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밀함이 있는 그 곳 대전 나눔의집
내가 상상하는 친밀함이 무엇일까? 부드러운 손으로 내 팔을 스르르 만지며 지긋한 눈길을 나에게 주는 그것만으로 친밀함을 설명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친밀함은 사랑의 표현이고 사랑의 핵심이기에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친밀함이 인간에게 없으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한 친밀함이 있기에 사람은 살게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가진 그 이상으로 우리에게 친밀하십니다. 친밀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의 기대 그 이상으로 친밀함을 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는 곳이 바로 대전 나눔의집입니다. 그래서 나눔의집은 친밀함으로 꽉 찬 사람이고자 합니다. 그러나 친밀한 사람이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친밀함으로 꽉 찬 사람이 되는 것은 친밀함에 대한 갈망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갈망은 지금 현재의 부족함을 아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내가 최고다’, ‘내가 다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갈망을 지닌 사람이 아닙니다. 갈망은 자신의 부족함과 자신의 결여를 아는 사람에게서 싹 트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망의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갈망이 없는 사람은 겸손하지 않은 사람인 것입니다. 자신의 부족을 아는 사람만이 갈망을 지니게 되어 상상력의 날개를 펴게 됩니다.
선한 상상력은 무한합니다. 이는 선한 상상력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인간이 지닌 한계를 넘어서고자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인간의 상상을 실현 가능태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상상력을 자신에게 현재 적용함으로 이루어 갑니다. 상상을 생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을 자신의 숨결로, 상상을 자신의 호흡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상상을 숨결로 하는 길을 가게 됩니다. 그 숨결로 광야를 걷는 모험을 삶에서 드러냅니다.
모험은 예기치 않은 일들을 마주하게 합니다. 그래서 두려움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두려움을 벗어난 환희로 자신을 모험에로 계속 이끌게 합니다. 이렇게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그 자리에 사는 사람은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이 됩니다. 이미 그리스도께서는 그렇게 우리에게 그 길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사는 것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나눔의집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이기에 많은 일을 하기 보다는 예수 그리스도와 친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눔의집은 예수 그리스도와 얼마나 가까워졌는가가 핵심인 것입니다.
나눔의집은
그와 가깝기 때문에 그렇게 험하고 먼 길을 걸어 온 것입니다.
그와 가깝기 때문에.
그의 친밀함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