배설물로 여겨야 했던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은 이미 오신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이미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더할 것이 없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미 구원을 얻었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이미 예수님은 오셨고, 다시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구원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영원함 사이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기다림이 중요합니다. 기다림이라는 것은 믿음 없이 불가능합니다. 사랑에 대한 믿음 없이 어찌 다시 오실 예수님, 십자가에서 찢기고 상하신 몸이 영광의 몸의 형체로 바뀌었듯이 우리의 몸도 다시 오실 예수님이 바꾸어 주실 것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 말씀대로 살려고 수고하고 노력하지만 그것으로 이룰 수 없기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당장 눈앞에 무엇이 보이지 않지만 주님의 약속은 확실하기에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하면 사는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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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예수님좋다오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05 주의 이름 찬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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