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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잘하기는 했지만, 한국외국어대 동시통역 대학원에 들어갔을 때 같이 공부한 30명의 학생 중 그녀가 영어를 제일 잘 한 것은 아니었다. 거기에는 현지에서 살다 온 친구들이 많아서 영어 실력만으로 두각을 나타내기는 힘들었다. 영어 실력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이야말로 이보영의 현재를 만든 중요한 요인이다.
이보영은 TV와 라디오 방송에 나와 발랄하게 떠들어대곤 하는데, 어린 시절은 지금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무지하게 소심하고 내성적’이었다고 한다. 자신감이 없고, 어디 나서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어머니 김경오 씨는 국내 여성 1호 파일럿이었는데, 이보영이 학교에 가면 여러 선생들이 어머니 때문에 아는 척을 하는 것도 싫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그 다음날부터는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 외국 선수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아침 인사를 하면서 그 날 아침 메뉴를 알려 주기도 하고, 경기가 없는 날은 쇼핑을 가겠느냐고 물어보고, 행선지를 잡아 주고 셔틀 버스도 알아봐 주었다. 이보영이 그렇게 행동하자 선수들 사이에서 ‘식권 파는 여자 애가 말 좀 한다, 그 아이한테 물어보면 안내를 받을 수 있다’라고 알려졌다. 그러자 외국 선수들이 뭔가 필요하면 이보영에게 다가왔다. 나중에는 한 영국 대표가 와서는, “네가 졸업하고 뭘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시스턴트 역할을 잘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마치 영어를 공부하려는 사람을 돕는 현재의 일을 예언이나 한 듯한 말이었다.
“산에 올라가서 밑을 향해 올라오라고 하는 게 아니라, 셰르파처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했습니다. ‘왜 못하냐’라고 말하지 않고, ‘왜 못하는가’를 알려 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영어 공부의 어떤 부분에서 어려워하는지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도 그런 상황을 겪어 왔기 때문입니다.”
선생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배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 이보영의 생각이다. 그녀는 아직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부러워하며 끊임없이 배운다. 배우는 것은 영어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배우는 사람에 대해서도 연구한다. 그래야 더 잘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말을 배우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사실 방송을 시작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이, 자신이 우리말에 대해 정말 잘 모른다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그건 영어를 잘 못한다는 것보다 더 속상한 일이었고, 스스로 용서가 안 되는 일이었다. 그래서 신문 사설을 매일 읽으면서 어휘를 늘리는 일을 지금도 계속 하고 있다고 한다.
“한 가지 일에 얼마나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프로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자기 딴에는 열심히 한다고 하지만 어딘가 부족합니다. 뭔가를 자기 것으로 소화하기 위해서는 감각도 필요하고 다양한 경험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얼마나 엄격한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교훈이 담긴 영어 숙어 하나만 알려 달라고 했더니, 잠깐 생각하다가 하나를 골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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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영은 유학을 갔다 오지 않고 영어를 잘하는 토종 영어 강사로 유명하다. 유학을 갈 여력이 없는 학생들에게 좋은 본보기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단순히 영어를 잘했기 때문에, 혹은 외국을 갔다 오지 않고도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오늘날 이렇게 유명한 것은 아니다.
어디 나다니지도 않아, 집과 학교를 연결하는 길을 혼자서는 벗어나 본 적이 없다. 서울 방배동에 계속 살았다는 이보영이 광화문 교보문고에 처음 가 본 것이 고등학교 3학년 때라고 할 정도다. 책이 엄청나게 들어 차 있는 광경을 본 감격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이보영은 그 때까지 너무 바보처럼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자신 속에 틀어박혀 사는 생활을 끝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먼저 친구에게 종로 약도를 그려 달라고 하고, 매일 새로운 곳을 한 군데씩 모험하듯 다녀왔다. 늘 살던 서울 시내를 탐험한다는 것은 누가 들으면 우스운 얘기다.
이보영의 남다른 행동을 본 행사 주최측은 다른 행사를 주관할 때 이보영에게 또 일을 맡겼다. 그런 식으로 이보영은 대학 4년 내내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이어갈 수 있었다. 이보영은 일을 하고 나면 감사 카드를 꼭 보냈다. ‘내가 많이 부족했는데 일을 주어서 감사하다’라는 내용의 카드였다. 다음에도 일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보내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숫기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것들이 그녀에게 자꾸 일을 주는 결과가 되었다.
이보영은 현재 EBS-FM에서 하는 8시 아침 방송을 8년째 진행하고 있고, 그녀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이보영의 필링 잉글리시’(www.eboyoung.com)의 회원은 무려 30만 명이 넘는다. 이 외에도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으며, 책도 수십 권이나 냈다. 현재 중국에 교재를 수출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두 회사의 2대 주주이며, 얼마 전에는 영어보습학원 전국 체인 사업을 개시해 활발하게 사업을 벌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