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이맘때쯤이면 소백산의 알프스 풍경이 그리워진다 “
1987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소백산(小白山)은 경북 영주시와 충북 단양군에 걸쳐 있으며 일찍부터 태백산과 함께 신령 시 되어 온 산이다. 작은 백두산이라는 의미로 소백산이라고 했으며, 삼재(화재, 수재, 풍재)가 들지 않은 산이라 하여 풍수의 명당으로 꼽혀 조선시대에는 병란과 기근을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하나로 거론되기도 했다고 한다.
주봉인 비로봉의 높이는 해발 1,439m이고 비로봉 이외에 국망봉(1,421m), 제1 연화봉(1,394m), 제2 연화봉(1,357m), 도솔봉(1,314m), 신선봉(1,389m), 형제봉(1,177m), 묘적봉(1,148m) 등의 봉우리가 있으며 한강과 낙동강의 분수계를 이루고 있다.
소백산! 하면 먼저 능선의 칼바람, 한겨울 설원에 펼쳐진 상고대, 백두대간을 따라 펼쳐진 산정 부의 알프스 풍경, 다양한 야생화 등이 떠오른다. 그중에서 봄인가 싶더니 여름에 들어서고 있는 이맘때쯤이면 당연 소백산 정상에 펼쳐져 있을 알프스의 풍경이 그리워지는 것은 따로 말할 것도 없다.
초록동색이랄까? 가끔씩 같은 곳을 바라보며 살고 있는 절친 산천과 통화로 번개산행에 의기투합하여 일찍 집을 나선다. 이왕이면 오늘 걷는 숲길에서 내가 좋아하는 숨은 꽃들도 함께 볼 수 있기를 바래보지만 계절적으로 쉽지 않음을 알기에 큰 기대는 내려놓으며 2시간여를 달려 평일이라 비교적 한산한 소백산 어이곡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 도착한다.
"세밭~율전계곡~늦은맥이재~국망봉~비로봉~어의곡”
“약 14㎞, 휴식시간 포함 7시간 정도 예상"
오늘 걷는 길은 주차장을 출발하여 세밭유원지(지금은 자연발생유원지가 해제된 것 같다) 야영장을 지나 율전 계곡을 따라 늦은맥이재로 올라섰다가 국망봉, 비로봉을 거쳐 어의곡 방향으로 하산할 계획이다. 대략 14㎞쯤 되는 거리에 소요시간도 휴식시간을 포함하면 7시간 이상 소요될 것으로 판단된다.
날씨는 일찍 찾아온 무더위로 더운 날이었지만 숲속그늘 만큼은 시원해서 다행이다. 율전 탐방로에 들어서자 종모양의 꽃이 아래로 숙이고 있어 마치 초롱을 닮았다고 하는 초롱꽃이 수수한 모습으로 반갑게 첫 인사를 한다.
<초롱꽃에 전하는 이야기>를 검색해 보니 먼 옛날 금강산 깊은 산골에 부모 없이 살던 오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누나가 병에 걸려 남동생이 약초를 구하러 산으로 떠난다. 동생을 기다리던 누나는 동생이 밤늦게까지 돌아오지 않자 초롱불을 들고 길을 나섰다가 쓰러지고 만다. 약초를 구해 돌아오던 동생이 숨을 거둔 누나를 발견했는데 죽은 누나 옆에 초롱불을 닮은 한 송이 꽃이 피어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초롱꽃은 은혜와 감사의 꽃말을 가지고 있는가 보다.
나무그늘 아래로 이어진 율전 탐방로를 출발하여 백두대간 능선 길과 만나는 늦은맥이재 까지는 5㎞로 두 시간 정도 완만한 숲길을 따라 이어지다가 500m를 남기고는 제법 경사가 있는 비탈길이 이어진다. 구간 전체적으로 볼때 완만한 경사가 이어져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올라갈 수 있지만 시간상으로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거리가 아닌지라 주차장을 출발한지 2시간 20분정도 소요된다.
“LNT(Leave No Trace)를 실천하는 자연활동”
걷는 동안 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지만 장시간의 트레킹으로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얼굴로 달려드는 날벌레들로 피곤 할 텐데 앞서 걷고 있는 산천은 숲길에 떨어진 페트병을 주어들며 LNT(Leave No Trace) 운동을 몸소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참 멋진 친구라는 생각을 해본다.
참고로 LNT(Leave No Trace) 운동은 등산, 캠핑 등 자연을 즐기되 흔적을 남기지 않고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는 자연친화적인 생활을 하자는 미국 국립공원 환경단체 주도로 시작된 국제적 캠페인이자 환경운동이다.(7가지 기본원칙은 검색해 보면 좋을 것 같다)
“늦은맥이재~국방봉~비로봉까지 이어지는,
한 없이 걷고 싶은 숲길”
늦은맥이재 부터 국망봉까지는 백두대간이 지나는 약2.1㎞의 길로 한 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 구간은 걷다보면 간간히 주변의 조망이 열리며 첩첩한 산능선과 백두대간의 등줄기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는 부드럽고 편안한 숲길이다. 나무에 가려진 숲길이 끝나는가 싶을때 1420m 국망봉을 만나게 된다. 주차장에서부터 계산하면 3시간 30분정도 소요되었다.
