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가 ‘쇠락’이 아닌 ‘완성’이기 위해서는
- 따끈따끈 파리통신
- 2026년 6월 10일
“인류는 공간 속에서뿐만 아니라 시간 속에서도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전체이다”
▲알기 위한 학습(learning to know)
▲행동하기 위한 학습(learning to do)
▲함께 살기 위한 학습(learning to live together)
▲존재하기 위한 학습(learning to be)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라고 외치는 아이들은 많지만, “어서 노인이 되고 싶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노화를 피해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특별히 어려운 상황에서가 아니라 노화에 쓰는 사람을 찾기도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지식과 지혜를 모아 미래를 대비하는 데 정말 진심인 유네스코라면, 아마 늙어감을 고민하는 우리 모두에게 “피할 수 없으면 배워라”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이번에 파리 인류 박물관에서 노년 관련 특별전시를 관람하던 주재관의 머릿속에서도 혹시 그런 유네스코의 속삭임이 들린 것일까요? “현대 사회 속 노년에 대한 새로운 재현 방식을 질문”하는 전시에서 유네스코의 평생학습을 떠올렸다는 주재관의 이야기를 한번 같이 들어 보시죠.
프랑스 파리에는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이 있습니다. 그중 파리 16구에 위치한 인류 박물관(Musée de l’Homme)은 인간과 인간 사회의 진화 과정을 생물학적·사회문화적 시각에서 조명하는 흥미로운 박물관입니다. 설립자인 폴 리베(Paul Rivet)는 “인류는 공간 속에서뿐만 아니라 시간 속에서도 나눌 수 없는 하나의 전체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하는데요. 이 문장을 통해서 시공간을 아우르며 지속적으로 진화를 거듭해 온 인류를 하나의 거대한 주체로 인식하는 박물관의 시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저는 지난달 인류 박물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노년 특별전시회(Exposition Les Grands Âges)’에 가 보았습니다. 우리나라가 유독 저출산·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이번 특별전시에 개인적으로 더 관심이 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전시장에는 다양한 노인의 모습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었는데요. 사진을 통해 시간이나 노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 사회 속 노인의 위치, 그리고 세대 간 관계의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특별전의 기획 의도라고 안내되어 있었습니다.
전시회장 입구에는 이번 특별전시가 “초고령기의 복합적인 삶의 현실과 현대 사회 속 노년에 대한 새로운 재현 방식을 질문하기 위해 기획되었다”는 안내 문구가 있었는데요. “초고령기의 복합적인 삶”이란 과연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어떤 모습이면 좋을지 생각해 보던 중 유네스코의 ‘평생학습(lifelong learning)’ 개념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평생학습이란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평생토록 배울 필요가 있다’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네스코는 이러한 평생학습 개념을 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보고서들을 발간했습니다.
1970년에는 랑그랑(Lengrand) 보고서(An Introduction to Lifelong Education)를 통해 평생교육 개념을 제시하였고, 1972년에는 포르(Faure) 보고서(Learning to Be)를 통해 학습사회의 개념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 1996년에 이르러 이른바 들로르(Delors) 보고서(Learning: The Treasure Within)를 발간하며 교육의 네 가지 기둥(pillars)을 제시하였습니다. 이는 21세기를 맞이하기 위한 교육의 비전과 방향을 정리한 것으로
▲알기 위한 학습(learning to know)
▲행동하기 위한 학습(learning to do)
▲함께 살기 위한 학습(learning to live together)
▲존재하기 위한 학습(learning to be)
의 개념을 담고 있습니다.
들로르 보고서가 제시한 교육의 네 가지 기둥 각각은 모두 노년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노년층이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존엄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 더 나아가 보다 나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존재하기 위한 학습’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초고령화 사회에서 청년층과 노년층이 세대 간 갈등 없이 조화롭게 ‘함께 살기 위한 학습’도 중요합니다.
물론, 각자의 삶에서 평생학습을 실천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일 수 있습니다. 평생학습을 실천한다고 해서 모든 세대의 삶이 당장 극적으로 나아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노화를 피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노화가 불행한 일이 아니라 더 나은 삶의 한 과정이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평생 함께 노력하고 학습하는 일은 정말 중요합니다.
전시회장을 나오는 출구에는 주름살 가득한 노인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프랑스 작가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Marguerite Yourcenar)가 쓴 “시간, 그 위대한 조각가(Le temps, ce grand sculpteur)”라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노화가 단지 피부의 주름이 늘어가는 과정이 아니라 ‘조각이 완성되어 가는 과정’으로 인식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 각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자신의 삶 속에서 평생학습을 실천하는 게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백영연 주유네스코대한민국대표부 주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