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에 생각나는 글귀
어느 해 현충일이었다. 초봉(初峰, 지운) 김철수 선생께서 "너의 아버지 김재봉 동지가 보고 싶어 왔다"라며 익산의 우리 집을 찾아오셨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평소 친하게 지내던 지인들에게 연락해 선생의 말씀을 함께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 자리에서 선생께서는 글 한 점을 쓰시더니, 함께 있던 원불교 정녀 교무에게 선물하셨다.
정녀 교무는 나와 진주교구에서 함께 근무했던 동료다. 그의 어머니는 나와 동산선원을 함께 졸업한 동기였고,
서울교당에서 근무하실 때는 나의 어머니 박명덕 교도와 고향(밀양)이 같아 깊은 인연을 맺으셨다.
그런 내력 덕분에 내가 동산선원에서 공부할 때도 과분한 사랑과 인정을 받았다.
현충일 날, 익산 우리 집에서 초봉 김철수 선생이 정녀교무에게 써 주신 글은 선생의 고향인 부안의 기생, 이매창의 시조였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임 / 추풍낙엽(秋風落葉)에 저도 날 생각는가 /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글을 건네며 초봉 김철수선생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성직자는 늘 진리를 등불 삼아 가까이하며 닮아가야 한다네. 한번 세운 서원(誓願)을 변함없이 지켜내는 그 곧은 수행의 절개가 바로 이 시조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지."
옛 동지를 그리워하던 어른의 마음과, 성직자의 곧은 절개를 당부하던 그날의 음성이 오늘 현충일의 짙은 녹음 속에서 여전히 생생하게 들려오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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