국망봉(國望峯)은 봉우리 한자 이름에서 유래를 짐작해보게 되는데, 신라 말에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하자 마의태자가 은거지를 찾아 금강산으로 가는 도중에 경주를 바라보며 망국의 눈물을 흘렸다는 설과 선조 때 수철장 배순이 왕이 승하하자 왕성을 바라보며 3년 동안 통곡하였다는 설이 전해진다고 한다.
국망봉에서 비로봉까지는 다시 2.7㎞로를 더 가야하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길이다. 특히 백두대간 마루금과 만나는 늦은맥이재부터 국망봉을 지나 어의곡삼거리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이전에 봄날에 피는 여러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었던 구간이라 습관적으로 고개를 돌려 꽃을 찾아보게 된다.
특별히 신경을 쓰며 걷고 있지만 가끔 키 작은 나무들 사이로 범꼬리와 쥐오줌풀, 기린초, 감자난초, 박새만 보일뿐 화려했던 봄날의 들꽃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가고 없다. 숲길 한편에서 화려했던 봄날을 보내고 힘겹게 시들어가고 있는 함박꽃만이 계절이 바뀌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함박꽃의 다른 이름은 산에서 자라는 목련이라 하여 산목련으로 불린다. 실제 꽃의 생김새는 물론 지는 모습까지도 일반 목련과 너무도 닮아있다.
문득 정재찬 작가가 쓴 <시를 잊은 그대에게>의 내용이 생각난다.
「목련은 등불을 켜듯이 피어난다. ~ 그 꽃은 존재의 중량감을 과시하면서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치켜 올린다. 꽃이 질 때 목련은 세상의 꽃 중에서 가장 남루하고 가장 참혹하다. 누렇게 말라비틀어진 꽃잎은 누더기가 되어 너덜거리다가 바람에 날려 땅바닥에 떨어진다. ~ 한꺼번에 뚝 떨어지지도 않는다. ~ 그 꽃은 죽음이 요구하는 모든 고통을 다 바치고 나서 비로소 떨어진다. ~ 목련이 지고 나면 봄은 다 간 것이다.」라고 <자전거 여행>에서 소설가 김훈이 묘사한 글에 대해
“목련의 낙화가 가장 남루하고 참혹하다”고 표현한 것은 목련이 “한사코 하늘을 향해 봉우리를 추켜올리며 산대가”이며 “냉큼 죽지 않는 것도 미련이 아니라 모든 고통을 다 바치는 생에 대한 외경과 성실 탓“이라고 정재찬 작가는 말한다. 더 나아가 우리의 삶과 연계해서 ”만일 오랜 병상의 세월을 보내는 노인이 있다면 존중하라”고 가르침을 주기까지 한다. 사랑과 작별의 의미에서도 “목련은 뒤끝이 지저분한 사랑이 아니라 끝난 뒤에도 그 끝까지 사랑하려는 순정함의 표상이다.” “떠나는 이가 작별까지 아름답기를 바라는 것, 동백 같은 순교를 바라는 것이야말로 정말 지저분한 욕심이 아닐까.”라고 작가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의 생각은 어떨까? 노인이 되어가고 있는 지금의 내 입장에서는 “그래도 욕심을 부리고 싶다. 동백 같은 순교 까지는 아닐지라도 아프지 않고 살다가 한 순간 동백꽃처럼 툭 떨어져 흔적 없이 사라져가고 싶다”. 그것이 지저분한 욕심일까?ㅋ 시들어가는 함박꽃을 바라보며 든 잠깐의 생각이다.
“소백산의 6월은 초원의 알프스를 품는다”
국망봉을 지나 어의곡 삼거리에 이르면 드디어 만나고 싶던 소백의 알프스 풍경이 펼쳐진다. 언제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이다. 비로봉을 지나 연화봉까지 이어지는 초원사이로 낯설게 자리한 주목 관리 대피소마저 한 폭의 그림이 되는 한국의 알프스 풍경이다.
밀양의 유명한 억새군락지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가지산, 천황산, 재약산 등으로 일컫는 영남 알프스의 단조로움과는 차이가 있다. 개인적으로 "봄여름가을겨울 계절마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펼쳐지는 한국의 진짜 알프스 경치를 보고 싶다면 당연 소백산으로 가라" 하고 싶다.
14시 15분 소백산이 주봉 비로봉에 선다. 주차장을 출발한지 5시간이 넘은 시간이다. 전체적으로 크게 힘든 구간이 없었지만 거리 상 제법 많은 시간이 소요된 듯하다.
정상에는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늘어선 산객들도 없고 조용하다. 어느 방향으로 카메라를 돌리든 장애물이 없어 좋다. 역시 나 같은 퇴직자 들은 평일에 즐기고 주말은 직장인들에게 양보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례적이지만 정상 표지석에서 사진 한 장 남기고 어의곡 방향으로 하산한다. 하산 길에 만나는 잣나무 숲 사이로 계속의 물소리와 새소리, 바람소리를 싣고 불어오는 바람이 그간의 피로를 날려준다. 오를 때의 힘듦은 어디론지 사라져 버리고 다시 다음 산행을 생각하게 된다.
잣나무 숲을 지나 한발짝 한발짝 내려갈수록 점점 커져가는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여유있게 어의곡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한다. 시간은 장장 7시간 30분이나 소요되었지만 잠깐 초원으로 소풍을 다녀온 기분이다. 얼릉 가서 친구들 불러 삼겹살에 소주한잔 하면 이 기분을 전해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