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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춘천문화원 여름맞이 한시 전자백일장 개최(제6회)

작성자푸른지구|작성시간26.06.05|조회수51 목록 댓글 0

2026 춘천 여름맞이 한시 전자백일장 개최(제6회)

  춘천문화원과 소양한시회는 공동으로 2025년부터 연간 4회 한시백일장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그 6회째 사업으로서 2026년 여름맞이 한시를 공모합니다. 이번에는 춘천인의 호국정신을 기리고자 ‘춘천대첩(春川大捷)’을 주제로 하였습니다. 우리의 국문학이자 전통문학인 한시를 다시 일으키고, 아름다운 춘천을 널리 알리고자 하오니 많이 응모하여주시기 바랍니다.  

1. 주최 : 춘천문화원 
   주관 : 소양한시회(한국한시협회 춘천지회)  

 

2. 응시자격 : 한시에 관심 있는 분(지역, 국내외 불문)  

3. 응시작품 제목 : <春川大捷 춘천대첩> 
    - 춘천대첩 요약 ; 별첨 

 

4. 작시 형식 : 칠언절구, 고체시
    - 운(韻)은 자유 제2구와 제4구에 같은 운통(목)사용(一韻到底), 
      평측(平仄)과 글자 중첩(疊字), 제목의 글자 사용(犯題) 불문
    
5. 응시작품 제출 기한 : 2026. 6. 30 까지  

 

6. 응시작품 제출처 : 이메일 : 손호정 hsohn@daum.net

 

7. 심사결과 발표 : 2026. 7월 초순  

8. 시상 계획 : 춘천문화원장의 상장과 소정의 상금
   (장원 상은 직접 시상)
     - 장원 1인 30만 원, - 우수 1인 15만 원 
     - 가작 1인 10만 원, - 장려 1인  5만 원   
  
9. 원고 형식 예시

  ①제목: 春川大捷 춘천대첩
  ②본문: 한문과 한글 토음   
                (한문)          (한글)
           ○○○○○○○  ◍◍◍◍◍◍◍
           ○○○○○○◎  ◍◍◍◍◍◍◍
           ○○○○○○○  ◍◍◍◍◍◍◍
           ○○○○○○◎  ◍◍◍◍◍◍◍
  ③해석:   한글(각 구 20자 이내)  
  
  ④ 응시자 인적사항
       - 아호 및 이름(한자병기): 靑梅청해 金○○   김○○
       - 주소 : 춘천시 근화길 15번길 ○○. ○○아파트  ○○○동 
                ○○○호.   우편번호 24360
       - 전화: 010-○○○○-○○○○
       - 입금 계좌명: 농협 179-○○-○○○○○○

9. 입선 및 참가한 시는 춘천문화원 홈페이지(http://www.cccc.or.kr) 
   공지사항 및 
   한국한시협회 홈페이지(http://www.sahansi.co.kr) 게시판,
   소양한시회 카페 (https://cafe.daum.net/soyanghansi)에 
   게재하고, 추후 시집으로 발간예정 
 
10. 문의 및 연락처 : 소양한시회 회장 손호정 010-8813-2992






춘천문화원장 권  은  석 
소양한시회장 손  호  정 

[춘천대첩 요약]

  춘천은 역사적으로 호국정신을 이어가는 충의의 고장이다. 몽골 침입 때 군민이 분전한 봉의 산성의 유적이 있고, 구한말 의병 전쟁의 중심에 13도의군 대장 유인석과 춘천 의병장 이소응 선생의 기치 아래 수많은 의병의 피어린 진군이 있었다. 그리고 일제에 항거하여 3.1 독립운동에 앞장선 학생들이 있었다. 그 정신이 6·25전쟁 초기에 또 한 번 불같이 일어나 큰 전과를 올렸으니  이른바 춘천대첩이다. 국방부에서는 낙동강 방어 전투, 인천상륙작전과 함께 이 전과를 한국전쟁의 3대 대첩으로 기록하였다. 
  

