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장 사건 만들기와 사건 이어가기
1. 사건의 만들기
이야기는 사건의 진술이다. 사건의 주체가 인물이라면, 이야기는 인물의 어떤 행위라고 할 수 있다. 대체로 소설에서 사건은 인물과 인물의 만남이나 헤어짐, 인물이 직접 저지른 일이며, 소설 전체, 중심스토리와 관련되어야 한다.
조동일 교수에 의하면, 소설적 사건은 상호우위에 입각한 자아와 세계간의 <대결>이다. 프린스는 이야기내용의 기본구성요소가 되는 상태의 <변화>라 하고, 시간적 연속성과 인과적 질서를 중요한 특성으로 지적한다. 토도로프는 <연속과 변화>를 서사담론의 두 원리라 하고, 변화의 본질을 부정, 즉 어떤 항목이 반대의 것으로 변화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그렇다면 소설의 사건이란 상태나 상황이 아니라 행위라고 할 수 있고, 사건의 언어적 결정요소를 <동사>라고 하겠다. 이런 뜻에서, 사건은 행위와 행위주체를 포함하는 의미있는 행동이라 말할 수 있다. 의미있는 행동이란 어떤 욕망된 목표와 계획을 실현하기 위한, 어떤 상황에의 반응이다. 결국 서사는 욕망, 즉 결핍을 극복하기 위해 갈등하고 투쟁하는 인간경험의 재현적 기록이라고 하겠다.
맨처음 사건이 터지는 순간까지를 발단이라 한다. 그러니까 맨처음 사건이 곧 소설의 발단인 셈이다. 사건의 발단 혹은 만남의 방법은 두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자연스럽게 살짝 일어나는 방법이며, 다른 하나는 충격적인 방법이다. 후자의 경우, 뒤에 다시 상황을 설명해야 된다는 점에서 극적인 맛이 덜하다고 할 수 있다.
만남의 과정, 혹은 사건 발단까지의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것이 필요하다.
1) 총체적 상황(대장면)의 제시
전체를 예시하는 상황을 설정한다. 인물을 등장시키기 전에 필요한 작업이다. 주제를 예시하고 전체 분위기 조성에 기여한다. 사물(풍경)과 인간이 어울려 하나의 장면을 이루도록 한다.
2) 현장적 상황(소장면)의 제시
주인물의 활동무대가 된다. 반전의 효과(충격, 발견)를 고려하여 설정해야 한다. 장편소설의 경우에는 1) 2)가 모두 필요하나, 단편소설에는 2)로도 족하다.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었다.
이날이야말로 동소문 안에서 인력거군 노릇을 하는 김 첨지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문안에(거기도 문밖은 아니지만) 들어간답시는 앞집 마나님을 전찻길까지 모셔다드린 것을 비롯하여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정류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내리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결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교원인 듯한 양복장이를 동광학교까지 태워다주기로 되었다.
"이 눈깔! 이 눈깔! 왜 나를 바라보지 못하고 천정만 보느냐, 응."
하는 말 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룽어룽 적시었다. 문득 김 첨지는 미칠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테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설렁탕을 사다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목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현진건 「운수 좋은 날」)
3) 갈등의 제시
갈등은 사건 발생의 원동력이다. 갈등의 불씨(욕망, 질투, 원한 등)를 이루는 것들을 여러모로 생각한다.
4) 갈등의 강화
5) 첫 사건 발생
이는 문제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는 것으로 소설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2. 사건 이어가기
소설은 크고 작은 사건(행동)의 연속이다. 최초의 사건은 장차 그 안에서 벌어질 주요 이야기의 단서가 되어야 한다. 소설의 사건은 시간적 연속성뿐 아니라 원인과 결과의 고리로 이어진다. 소설에서 인과관계는 모든 사건, 인물의 등퇴장에도 지켜져야 한다. 말하자면 필연성과 그럴만한 사연이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사건 이어가기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요소가 고려되어야 한다.
1) 필연성(논리성과 다르다)
2) 연상성
3) 우연성; 필연적인 사건을 아주 우연인 것처럼 꾸며 말한다(필연적 우연).
4) 의외성; 인물의 의도에서 빗나간 사건의 발생.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는, 충격적인 이야기 진행
5) 예시성
3. 근본 갈등을 전개하는 방법(메레디트, 피츠제럴드, 『소설작법』)
근본 갈등을 전개해 나가기 위해 주인공에게 명백한 목표를 가진 주요 동기 유발력을 부여한다. 환경의 자극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은 명백한 목표에 도달하기 위하여 그 자극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하도록 결심(주요 동기 유발력)하게 만든다.
1) 인간과 인간; 남자 대 남자, 남자 대 여자, 여자 대 여자, 어린이 대 성인, 어린이 대 어린이, 늙은이 대 젊은이
2) 인간과 자연; 홍수, 가뭄, 폭풍, 바다, 산, 강, 사막, 지진, 동물, 질병
3) 인간과 미지의 세계; 유령, 심령현상, 외계 공간
4) 인간과 사회적 습속; 법률, 전통, 풍습, 인습, 도덕률, 종교적 신조, 정부, 소신
5) 인간과 그 자신; 자신의 행위, 양심, 가치관, 타인에 대한 대립감정, 과거의 훈련 및 현재의 요구, 이성에 반대되는 감정 등과 갈등한다.
