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이트에 들어오라고 해서 가입은 했으나 올린 글이 없는지라 영 불통이었습니다.
무슨 글이라도 써 놓아야 할 것 같아 근래 하기 싫은 숙제를 받아든 열등 학생처럼 끙끙거리다가
한시 두 수를 지었으므로, 한번 올려 봅니다.
이 한시를 짓게 된 데는 다음과 같은 연고가 있습니다.
저의 고향은 영주시 순흥의 소수서원 근방입니다. 그곳에서 살게 된 것은 약 5백 몇 십년 전,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란 이후 세상이 고약하다 하여 달성에서 은거하기 위하여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돈암(遯菴) 휘 徐翰廷이라는 분인데, 홀로 대구에서 이거하여 집성촌으로 세거하다가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근래 지역 한시회에서 연례행사로 전국 규모의 한시 백일장을 열었는데, 저의 입향조를 추모하는 것을 주제로 삼게 되었습니다. 2026년 5월2일, 영주시 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되어 전국에서 약 2백 몇십 명이 모였습니다.
다수의 입상자를 내고, 그 원고를 모아 한시집을 낸다고 하더니 후손도 몇 수 내어야 한다고 하여 문중에 의뢰해 왔고, 이를 받아 저도 어쩔 수 없이 쓰게 되었습니다. 평소 한시 같은 전 시대의 유물을 붙들고 있는 것을 아주 싫어하는 입장이지만 어거지로 만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옳게 짓지 못하고, 염도 밝지 못한 것은 한시에서는 흔히 '작대기 글'로 '字모듬' 한다고 합니다. 작대기글이란 문법을 그르치면서 짓는 글을 말하고, 字모듬이란 것 역시 생경하고 전거가 없는 단어를 두 자, 혹은 세 자씩 결합하여 만들어 낸 다음 시라고 쓰는 것을 말합니다.
저의 글이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한시의 반열에 설 수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심심풀이로 읽을 수는 있을 것 같고, 또 있는 것은 어디든지 기록해야 할 것 같아 써 봅니다.
영주에서의 한시 백일장은 7언율시로 하며, 운자는 天, 連, 賢, 邊, 傳이었습니다. 이를 그대로 따르되 저의 선조에 대한 행적과 정신을 내용으로 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란에 대한 것, 단종과 금성대군에 관한 비극적인 사건, 매월당과 같은 생육신에 대한 찬사와 선조의 은둔 등을 내용으로 하는데, 이는 저의 선조를 주제로 한 글마다 수백년 동안 이어온 주제였습니다.
한시 1
<丙午剛州遯菴先祖追念詩會時次韻>
國 步 有 哀 斯 頻 天. 국보유애사빈천
策 驢 南 遯 倣 仲 連. 책려남돈방중연
蕨 峯 採 薇 夷 聖 謨 궐봉채미이성모
登 岡 掛 瓢 箕 山 賢. 등강괘표기산현
沾 纓 王 公 畢 命 墟 첨영왕공필명허
荒 草 野 隱 悲 愁 邊. 황초야은비수변
借 地 一 隅 世 居 裡 차지일우세거리
發 揚 靖 節 永 恒 傳. 발양정절영항전
<병오년 영주의 遯菴선조 추모시회시 차운함>
나라의 명운이 위태하고 애통한 때
나귀 몰아 남녘에 숨은 것은 魯仲連이 하던 일.
궐봉에서 고비 뜯자 함은 伯夷를 본받음이요
등강에 표주박 걸리니 箕山 賢士의 모습.
눈물로 갓끈 적시며 王公이 殉命한 옛터에
궁벽한 草野에 숨어살며 근심 슬픔 잠기셨네.
이 땅 빌려 한 모퉁이 대대로 살아가며
사실 밝혀 선양하여 그 靖節 영원히 전하고자.
한시 2
又
延 秋 門 外 莫 籲 天. 연추문외막유천
憑 借 靖 難 國 蹇 連. 빙차정난국건연
周 有 五 叔 無 首 陽 주유오숙무수양
傚 似 朱 棣 戮 群 賢. 효사주체육군현
淸 泠 煙 浦 嗚 咽 中 청령연포오열중
竹 水 東 畔 泣 淚 邊. 죽수동반읍루변
多 謝 詩 樓 彬 彬 士 다사시루빈빈사
遯 祖 泯 跡 歷 歷傳. 돈조민적역역전
<앞과 같음>
연추문 밖에서는 하늘 향해 하소연 마소
靖難을 빙자하여 나라를 위태롭게 몰아갔네.
周나라 五叔 중 首陽 같은 숙부 없더라
燕王 朱棣 닮아 많은 賢臣 죽였도다.
청령포 안개 낀 나루에는 목메어 우는 울음
竹溪 동쪽 둔덕에서 눈물을 흘리누나.
감사하노니 詩壇에 모인 文質彬彬 선비님네,
遯菴 선조 泯滅 행적 낱낱이 전케 되리이다.
* 위의 시 가운데는 시경의 시 구절, 故事 등 주석을 달아야 할 것이 다수 있지만 지금 좀 귀찮아서 그만두기로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