  북한군은 제2군단을 투입해 춘천을 하루 만에 돌파하고, 수원으로 내려가서 국군 주력부대를 이중으로 포위할 계획이었다. 이를 위해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모터사이클 연대와 자주포를 춘천 일대에 배치했다. 춘천 축선에 제2사단, 홍천 축선에 제12사단을 투입하고 제5사단을 예비로 공격했다.
  국군은 4배나 병력이 많고, 10배가 넘는 화력을 가진 북한군에 맞서야 했다. 당시 국군 제6사단장(김종오 대령)은 사단본부를 원주에 두고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예측하에 최대한의 사전 준비를 했다. 그는 동북방 일대에서 북한군의 움직임을 계속 정찰한 결과, '공격 징후'가 임박한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전군(全軍)의 비상은 해제되었지만, 다른 부대와 달리 장병들 휴가를 제한했다. 춘천 북방의 방어를 맡은 7연대(연대장 임부택 중령)는 휴가를 춘천지역으로 한정하고, 의심스러운 지역엔 정찰대를 보내 북한군의 움직임을 살폈다. 전쟁에 대비해 진지를 구축했고, 소양강변과 고지를 이어 방어선을 여러 겹 준비했다. 그리고 소대 단위 훈련을 마치고, 일부는 중대와 대대 단위 전술훈련을 했다. (춘천문화원, 『한국전쟁과 춘천』(2020, 강원도민일보)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군 제2사단은 막대한 전력으로 우리의 진지에 포격을 시작하였고, 우리 군의 완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38선은 무너져 갔다. 제7중대가 철수하고 있을 때 내평리(內平里) 내평지서(지서장 노종해 경위)가 고립되자 경찰관 12명과 대한청년단(단장 김봉림)원들이 모래주머니를 쌓고 저항하다가 지서장을 비롯한 대원이 거의 전사하고 몇 명만 탈출하였다. 이들의 저항으로 국군 제2대대는 소양강 남안에 방어선을 형성할 수 있었다. 북한군은 북한강 길목의 모진교를 돌파하고 넓은 들판인 옥산포를 가로질러 남하하고자 했다. 대기하던 국군 제6사단 7연대는 우두산에 진지를 구축하고, 봉의산 후면의 포병대까지 합세하여 개활지에 있는 북한군을 향해 900여 발의 포탄을 쏘며 적을 섬멸했다. 26일에는 가래메기(소양교서안 모래밭) 일대에 살상지대를 운용해 북한군에 심대한 피해를 주었다. 
  북한군의 진격으로 전방에 배치된 포병의 탄약이 위험해졌다. 그러나 전투에 사용할 5,000여 발의 포탄을 군인들만의 힘으로 옮기기는 어려웠다. 이때 춘천 시민들이 발 벗고 나섰다. 특히 춘천농업고등학교 학도호국단 학생들을 선두로 춘천고등학교, 춘천사범학교 학생들은 교복을 입은 채 집에서 쓰던 손수레를 가져와 포탄을 옮겼다. 군과 경찰의 안내에 따라 제사공장 인근의 병기고에서 소양 1교를 지나 춘천사범학교까지 옮겼다. 제사공장 여공들도 함께 힘을 보탰다. 그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장병들에게 나눠주며 응원했다. 이렇게 민관군이 함께 뭉쳐 북한군의 기습공격을 막아냈다. 그 결과, 6월 25일 당일 춘천을 점령하려던 북한군의 작전은 보기 좋게 실패했다. 이렇게 춘천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준 덕분에 국군은 재정비할 시간을 얻었다. 국군은 ‘한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미군과 유엔군은 초기 대응 시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이때 국군 제6사단 심일 소위는 대전차포로 북한군의 자주포 전차를 공격했다. 소양교 북쪽에서 계속 남진하는 전차에 2차례나 공격했지만, 효과가 없자 5명의 특공대를 조직했다. 특공대는 화염병과 수류탄을 들고 길가에 매복해 있다가 전차에 올라타 포탑과 포신에 수류탄을 집어넣어 전차를 파괴했다. 이 공로로 심일 소위는 태극무공훈장과 미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국군은 춘천에서 3일간을 버티다가 6월 28일 원창고개선, 다시 모래재선으로 후퇴했다. 국군 제6사단 2연대는 홍천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진지를 점령했다. 여기에서도 조달진 일병을 비롯한 11명의 특공대를 조직하였다. 시체 사이에 몸을 숨겼다가 수류탄을 들고 적 전차에 돌진했다. 연쇄 폭발이 이어졌고, 불길과 연기가 치솟았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포병 화력과 근접전으로 적을 제압하고, 적 전차 7대를 파괴하며, 40여 명의 적을 사살했다. 당시 용감한 국군장병들이 말고개에서 공격한 전차는 뒤에 확인한 결과 SU-76 자주포였다고 한다. (장삼열,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6.25 전쟁 이야기』) 춘천과 홍천 일대에서 국군은 368명의 전 사상자가 발생했다. 반면 북한군은 무려 6,700여 명이 사살되었고, 122명이 포로로 잡혔다. 자주포 25대와 전투 장비까지 파괴되면서 북한군 전력에 큰 손실을 입혔다. 이는 단순한 전투 승리가 아니라 전쟁 전체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인 전투였다. 

 

  춘천대첩은 군과 경찰, 학생, 여공과 시민이 하나가 되어 거둔 세계 전쟁사에 남을 큰 승리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춘천 정신’은 바로 그 연대에 있다. 춘천시는 후손에게 기억을 남기기 위해 지난해 춘천대첩기념평화공원을 근화동 수변에 조성했다. 이번에 설치된 기념탑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기억과 사색을 품은 공간으로 설계됐다. 기념탑의 명칭은 ‘충혼의 빛’이다. (춘천 시정소식지 2025년 6월호 『봄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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