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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시 감상

送人 임을 보내며 - 崔慶昌

작성자푸른지구|작성시간26.06.09|조회수14 목록 댓글 0

   送人

                        崔慶昌

 

楊柳青青著地垂 양류청청저지수

楊花漫漫攪天飛 양화만만교천비

柳條折盡花飛盡 유조절진화비진

借問行人歸不歸 차문행인귀불귀

 

버들잎 푸르게 땅에 드리우고

버들꽃은 하늘 가득 흩날리네.

버들가지는 다 꺾이고 꽃잎마저 다 흩어졌는데

묻노니 그대, 돌아올 것인가, 말 것인가.

 

최경창(崔慶昌, 1539~1583)은 조선 선조 때의 문신·시인이며, 자는 가운(嘉運), 호는 고죽(孤竹), 본관은 해주(海州)이다. 조선 중기 당시풍(唐詩風)을 대표하는 시인으로, 백광훈·이달과 함께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렸다. 그는 1539년 전라도 영암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시문과 음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1568년(선조 원년) 문과에 급제한 뒤 사간원 정언, 예조·병조의 낭관, 북도평사, 종성부사 등 여러 관직을 지냈다. 최경창의 이름이 오늘날까지 널리 알려진 이유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시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시를 맑고 담백하며 당나라 시풍에 가장 가까운 작품으로 평가하였다. 특히 이달(李達), 백광훈(白光勳)과 함께 조선 중기 시단을 이끈 삼당시인의 한 사람으로 추앙하였다.

둘째는 홍랑(洪娘)과의 사랑이다. 함경도 경성에 부임했을 때 관기 홍랑을 만나 깊은 정을 나누었고,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홍랑이 지은 시조 「묏버들 가려 꺾어」가 문학사에 남았다. 최경창 역시 이를 한시 「翻方曲」으로 옮겼으며, 여러 송별시를 남겼다.

그러나 홍랑과의 관계는 당시 조정의 비판을 받았고, 결국 관직 생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당쟁의 와중에 여러 차례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1583년(선조 16) 방어사 종사관으로 임명되어 서울로 올라오던 중 함경도 경성 객관에서 갑자기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5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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