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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지인의 신상보고를 받다.

작성자無耘|작성시간26.06.15|조회수0 목록 댓글 0

처음부터 인사가 잘못되었다.

내가 이리교구청 사무장을 마지막으로 원불교 교정원 재무과장직을 끝내고 휴무를 신청했다. 

그리고 이리 중앙교구청 사무장을 맡아 근무하던중 교구장의 부당거래에 내가 바른말을 해서 밀려날 때 억울해서 휴무계를 내니 아내가 못하게 했다. 

"내가 당신과 결혼한 것은 전부출신 잘하기로 한 것인데 그만두면 어떻게 하느냐고 극구 반대를 해서 하는 수없이 변방의 지리산 함양의 지곡교당에 배치되었다.

다시 옮겨 몇개원 근무하면서 익산과 너무멀어 집에 자주 못하고 처음부임한 곳이라 열씸히 교화하던중 아내가 쓰러지고 아프다는 전갈을 받고 가서 보니 이미 환자가 다 되어 있었

다. 

결론적으로 ㅁ말하면 위암말기환자였다. 

 

이유는 아내가 위암 수술을 받고 서울 원자력 병원에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기때문에 내가 없이는 가지 못하기 때문이라 공사와 사사간에 나의 성격상 분명하기 위해서이다. 

처음 아내의 병운 내가 경남함양의 지곡교당에 근무할 때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무슨병인지 원인도 모르고 돈도 없고 또는 공사를 한답시고 가정을 등한시하면서 점점 병맥이 깊어짐에 한번은 나의 스승 초봉 김철수선생께서 나에게 아무 피붙이가 없어 외롭다고 형제로 정해주신 ㅇㅇㅇ선생에게 연락을 하였더니 

바로 서울로 올라오라고 하셨다. 

방원선생의 장남이 원자력 병원 안과 과장인데도 ㅇㅇㅇ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나와 미아삼거리에 있는 ㅇㅇㅇ병원이 단골병원이라고 하시면서 국내에서 종합적으로 가장 잘 본다고 하시면서 진찰을 의뢰하였다. 

몇번의 진찰결과 암말기라고 하였다. 그리고 어떻게 참고 살았는지 대단한 인내심이다고 말하였다.

서울 방원선생집에서 하룻밤 잠자고 바로 원자력병원에 입원하였다.

그당시 원자력 병원에 입원 하기는 하늘에 별따기인데 바로 입원할 수 있었던 것은 장남이 원자력 병원 안과 과장이라 수시로 원자력병원을 방문해서 원장과 친숙한 사이였기 때문이고 

가장 유력한 이유는 원자력 병원장의 부친이 나의 스승 초봉 김철수선생과 일본 와세다대학 유학생이라는 점인데 이승만 자유당시절 내무부장관을 한이의 아들이라는 것으로 내가 김철수의 친아들과 같은 신분으로 소개하여 바로 입원수속이 되었었다. 

아내의 입원과 수술은 빠르게 진척되었고 스비스도 최상이였다. 

언자력 원장의 지시로 수의사가 선정되고 수술을 담당할 의사는 부원장인 백남선외과 과장이 맡았다.

수술을 담당할 백남선과장은 아내와 출신지도 전북 익산이라 더없이 걱정되는 마음에 위로를 받는가 보다.

ㅇㅇㅇ 외과과장은 자기의 부인의 암 수술도 직접 하였다는데 일반적으로는 본인의 아내를 직접 수술하는 자는 극히 드물다고 하였다

수술을 마치고 병동에 있을 때는 토요일 오후에 삼화금속 에프엔진을 장착한 코란도 를 몰고 서울에서 저녁먹고 밤세워 경남 함양 지곡까지 가서 일요일 일반법회에 얼굴네밀고 점심먹고 출발해서 익산 들려 아이들 보살피고 저녁먹고 밤사이 서울에 새벽에 도착해서 아내를 간호하는 일을 5년동안 했다.

위암수술한 자는 체중이 빠지면 죽는다고 수간호사가 극진히도 챙겨주셨고 아침마다 담당의사의 질료순시차 들려 아내에게 위로한 말들은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난다.

말기암 수술도 잘되고 방사선치료도 잘되어 아내의 체중이 증가하고 완치에 가깝게 되니 퇴원을 하라 한다.

그동안 나의 근무처가 원자력 병원과 너무 멀어 휴무계를 냈는데 종법사를 지낸 ㅇㅇㅇ교무가 나와 같은 또래라 그당시 인사담당 총무부장이라 그냥 부교무를 줄테니 한가한 교당을 맡고 아내의 병이 완쾌되면 그 때 열씸히 근무하면 된다면서 휴무계를 못내게 했다.

또 한가지 이유는 내가 교단에서 혼자이고 주위에 빽이라곤 아무도 없는 터라 가정의 경제사정으로 두번이나 휴무계를 낸 경력으로 않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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