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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일에 해탈과 자비가 겸한 나의 이름을 받다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07|조회수2 목록 댓글 0

 

 

 

해탈과 자비가 겸한 나의 이름을 받다

어느 해 현충일, 초봉(初峰 지운) 김철수(金錣洙) 선생께서 돌아가신 나의 아버님(金在鳳)이 몹시 보고 싶다 하시며 내(無耘) 집을 찾아오셨다.

자리에 앉으신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먹을 갈아라. 오늘이 현충절이니 글 몇 자 적으련다."

선생께서는 붓을 잡아 ‘연이관지(憐以觀之)’라 쓰시고는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사람은 물론이고 천하 만물도 모름지기 불쌍히 여겨 바라보아야 한다. 오늘 현충절에 뜻이 맞으니, 너의 이름도 이 구절에서 한 자씩 따서 ‘연관(憐觀)’이라 하거라."

내가 조심스레 여쭈었다.
"지난번에는 제 이름을 없을 무(無) 자에 김맬 운(耘) 자를 써서 ‘무운(無耘)’이라 지어주셨는데, 그것을 또 다르게 변경하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선생께서는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아니라네! 조국과 민족을 연민으로 바라보라는 뜻을 담아 현충절에 맞게 내린 이름이야. 추사 선생도 호가 백여덟 개나 되었다고 하지 않더냐. 모름지기 유명세를 타려면 호가 많아야 하는 법이지."

내가 다시 여쭈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이름 중에 하나를 주로 쓰려면 어느 것으로 해야 합니까?"

선생께서 명쾌하게 답을 내려주셨다.
"형편대로 쓰게나. 무운(無耘)은 삶의 ‘체(體)’가 되고 바탕이 되는 것이요, 그 바탕 위에서 연관(憐觀)이 ‘용(用)’으로 들어가야 뜻이 완벽해지는 법이라네.

그러니 항상 평등하여 풀을 맬 필요조차 없는 고요한 ‘무운선경(無耘禪境)’의 마음을 바탕에 두고, 세상에 마음을 내거나 행동할 때는 자비심으로 백성을 불쌍히 여기는 ‘연이관지(憐以觀之)’의 태도를 취해야 하네. 그래야만 해탈과 자비가 겸비되어 비로소 완벽한 이름이 되는 것이지."

그리고 선생께서는 마지막으로 내게 간곡한 당부를 남기셨다.
"너도 앞으로 살림이 넉넉해지고 밥술이나 뜨게 되거든, 네 아버님의 이력과 삶에 부끄럽지 않도록 고아원이나 양로당 같은 것을 운영하며 늘 백성을 불쌍히 여겨 살피거라."

이날 선생께서 현충일을 현충절로 말슴하신 이유는 선생께서는 단순히 쉬는 공휴일(日) 개념을 넘어, 조국과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영령들을 기리는 이 날을 가장 숭고한 민족적 기념일(節)로 엄숙하게 대하셨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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