이런 갈등의 기본 원리는 주인공과 적대자, 장애물, 재난 사이의 갈등, 자아와 환경세계 사이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1) 주인공에게 영향을 미치는 환경의 변화는 주인공과 환경 사이의 갈등을 만든다.
2) 주인공을 낯선 환경으로 옮김으로써 환경과 갈등을 겪게 할 수 있다.
3) 자신의 환경과 상충하는 곳에 놓아두면 주인공은 타인의 환경과 갈등을 겪게 된다.(지주/농업노동자의 환경, 자본가/노동자의 환경)
4) 주인공이 바꾸고자 원한 환경에 주인공을 놓아두어 갈등을 겪게 할 수 있다.
5) 어떤 환경을 정복하게 함으로써 주인공이 환경과 갈등을 겪게 만든다.(상류사회, 산)
6) 주인공이 도피하고자 원하는 환경에 주인공을 놓아두면 갈등을 겪게 된다.
7) 주인공을 원치 않는 환경에 두면 갈등을 겪게 된다.(주인공은 환경이 자신을 받아줄 것을 원하지만 그를 용납하지 않는 환경 때문에 갈등을 겪는다)
8) 성격상 맞지 않는 환경에 주인공을 두면 갈등을 겪는다.(상업주의적 환경)
9) 환경 가운데 있는 주인공의 상황 변화는 그 환경으로 인해 갈등을 일으킨다.
10) 환경의 상황 변화는 주인공이 그 환경과 갈등을 겪게 만든다.(정권교체, 전쟁, 혁명)
4. 기타-소설의 첫머리, 결말처리법
1) 메레디트, 피츠제럴드(『소설작법』)
(1) 첫장에서 주인공의 외부에서 발생하여 일련의 인과관계가 있는 사건을
초래하는 사건을 다룰 수도 있고, 그렇게 하지 않을 수도 있다.
(2) 첫장에서 독자에게 배경을 알리라. 그리고 뒤따를 갈등을 암시하는
특수한 행동 장면을 묘사하라.
(3) 첫장에 갈등을 다룬 대장면을 적어도 하나 설정해 두라. 이는 즉각적으로 행동을
갈망하는 독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함이며, 작중인물을 소개하기 위함이다.
(4) 첫장에 적어도 한 개 이상의 소장면을 구성하라. 이는 성격묘사에 도움을 주고,
첫장에 나오는 이야기를 독자에게 이해시키고 신뢰감을 더하기 위하여 독자가 알아두어야
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5) 첫장에서 주인공 또는 주요 작중인물을 소개하고 그들의 정확한 또는 대략의
나이 및 신체적 외모를 지적하라.
(6) 화자가 누구인지, 어떤 시점인지를 독자에게 알리라.
(7) 첫장에서 해설, 묘사, 서술의 이용 여부는 스토리와 작중인물에 대하여 얼마나
많은 정보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는가는 작가의 결정에 좌우된다.
(8) 가능한 한 독자에게 작품의 시간적 환경의 시발점을 알리는 실마리를 제공하라.
(9) 다음과 같은 원리로 독자의 흥미를 유지시켜라.
* 대분규를 일으킴으로써(추리, 모험, 전쟁소설)
* 대분규를 일으키는 소분규를 일으킴으로써
* 독자가 흥미있어 하는 <복선>을 제시함으로써(복선은 독자의 흥미를
일으키면서 뒤에 일어날 사건을 신빙성있게 만들어준다)
* 주인공의 복지, 운명에 관심을 갖게 함으로써
(10) 어조와 문체의 유형을 설정하라.
2) 현길언(『소설쓰기의 이론과 실제』)
단편소설의 서두는 다음 몇 가지 방식으로 처리될 수 있다.
(1) 작품의 문제를 직접 제시한다.
(2) 인물의 문제를 제시함으로써 소설의 문제를 대신한다.
(3) 상징적 공간을 제시한다.
(4) 시간성과 인물을 동시에 제시한다.
(5) 대립적 상황을 동시에 제시한다.
결말 처리는 다음과 같다.
(1) 서두에서 제시했던 문제의 해답이 직접 나타난다.
(2) 인물의 모습이 드러나면서 소설의 주제가 밝혀진다.
(3) 공간성의 상징적 의미가 밝혀지면서 소설의 주제가 드러난다.
(4) 서두에 제시된 시간성과 인물의 변모가 호응하면서 소설의 의미가 뚜렷하게 된다.
(5) 서두에서 제시된 대립적 관계가 드러나면서 소설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결말 처리에 있어 유의사항
(1) 독자에게 새로운 세계의 실상을 깨달을 수 있도록 처리해야 한다.
(2) 역전의 결말로 독자에게 충격을 줌으로써 새로운 세계의 진실에 대한 감동과
신뢰를 동시에 갖도록 한다.
(3) 미해결의 문제를 남겨둠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또다른 세계의 실상에
접근토록 한다.
(4) 소설의 끝남과 동시에 인물 모습을 인상적으로 독자에게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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