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1. 조르바와 카잔차키스
TV 매체나 다른 책 등에서 조르바 같은 삶을 동경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왜 조르바를 동경하는 것일까?
과연 조르바는 누구일까?
그런 TV나 다른 책 등을 통해서 나도 대략적으로 조르바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었다.
자유분방의 대표주자. 조르바.
그런 그가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져 있는 데는
지은이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공이 가장 크다.
비록 이 책이 소설이지만,
조르바는 실존인물이다.
이 책의 지은이 카잔차키스에게 삶의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조르바였고,
조르바와 만남을 소설로 엮은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에서 화자(나)로 나오는 이가 바로 지은이 카잔차키스이다.
카잔차키스는 그리스 크레타 섬에서 태어났다.
그가 태어난 1883년, 크레타는 터키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리고 크레타는 터키에 대항하여 독립전쟁을 벌렸고,
그 또한 이런 독립투쟁에 참여하였다고 한다.
그는 아테네 법과 대학에 진학 후 그리스 본토 순례를 떠나기도 하였고,
동서양 사이에 위치한 그리스의 역사적 업적은 자유를 찾으려는 투쟁이라고 깨달았다.
1907년에는 파리로 건너간 카잔차키스는 앙리 베르그송과 니체를 접하면서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투쟁적 인간상>을 부르짖었다고 한다.
2. 만남
소설의 시작은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나'와 조르바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오랫동안 책과 원고에 묻혀 살던 '나'는 새로운 생활을 찾고자
원고와 책을 다 던져버리고,
크레타의 '갈탄광'을 하나 빌려 농부들과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자 하였다.
그런 '나'는 크레타에 들어가는 배 안에서
호탕하고, 자유분방하고, 괴짜같이 보이는 한 사람을 만났으니
그가 바로 예순살이 훨씬 넘은 조르바였다.
처음에는 그를 경계하기도 했지만,
'나'는 곧 조르바가 맘에 들었고, 그와 동행하기로 하였다.
조르바에게 '갈탄광'의 감독직을 부탁했고, 조르바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나'는 조르바와 시간이 날 때마다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아니 많이 들었다.
'내'가 이야기는 하는 것은 '그래서?' '왜?' 가 대부분이었다.
이것에 조르바가 불평하기도 하지만, 그때 뿐,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60대 중순의 조르바가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서
'나'는 많은 것을 깨닫게 된다.
그가 이야기하는 것은 책에서 얻을 수 없는 생생한 삶에서 얻을 수 있는 값진 것들이었다.
3. 심플한 스토리
이 책을 읽을 때 박진감 넘치는 스토리를 원하고 들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스토리를 위한 책이 아니라,
소설 속의 '나'와 마찬가지로 조르바의 삶을 통한 교훈을 얻는데 목적을 둔다고 할 수 있다.
조르바의 삶에 견주어 독자의 삶과 인생관을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도 될 듯 싶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소설이라기보다 철학책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이 소설의 박진감 없는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크레타 섬에 들어와 갈탄광 사업을 시작한 '나'는
모든 책임을 조르바에게 위임하게 된다.
'나'는 단지 갈탄광의 주인이고, 일꾼들이게 임금을 주는 사람에 불과하였다.
조르바의 애정관에 따라 과부인 오르탕스 부인이 있는 그 마을은 좋은 마을이었고,
조르바는 자신의 인생관에 따라 오르탕스 부인과 쾌락을 즐기게 된다.
조르바는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행동하라면서,
'나'에게도 그 동네의 또 다른 젊은 과부와 밤을 함께 하라고 하지만,
'나'는 불편하다면서 꺼리게 된다.
사실 그 젊은 과부를 짝사랑하는 파블리란 청년이 있는데,
젋은 과부는 그를 거부하였고, 아버지도 젊은 과부를 사랑하는 아들을 인정하지 않았다.
....
사실 '내'가 갈탄광 사업을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지만 돈을 벌기 위한 사업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조르바는 크게 기뻐하면서 이익을 내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해방하였다.
그리고 감독관 일을 하면서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던 삶의 방식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더욱 기뻐하였다.
조르바는 갈탄광 사업이 지지부진해지자,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사업계획을 '나'에게 이야기하고, '나' 역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 사업은 벌목사업으로, 이를 위해 조르바는 장비를 구입하기 위해 마을을 떠났다.
'나'는 조르바의 부재에 대해 안타까워하며, 자신에게 조르바가 큰 차지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조르바는 계획했던 3일을 훨씬 넘기고 돌아오지 않고 편지가 한통 날아왔다.
이에 조르바의 소식을 듣고자 오르탕스 부인이 '나'에게 찾아왔는데,
오르탕스 부인이 조르바가 자신에게 한 이야기가 없냐고 자꾸 보채자,
'나'는 조르바가 오르탕스 부인과 결혼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왔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이에 오르탕스 부인이 기쁜 마음에 돌아가는 길에 끔찍한 장면을 보게 된다.
