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아나 애실의 ‘다 늙어 배운 그림이 준 기쁨’
(영국의 유명한 편집인이고, 작가인 애실이 노년에 쓴 ‘어떻게 늙을까’에서)
늙었을 때는 인간관계도 물론 중요하지만 활동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약 이십 년 전만 해도 런던에 살면 굉장히 다양한 저녁 강좌들을 거의 무료로 들을 수 있었다. 교만하게도 나는 오랫동안 그런 강좌를 듣는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몸이 자꾸 불어 내 형편에 맞는 어느 가게를 가도 마음에 맞는 기성복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이참에 옷 만드는 법을 배워봐야 겠다 싶어 알아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인근 초등학교에 가서 양재 강좌를 신청하려고 보니 강좌들이 어찌나 많더니, 중국어와 러시아어 같은 갖가지 어학 강좌는 물론이고 각종 춤과 그림과 노래도 배울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 정비 기술에 골동품 수집, 배관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없는 게 없었다. 그 즉시 수요일 저녁마다 몇몇 사람과 더불어 아이들 도서관의 작은 책상에 난쟁이처럼 쭈구리고 앉아서 즐겁게 바느질을 시작했다. 우리 재봉반은 특히 운이 좋았던지 비디 맥스웰같은 소중한 분을 선생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그는 귀에 쏙쏙 들어오게 잘 가르쳤을 뿐 아니라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우리 우정의 구심점이 되어 주었다. 우리 반만 그렇게 수업 시간이 즐거웠던 건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육 년 쯤 지난 후부터 거의 무료로 진해되던 그 많은 강의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전부터 조금씩 위험이 감지되긴 했다. 수강생이 열 명이 안 되면 어떤 강의든 폐강되어버려 우리는 가끔 뉘 집의 자상한 남편을 억지로 끌고 와 천 쪼가리 하나를 안기고는 넥타이 만드는 시늉을 하고 앉아 있게 했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특별한 제도가 통째로 없어져버렸다. 물론 기꺼이 수강료를 지불하는 사람들을 위한 저녁 강좌 운영 기관들은 계속 남아 있었고, 내게는 성인용 강좌들이 인생의 좋은 벗이 되어 주었다.
처음에 내가 성인 강좌에서 그림을 배워볼까 하고 생각하게 된 건 어머니 때문이었다. 어머니는 칠십대 중반에 ‘즐거운 그림 교실’에 다녔다. 어머니와 함께 수업을 들었던 이들 중에는 엽서를 세밀하게 모사하는데 만족하는 이들도 있고 좀 더 도전적인 이들도 있었다. 어머니는 그중에서도 과감한 축에 속했다. 정물화 몇 점과 아주 특이한 자화상도 한 점 그렸다. 그림 그리는 걸 매우 좋아했던 어머니를 봐서인지 칠십대 중반에 재봉 강좌가 폐강되자 나도 어머니처럼 그림을 그려보자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학창 시절에 늘 미술 시간이 좋았고, 한때는 일요화가 노릇도 잠시 즐기다가 직업상 그럴 여유가 없음을 깨닫고 그만 두었다. 뭔가를 그리고 싶다면 언제든 한번 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처음으로 실제 모델을 그리는 라이프 클래스(Life class)를 들은 건 아직 일을 하고 있을 때(75세에 은퇴했다.) 였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필요한 집중력을 발휘하려면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리고 은퇴 후에는 내가 살던 곳에서 모퉁이만 돌아가면 제대로 된 좋은 라이프 클래서가 있어 한 동안 잘 다녔다.
그 미술교실에서 모델의 모사가 목표였던 학생은 아마 내가 유일했을 것이다. 대다수는 현대미술과 같은 효과가 나기를 바라며 종이 위에 자국을 내는 걸 목표로 삼은 듯 보였으니까 그들에게도 나의 시도는 분명 지루하고 고루해 보였을 것이다. 나 역시 그들이 하는 일이 터무니 없는 시간 낭비로 보였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아마 내가 늙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수도 있지만, 늙었다고 반드시 틀리라는 법도 없다. 장담컨대 숙달된 솜씨로 만든 것이 아니면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고 나이든 사람들만 생각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돈이 많다면 미술작품을 수집하고 싶다. 드로잉과 회화 모두 수집하고 싶다. 회화도 여러 가지로 흥미롭지만, 인생의 한 순간을 포착한 드로잉이 더 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드로잉이란 위대하든, 아니든 예술가들이 뭔가를 이해하려 하거나 보존하고 싶은 뭔가를 포착하려 할 때 하는 것이다. 예술가들은 그렇게 즉시성과 소통하며 시간을 폐기할 수 있다. 내게는 빅토리아 시대의 예술가가 그린 드로잉 한 점 있다. 아내가 어린 딸에게 촛불 옆에서 책 읽는 법을 가르치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또 15세기에 살았던 피사넬로에 관한 어느 책에는 ‘목 매달린 남자들을 재빠르게 스케치한 그림이 내 집에 있다. 숨넘어가는 사람의 모습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린 이 드로잉은 마치 사람들이 현장에서 그 광경을 똑똑히 보는 것 같다.(이상하게도 예술작품으로 내놓은 드로잉들은 사적인 기록이나 연구보다 환각적인 효과가 덜 하다.)
