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동네 베이징 우다커우(五道口)의 밤거리에 오후 8시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작지만 흥미로운 삶의 변화가 연출된다. 아파트단지 큰 길가 녹음 짙은 여백의 공터에 하나 둘씩 중년의 남녀들이 모여든다. 가벼운 평상복 차림인 그들은 대부분 부부인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서 왠만큼 사람이 모이면 매우 날렵한 맵시의 한 여성이 포터블 카세트 라디오에 테이프를 넣고 음악을 켠다. 음악은 부드럽고 감미로운 댄스곡들이다. 모여있던 남녀들은 어느덧 하나 둘씩 짝을 이루어 댄스를 시작한다.
그들은 상당히 능숙한 댄서들인 경우가 많고, 아직 서툰 몇몇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스텝을 맞추어가며 열심히 따라서 춤을 춘다. 왈츠와 지토박으로 이어지는 이 무도는 때로 빠른 리듬의 경쾌한 살사리듬까지 선보이기도 한다. 이 때쯤이면 대부분은 주위로 물러서 열심히 관찰하고 무대엔 한 두 팀의 꾼들이 남을 뿐이다.
< 사진: 북경 북해공원의 아침 무도회>
어두운 밤, 커다란 나무들에 둘러쌓여 가까이 가지 않으면 얼굴을 알 수 없는 불빛 희미한 이 광장의 무도회는 두 시간 가까이 계속된다. 주변의 아파트 불빛이나 지나가는 차량들의 헤드라이트가 이들에겐 무대 조명이다.
예의 그 날렵한 여성은 파트너를 바꾸어가며 그들에게 춤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녀들은 전문 무도강사들로 보이는데 어쩌면 이들 주민들의 초청으로 매일 지도를 하고 있는 듯 하다. 보통 20여쌍 정도로 이루어지는 이 모임은 비가 오지 않는 한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렇게 춤을 즐긴다.
그리고 이러한 모임은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아파트를 벗어난 작은 동네 어귀의 빈 공터에서도 몇쌍의 중년들이 오후가 되면 이처럼 춤을 추고 있다. 그들은 커다란 대로변 넓은 아스팔트 인도를 무도회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수년전 상해의 홍구공원에 갔던 나는 너무도 신기하고 멋진 아침을 맞은 적이 있다. 그 드넓은 공원은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는데 뛰는 사람, 베드민턴을 하는 사람, 중국 무술인 우슈를 즐기는 사람 등 매우 다양하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 가장 많은 사람들은 춤을 즐기는 사람들이었다. 간혹 젊은 층이 끼어있기도 하지만 역시 중년 이상인 수십명의 이들 집단은 모두들 하얀색의 가벼운 옷을 입고 경쾌하고 흥겨운 춤을 추며 아침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표정은 진지하고 밝으며 행복해 보였었다.
개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이들의 생활 속 무도회... 춤이라면 왠지 난봉꾼의 짓처럼 바라보는 우리의 문화 속에서 이들이 펼치는 삶의 연출이 신기하고 약간은 부럽기까지 하다. 다만 우리동네의 무도회가 좀 더 밝은 시간에 펼쳐지지 않고 있는데 대해 아쉬움과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일 내로 아침 일찍 일어나 가까운 공원에 한 번 가봐야겠다. 여전히 그들이 춤을 추며 하루를 시작하고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