동네 청년 파블리의 시신을 발견한 것이다.
파블리는 짝사랑하는 젊은 과부와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자 자살을 하고 만 것이다.
보수적인 마을 사람들은 파블리를 죽인 것은 젊은 과부라면서 그녀를 증오하게 된다.
이에 조르바의 조언으로 젊은 과부는 한동안 마을에서 피신하며 살았다.
....
한편, 조르바의 영향을 드디어 받았는가?
'나'는 마음에 이끌려 젊은 과부집을 찾았고 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그런데, 얼마후 동네 축제 때 젊은 과부가 마을에 나타났는데,
그때까지 그녀를 증오하고 있었던 파블리의 아버지는 조카를 시켜서 그녀를 죽이게 된다.
조르바가 말렸지만 역부족이었던 것이다.
...
또 조르바는 '나'의 거짓말로 오르탕스 부인에게 난처한 상황을 겪게 되었다.
조르바는 거짓말로 계속 상황을 피해가는데,
뜻하지 않은 일로 해결되었다.
오르탕스 부인이 병에 걸려 죽고 만 것이다.
하지만, 오르탕스 부인의 죽음에 조르바는 무척 슬퍼하였다.
오르탕스 부인의 물건을 훔쳐가는 마을 사람들에 비해
진정 그녀를 위해 뜨거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조르바뿐이었다.
하지만 조르바는 이내 평정을 되찾고 자신이 계획하려던 벌목사업을 준비하게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나'의 질문에
조르바는 어제 일은 잊고,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이라며 무덤덤하게 벌목사업을 준비하였다.
나는 지금 이글을 쓰면서도
전보내신서, 정원신청표, 연구학교 운영계획서 그리고 각종 서류 등의 일을 걱정하며,
내일 있을 일정을 머릿속에서 엄청나게 계산하고 있다.
나도 조르바처럼 지금의 한 순간에 모든 열정을 쏟을 수는 없을까?
그런 나이가 되지 않아서일까?
조르바의 나이가 되면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아무튼.. 조르바와 '나'는 철탑과 케이블을 설치하여 벌목사업에 대한 준비를 완료하였다.
그리고 처음 장비를 동작하는 날...
나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못 쓰게 되었다.
그들의 사업은 한마디로 쫄딱 망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슬퍼하지 않는다.
원래 돈을 벌고자 했던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조르바와 '나'는 헤어져 각자의 길을 떠나기로 한다.
'나'와 조르바가 만난 것은 불과 몇 달이지만,
그 전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조르바도 '나'의 영향을 받아 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르바와 헤어진 후 몇 번의 편지를 주고 받고,
몇 년 뒤 조르바의 죽음을 예견한 꿈을 꾼 '나'는 조르바의 죽음 소식을 편지로 알게 된다.
4. 조르바 어록.
조르바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은 그가 던진 말들을 보면 알 수 있고,
그런 그의 말을 통해 독자는 괴이하지만,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은 아마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조르바의 삶을 부러워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도 조르바처럼?'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나도 소설 속의 '나'처럼 줄에 매여 있지만,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다.
조르바도 태어날 때부터 이런 자유주의 사상을 가진 것은 아니다.
그도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여하기도 하였고,
다른 사람들처럼 사회질서 속에 살기도 하였다.
그렇게 오랜 경험을 하고 나서 그가 배운 것이 바로 바로 자유를 초월한 삶이다.
그리고 그는 아나키스트와 같은 생각도 가지고 있고,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오쇼 라즈니쉬의 사상을 닮기도 하였다.
그가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나름대로 철저히 자신의 삶을 사랑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설속의 '나'처럼 사회 통제 하에 사회구성원의 모범적인 일원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또한 그렇게 살고 있고, 이런 삶이 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지금의 학교 생활을 막차고 나갈 용기도 없다.
조르바의 삶과 그의 철학에 대해 좋은 평가를 하고 했지만,
그와 같은 삶을 살 용기는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적 혹은 유교적 보수적인 애정관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그의 무분별하게 보이는 애정관은 나를 불편하게 하였다.
그의 인생관이 엿보이는 문구를 몇 개 발췌해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시오? 당신 역시 저울 한 벌 가지고 다니는 거 아니오? 매사를 정밀하게 달아 보는 버릇 말이오. 자, 젊은 양반, 결정해 버리쇼. 눈 꽉 감고 해버리는 거요."
"무슨 뜻이냐 하며, 임금이니, 민주주의니, 국민 투표니, 국회의원이니 해봐야 다 그게 그거니까 하는 소리요."
