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倒釜/남도부/
나무위키에서 발췌
https://namu.wiki/w/%EB%82%A8%EB%8F%84%EB%B6%80
| 본명 | 하준수(河準洙) |
| 출생 | 1921년 12월 14일 |
| 경상남도 함양군 병곡면 도천리[2] | |
| 사망 | 1955년 8월 1일 (향년 33세) |
| 본관 | 진주 하씨[3] |
| 학력 | 진주공립중학교[4] (3학년 / 제적) 순다이상업학교[5] (졸업) 니혼대학 전문부 (졸업) 주오대학 법문학부 (중퇴) |
| 직업 | 군인 |
| 소속 | 조선인민유격대 |
<북위38도선>이나 영화 포화속으로
노가원의 <남도부>
정원석의<북위38도선>
남도부 부대는 남도부 부대, 동해여단, 팔공산부대, 남한유격대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남한 유격대 총사령관'이라는 남도부의 책 제목이 탄생
국방 군사 연구소<한국전쟁(상)>
영화 포화속으로의 배경이 된 포항여중 전투
실록 <남도부>
육군 본부의 <남도부사건기록>
<신불산>
이태의 소설 <남부군>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국사교과서에서도 잘나오는 '부산 정치 파동'이다.
실제로는 특무부대장인 김창룡이 대구형무소 중형수, 무기수 7명을 ‘큰일을 치르고 나면 석방해 주겠다’고 빼내서
1952년 5월 24일 공비가 나타났다며 부산 금정산에서 사살한 후, 계엄령을 내린 것이다.
5월 26일 야당 국회의원들이 47명이 검문에 불응한다며 그들이 탄 버스를 통째로 납치한 ‘부산정치파동’을 일으켰다.
이를 토대로 이승만은 재집권에 성공한다.[34
민간의 피해가 커지자 군경은 1950년 12월부터 토벌을 시작하였다.
신불산 지역 무장 유격대에 대한 군경의 대규모 토벌이 시작된 것은 1951년 11월부터이다.
1951년 12월 21일 시작된 신불산공비토벌작전은 미국 공군의 지원을 받아 공중 폭격과 지상 화력 등을 동원하여
결국 남도부 부대의 거점 681고지를 빼앗고 89명을 사살하였다.
생존 유격대원들은 휴전 이후 하산하여 도시에 지하당 구축을 시도하다
남도부를 비롯한 대부분이 검거되어 사형을 당했다.
울산 지역 무장 유격대의 토벌이 완전히 끝난 것은 1954년이었다.
남도부와 차진철은 3개월 가량 함께 창녕군에서 숨어지내다가 남도부 먼저 경상북도 대구시로 떠나게 된다.
이때 자료가 갈리는데 먼저 1970년 초에 동양라디오(DBS)에서 방송된 <광복20년>중에
한달간 방송된 <남도부사건>에 이과정이 잘 나와 있다.
극작가인 김교식이 남도부를 체포한 수사담당자를 취재하여 그들의 공로 위주로 하여 훌륭한
'반공홍보프로'로 만들었다.
그러나 점점 포위망이 좁혀지자 남도부는 1954년 1월 21일 오후 6시 동인동의 성기수 집으로 이동하였다.
대구 팔달교검문소에서 검문을 받기는 했지만 '한맹은'이라는 가명의 도민증을 보여주면서 통과한다.
그리고 경찰의 미행을 따돌리며 성기수의 집으로 들어왔다.
성기수의 집 밖에는 이미 특무부대원들이 2중~3중으로 포위하고 있었고,
집안에는 무술 유단자인 심재홍 상사가 세들어 사는 사람으로 위장하여 살고 있었다.
결국 남도부는 별다른 저항없이 체포되었다...라고 나온다. 실록 <남도부>도 이에 따라 집필되어 있다.
재판과정에서 남도부는 자신을 포로로 대우해주고 북한으로 보내달라고 했지만 묵살당했다.
결국 남도부는 1954년 10월 14일 중앙고등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이때 같이 재판받은 유응재(부사령관, 본명 홍영식, 37세), 문일준(연락원, 본명 문덕준, 25세), 지춘란(간호장교, 24세)도
사형을 선고받았고 홍만식(본명 이원량, 23세)만 무기징역이었다.
육군참모총장 정일권 대장, 2군사령관 강문봉 중장, 서울지구병사구사령관 허태영 대령, 특무부대 특무처장 이진용 대령이
남도부 구명 운동을 벌였지만 모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41]
당시 남도부에 대한 판결 의견서에 따르면 "괴뢰 노동당 중앙당부 직속 대남 유격대 제3병단 김달삼 부대 부사령관,
대남유격대 총사령관, 대남 유격대 제3지대장 등을 역임한 강원도, 경상남북도 일대의 유격대 총책임자로서...
국군사살 80여명, 미군 사살 16명, 경찰관 사살 70여명, 생포 10여명..."이라고 그의 신분과 전과를 밝혀 놓았다.
1955년 8월 어느 날 남도부는 육군특무부대장 김창룡에 의해 서울 수색의 육군사형집행장에서 눈가리개 없이 총살당한다.
입회하였던 군인들이 유가족에게 전하는 바에 따르면 남도부는 "인민공화국만세!"를 외치며 죽었다고 하는데 동양방송에서는
"대한민국만세!"로 둔갑하여 방송되었다.
다만 함께 총살된 부책인 유응재는 형장에서 울부짖으며 목숨을 구걸하였다고 한다.
그외 빨치산 부하들은 감형을 거듭한 끝에 만기를 채우고 풀려났다.
지춘란 소위 역시 감형되어 20년만에 출소하였는데 서울의 병원에서 간호원으로 근무하면서
4지구당 사령부 출신들의 친목모임을 만들어 한달에 한번씩 만나곤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80년대 전반 한강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고 한다.[42]
그외 다른 부하들도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모두 감형되어 20여년을 살고 풀려났다.
차진철(성일기)은 1954년 단국대학교 문학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했다가
성균관대학교 문리과대학 사학과에 편입하여 1959년에 졸업하였다.
이후 월북한 그의 여동생 성혜림이 사실상 김정일의 두 번째 부인이 되는 바람에 한때 매스컴을 타기도 하였다.
2006년에 그의 일대기인 <북위38도선>이 출판되었다.
● 1950, 60년대 영화 <남도부의 최후>
● 1970년 초 동양라디오(DBS) <광복20년-남도부사건> 극작가 김교식
● 1985년 소설 <지리산> 이병주 지음
● 1993년 실록 <남도부> 노가원 지음[44]
● 2006년 장편소설 <북위38도선> 정원석 지음
● 2016년 안재성 지음 <신불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