두 눈과 두 손이 있다고 해서 그걸 제대로 사용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별한 재능을 가진 몇 몇 사람들은 처음부터 그런 능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우리 중에도 처음에는 서투르지만 교육과 연습을 거치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라이프 클래스의 목적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보는 법과 눈에 보이는 것을 손으로 재현하는 법을 가르치는 것, 그러다 마침내 손으로 그리는 선들 자체가 무엇을 그린 건지 설명할 뿐만 아니라 만족을(아니 어쩌면 깊은 행복감이나 두려움, 아니면 뭐든 간에) 줄 만큼 자신있게 그릴 수 있게 해주는 것 말이다. 일단 그 정도의 솜씨를 갖게 되고 나면 나가서 자유롭게 그리고 싶은 건 뭐든 그릴 수 있을테고, 그렇게 그린 작품은 살아 있을 것이다.
나는 나체를 그리려고 처음 시도 했을 때에야 그 일이 얼마나 어렵고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우리가 집중해 살펴볼 수 있도록 침착하게 우리 눈앞에 발가벗은 채 자신을 드러낸 사람을 보고 있으면, ‘라이프 클래스’라는 말이 얼마나 정혹한 표현인지 실감하게 된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정확히 생명이다. 우리 존재의 그 설명할 수 없는 놀라운 원인, 모든 관심과 존중을 받아 마땅한 바로 그 생명 말이다. 그래서 대다수 사람들은 건축물이나 기계 같은 인공물보다 다른 사람이나 동물이나 초목을 그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물론 인공물 뎃생에 뛰어난 화가도 있고 또 그런 건 지루할 거라고 여기는 건 아마도 어리석고 별난 내 성격 탓이지만)
처음으로 나체를 그리려고 시도해보니 드로잉의 질을 결정하는 독창성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있는 대상에 바치는 화가의 관심과 경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연구하고 있는 대상의 참된 본질을 탐색하려면 가능한 한 기술이 숙련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그런 탐색에는 하나의 대상이 , 아니 때로는 대상들 안에 구현한 하나의 주제가 필요하다. 고야의 (전쟁의 참화)나 투우 연작을 생각해보라. 평면을 그 자체만으로도 흥미로운 볼거리로 만들려면 그러니까 보는 이의 시선을 붙들고 화가 자신뿐 아니라 남들에게도 감동이나 즐거움을 주는 예술품으로 만들려면 색채를 이해하고 패턴이 창의적이어야 하는데 그건 흔한 능력이 아니다. 하지마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기 자신을 매우 진지하게 대하는 일인 경우도 꽤 있다. 가령 엄청난 자존심을 가진 사람만이 지루해 죽는 일 없이, 단조롭고 평범한 색 한 가지나 두 가지 아니면 세 가지만으로 많은 작품을 생산해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말도 안 되는 것 같은 비재현 미술이 그런 경우이다. 또 실내 장식으로 제격인 듯한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작품들은 주제를 탐색하고 찬양하고 공격하는 작품과 달리 내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다.
두 번째로 다니던 라이프 클래서가 재밌긴 했지만 그만두기로 했다. 매일같이 열심히 그려야 그림이 더 나아질 것 같은데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해도 나란 사람은 이미지보다는 말을 다루는 사람이라 결코 일러스트레이터 이상은 못 될 거라는 확신이 들어 관심을 잃은 거라면 일종의 허영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직도 간간이 그림 그리기를 즐기는데 그럴 힘이 좀 더 자주 있었으면 싶다. 그림에는 아직도 몰입할 수 있으니까 그런 수업들을 들을 수 있어 다행이었던 것은 화가는 못 됐어도 내 빈약한 시도가 남긴 긍정적인 결과가 있어서 이다. 이젠 예전보다 사물을 훨씬 잘 보게 됐다. 이는 그림을 그려 본 사람들이 종종 하는 말이다. 그림 그리기는 늙어서도 시도해 볼 만하다. 덕분에 인생이 조금이나마 즐거워지니까.
<다이아나 애실>
영국 노퍽에서 1917년에 태어났다. 옥스퍼드 졸업, 2차 대전 시에는 BBC에서 일했다. 종전 후에 친구 안드레이 도이취와 문학 전문 출판사인 앨런 윈게이트 출판사(훗날 안드레도이취 출판사)를 설립했다. 75세에 출판사에서 은퇴했다. 출판사에서 일하면서 유명한 문인들을 발굴했다.
자신도 여러 편의 소설을 썼다. 특히 회고록을 발표하여 탁월한 작가라는 칭송을 받았다. 회고록은 2006년에 한국에서 출간한 ‘그대로 두기’와 ‘어떻게 늙을까?’가 있다.
2015년에 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