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행태주의
1960년대 미국사회는 백인들의 흑인에 대한 지나친 인종차별 때문에 일어난 미국 대도시에서의 흑인폭동과 베트남전에 대한 반전데모 및 강제집징에 대한 젊은이들의 저항 등으로 커다란 혼란 속에 빠져 있었다. 이러한 혼란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 정부는 흑인폭동의 원인과 대책을 마련하고자 정치학자와 행정학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다. 그러나 1950년대부터 휩쓸기 시작한 행태주의의 선풍은 1960년대 전반까지도 미국의 정치·행정학계를 장악하고 있었다. 인간행태를 중심으로 연구한 그들은 당면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
특히 1960년대 중반부터 존슨 행정부가 ‘위대한 사회의 건설’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하류층과 소외계층의 복지 향상을 위하여 사회복지 정책을 추진하면서 이의 추진에 지적 자원을 제대로 제공하지 못했던 정치학에 대한 비판이 젊은 학자들 사이에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속에서 1960년대 말 원로 정치학자인 이스턴(D. Easton)은 정치학의 새로운 혁명으로서 후기행태주의가 시작되었음을 선언하였고, ‘적실성의 신조(credo of relevance)’와 ‘실천’을 주장하였다. 즉 사회과학자들은 과학적 방법을 적용할 수 있는 것을 연구대상으로 삼기보다는 그 사회의 급박한 문제를 연구대상으로 삼아서 연구결과가 사회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적실성 있는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과학자들은 연구결과를 단순히 발표함으로써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연구결과가 정책을 통해서 구현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인류의 가치를 보전하고 사회를 개선하려는 데 관여하는 것이 정치학자들의 임무라고 주장한다.
후기행태주의자들은 그 전의 정치학 연구가 과학화되면 될수록 더욱 학문의 적실성을 잃어갔다고 지적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후기행태주의자들이 과학적 연구를 반대한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들은 통계학과 컴퓨터 분석 등 계량적 분석방법에 매우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이러한 지식과 기술을 급박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사용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정치학자와 행정학자들은 공공정책이 취해야 할 기본방향에 대해 의견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정책의 기본방향에 대해 더 전문적인 사람들이 이들 외에는 없다는 것이다.
후기행태주의적 접근방법은 가치중립적인 과학적 연구보다 가치평가적인 정책연구를 지향하고 있으며, 정책학의 발전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행정학분야에서도 1960년대 말부터 신행정론자들에 의해서 후기행태주의 접근방법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따라서 행정학 분야에서도 정책지향적인 연구가 크게 일어났으며, 가치판단의 문제, 바람직한 사회를 위한 정책목표에 관한 문제, 새로운 행정이념으로서의 사회적 형평성 등의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