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칫집

작성자서영희(37기)|작성시간26.06.12|조회수66 목록 댓글 2

잔칫집

 

서 영 희

 

어릴 적 우리 집은 늘 손님들로 북적였다넉넉하지 않았지만친척들이

올망졸망 한동네에 모여 살았다.

도로 건너 초등학교 뒤쪽을 돌아가면 큰이모가 살았다이모네 골목을 끼고 모퉁이를 돌아가면 외갓집이 있었다사촌들은 모두 같은 학교에 다녔다. 소풍을 가거나가을 운동회 날은 집안 잔치가 되기 일쑤였다음식 솜씨가 뛰어난 우리 엄마는 집안 대표로 김밥을 쌌다이모는 사촌들의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준비해 주셨고제일 어르신인 외삼촌은 용돈을 꾹 찔러주셨다도시락을 싸고 남은 김밥 꽁다리를 먹을 수 있는 행운도 소풍날 덤으로 얻는 선물이었다형제들은 눈곱이 떨어지기도 전에 도마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외할아버지 제삿날은 친척들의 회식 날이다제사는 자손들이 모여서 안부

도 챙기며 어우렁더우렁 살아가라고 만들어 놓은 선조들의 깊은 뜻이 담겨

있다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학교 수업이 끝나기 무섭게 외갓집에 모였다놀다가 지겨워질 때쯤 밖으로 나가 고무줄놀이를 했다술래의 고무줄이 무릎에서 허리를 넘어갈 때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죽기 살기로 최선을 다했다정신없이 놀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면 어느새 어둠살이가 슬금슬금 내려오고 있었다배꼽시계에 맞춰 외갓집으로 달려가면 문이 잠겨 있었다우리는 문고리를 잡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댔다그럴 때면 담장 너머로 바가지 물 폭탄이 답변을 대신했다철없는 외손주들의 성화가 외숙모에게 눈치 보인 외할머니의 리액션이었다.

 

 “이 놈의 손들 아저녁이나 묵고 오지. 퍼뜩 집에 가거라.”

 

때를 기다려 한껏 소리를 질러대면 뽀로통한 외숙모의 얼굴이 빗장 너머로 스치고그 틈을 비집으며 우리는 외갓집으로 쳐들어갔다.

 마루 앞에 이모가 아끼던 구두 한 짝이 뒤축이 구겨진 채로 돌아져 있었다방안에는 분통 터지는 소리를 질러 대며 우는 이모와 안타까워하는 엄마가 보였다이종사촌 오빠가 학교를 빼먹고 결석했단다한창 공부할 시간에 롤러스케이트장에 들락거렸다선생님의 연락을 받고 이모는 부리나케 우리 집으로 달려온 것이다이모는 엄마에게 잡으러 가자고 지원을 요청했다롤러스케이트장에서 만난 오빠는 잔뜩 폼을 잡은 채로 즐기고 있었다고 했다이모는 소리를 지르고 엄마는 소리의 무게만큼 강도 높은 스피드로 등짝 스매싱을 날렸다그 길로 오빠는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특별 관리 대상으로 자유를 포박당한 채 지내야만 했다. 얼기 설기로 찐득하게 정을 덧붙여가며 하루는 울고 하루는 웃으며 보냈다. 우리 집안의 사촌 형제들은 우당탕거리며 사람 냄새나는 일상으로 살았다혼자 놀기보다 부딪치고 마음을 나누다 보니 따뜻한 감성이 한 움큼 더 발달되었는지 모르겠다.

외가 식구들은 늘 우리 아버지가 점잖다고 말씀하셨다아버지는 자식들이 차분하게 자라기를 바라셨다목젖까지 보이고 신나게 떠들다가도 아버지만 나타나면 사촌들은 에프킬러에 맞은 모기떼처럼 스르르 흩어져 자진 해산했다나는 좋은 분위기를 망치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울 때가 더러 있었다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빈집일 때가 싫었다덩그러니 아무도 없는 빈방 한가운데 물기 빠진 고구마가 기다릴 때면 길 건너 외갓집으로 달려갔다나는 어른이 되면 식구가 많은 집으로 시집을 가서 사람 냄새를 맡으며 살고 싶었다.

  그 꿈이 이루어졌다어린이집 원장이 되어 나는 아이들과 매일 잔치를 하고 있다어쩌면 하루하루가 잔칫집이다아침이 되면 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오늘의 주인공이다작은 가방이 선물 보따리처럼 들려 있고입가에는 막 시작된 잔치의 설렘이 묻어 있다.

 

 “선생님나 오늘 혼자 신발 신었어요!”

 

 들려오는 목소리가 잔칫집에서 터지는 첫 웃음처럼 반갑다교실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상이 차려진다거창한 음식 대신 칭찬 한 숟갈배려 한 조각그리고 웃음 한 그릇이 오간다아이들은 그걸 나누며 때로는 까르르 웃고때로는 울음을 터뜨리지만그것마저도 잔치의 한 장면처럼 정겹다.

선생님은 분주한 잔칫집 주인장이다이쪽에서 “잘했어!” 하고 박수를 쳐주다가 저쪽에 가서 조용히 손을 잡아준다그렇게 하루의 잔치는 크지 않아도 따뜻하고소박하게 이어진다가끔 학부모의 응원을 받으며 잔치를 벌일 때는 교사들과 나는 행복을 퍼 나르는 요리사가 되기도 한다해가 질무렵이면 아이들이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고 잔칫집은 다시 조용해진다하지만 금세 알 수 있다누군가는 내일의 멋진 잔치를 위해 열정 한 숟가락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음을내일이면 또다시 웃음으로 사람 냄새 나는 잔칫집이 될 거라고 믿고 산다.

매일의 삶이 잔칫집을 방불케 했던 유년의 삶과 현재의 나의 하루가 똑같은 광경으로 돌아가고 있다어른에게 배우고 아이를 통해 배운 것이 많은 삶축복이지 않은가식구 많은 집을 원했던 꿈이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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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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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윤일선(44기) | 작성시간 26.06.12 원장님의 늘 잔치집 글 우리가 살아가는 에너지 라고 봅니다 어떤진미도 자녀 출가후 두 부부의 밥상에선 맛도 약해지는것 같애요 사람사는 제미 잘읽었습니다
  • 작성자정홍표( 44기 ) | 작성시간 26.06.12 그 옛날
    우리들에게는
    사촌과 이모,삼촌들도 가족이었는데
    우리 아이의 아이들은
    어린이집, 유치원 선생님들이 이모, 삼촌이네요
    아쉽지만 그나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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