"안 해본 짓이 없다고 했지요? 한때 도자기를 만들었지요. 그 놀음에 미쳤더랬어요. 흙덩이를 가지고 만들고 싶은 건 아무거나 만든다는 게 어떤 건지 아시오? 프르르! 녹로를 돌리면 진흙덩이가 동그랗게 되는 겁니다. 흡사 당신의 이런 말을 알아들은 듯이 말입니다. '항아리를 만들어야지, 접시를 만들어야지, 아니 램프를 만들까, 귀신도 모를 물건을 만들까...'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건 모름지기 이런 게 아닐까요, 자유 말이오."
"결혼 말인가요? 공식적으로는 한 번 했지요. 비공식적으로는 천 번, 아니, 3천 번쯤 될거요. 정확하게 몇 번인지
내가 어떻게 알아요? 수탉이 장부 가지고 다니는 거 봤어요?"
"두목, 당신의 그 많은 책 쌓아 놓고 불이나 싸질러 버리시구랴, 그러면 알아요? 혹 인간이 될지?"
"두목, 인간이란 짐승이에요. 짐승이라도 엄청난 짐승이에요. 그런데도 두목은 이걸 알지 못해요. 당신에겐 인간이라는 것, 세상사라는 것이 너무 어려웠던 모양인데.... 내게 물어봐요! 짐승이라고 대답할 게요. 이 짐승을 사납게 대하면, 당신을 존경하고 두려워해요. 친절하게 대하면 눈이라도 뽑아 갈 거요. 두목, 거리를 둬요! 놈들 간덩이를 키우지 말아요. 우리는 평등하다, 우리에게 똑같은 권리가 있다, 이따위 소리는 하면 안 돼요. 그러면 당신에게 달려들어 당신 권리까지 빼앗고 당신 빵을 훔치고 굶어 죽게 할 거요. 두목, 좋은 걸 다 걸고 충고하건대, 거리를 둬요!"
"안 믿지요. 아무것도 안 믿어요. 몇 번이나 얘기해야 알아듣겠소?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꼽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를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산다는 게 곧 말썽이오. ... 죽으면 말썽이 없지. 산다는 것은.... 두목, 당신, 산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 아시오? 허리띠를 풀고 말썽거리를 만드는 게 바로 삶이오."
"두목 내 속에도 악마 같은 게 들어 있어요. 나는 그 악마를 조르바라고 부릅니다. 속에 있는 조르바는 나이 먹는 걸 싫어해요. 나이를 먹은 것도 아니고 먹어 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먹지 않을 거예요. 속의 조르바는 사람 잡아먹는 도깨비예요. 머리털은 칠흑처럼 검고 이빨은 서른 두개, 귀 뒤에다 빨간 카네이션을 꽂고 다닙니다. 바깥 조르바는 아이고 가엾어라, 장구배에다 흰 머리카락도 좀 있습니다. 시들어 주름살이 생긴 데다 이는 빠져나가고 커다란 귀에는 늙으면 나오는 흰 털이 늘어 영락없이 길쭉한 당나귀 귀가 되어 있지요."
"내가 인생과 맺은 계약에 시한조건이 없다는 걸 확인하려고 나는 가장 위험한 경사 길에서 브레이크를 풀어 봅니다. 인생이란, 가파른 경사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는 법이지요. 잘난 놈들은 모두 자기 브레이크를 씁니다. 그러나(두목, 이따금 내가 어떻게 생겨 먹었는가를 당신에게 보여주는 대목이겠는데) 나는 브레이크를 버린 지 오랩니다. 나는 꽈당 부딪치는 걸 두려워하지 않거든요. 기계가 선로를 이탈하는 걸 조심한다면 천만의 말씀이지요. 밤이고 낮이고 나는 전속력으로 내달으며 신명 꼴리는 대로 합니다. 부딪쳐 작살이 난다면 그뿐이죠. 그래 봐야 손해 갈 게 있을까요? 없어요. 천천히 가면 거기 안 가나요? 물론 가죠. 기왕 갈 바에는 화끈하게 가자 이겁니다."
"새 길을 닦으려면 새 계획을 세워야지요. 나는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자문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 하는가?><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잘해 보게.> <조르바, 자네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일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을 자르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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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김영일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07.12.21 일본을 갔다오고 정신 없는 하루하루를 보냈답니다. 그렇지만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이시간은 가장 행복한 시간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를 생각해 봤습니다. 학교생활에 얽매이다 보면 가끔은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의미가 있고 보람있는 것인지 회의가 일어나곤 하는데 그렇지만 나의 이 생활을 철저히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라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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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장콩선생 작성시간 07.12.22 저도 이 책 좋아하는디. 외국 소설로 의미있게 본 것이 유리알 유희. 희랍인 조르바. 모모. 백년동안의 고독 정도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