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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1냥의 값어치는? 그리고 1000냥의 값어치는?

작성자행복한미소^^|작성시간08.02.06|조회수3,944 목록 댓글 0

제가 뒤져본결과

첫번째:옛날에 대장금의시대는 조선조중종때 엿꾸요.......1냥은 지금돈으로 40000원입

니다. 천냥은 지금돈으로 40000000(4천만원) ㅡ.ㅡ;;;

-- 4냥 = 천은 1냥
-- 쌀 1 석 = 5 냥
-- 콩 1석 = 2.5냥
-- 무명과 삼베 1필 = 각 2냥
-- 초가 7간 = 50냥
-- 초가 3간 = 15냥
-- 토담집 2간 = 2.5냥


2번째:닢,냥(조선시대)→원(한일합방이후)→환(1953년 2 '제2차 통화조치')→원(1962년 6월 10일에는 '제3차 통화조치')
★ 냥(兩)
①조선 시대, 보조적 화폐 단위의 하나. 전(錢)의 10배에 해당함.

★ 전(錢)
①조선 화폐단위의 하나. 냥의 10분의 1, 문(文)또는 푼(分)의 10배, 환의 100분의 1.
- 1678년(숙종 4) 상평통보(常平通寶)가 주조되어 화폐기능을 가지고 유통되었는데 이때 화폐단위의 기준은 양(兩)이었고, 전(錢)은 보조적인 화폐단위로 10푼(文)은 1전, 10전은 1냥, 10냥은 1관(貫)이라는 계산방식이 사용되었다.
- 상평통보는 고종때 근대화폐가 발행되기 전까지 200여 년간 전국적으로 널리 사용되었던 법화이다. 효종때 병자호란으로 중단되었던 동전의 주조사업은 영의정 허적의 제안으로 재개되었다. 상평통보라는 명칭이 붙게 된 것은 조선통보처럼 동전에 "常平通寶"로 새겨진 글자 때문이며, '常平'은 常時平準의 준말인데 유통가치에 항상 등가(等價)를 유지하려는 의도와 노력을 그대로 반영한 표시였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단순히 '銅錢'으로 기록되어 있고 민간에서는 엽전(葉錢)이라 불렸으며, 특히 그 중에서 오행의 글자가 있는 것은 복술(卜術)의 도구로도 널리 사용되었다

②1953년부터 62년까지의 우리 나라 화폐 단위의 하나. 환의 100분의 1임.
③1910년부터 53년까지의 화폐 단위의 하나. 원(圓)의 100분의 1임.
④우리 나라의 현 화폐 단위의 하나. 원의 100분의 1임. 실제로는 쓰이지 않고 계산상 이론적으로 존재함.

★ 푼(分)
①조선 말엽, 보조적 화폐 단위의 하나. 보통 1푼은 엽전 한 닢을 가리킴. 전(錢)의 10분의 1임.
- 1894년(고종 31) 신식화폐발행장정(新式貨幣發行章程)>의 발포로 은본위제도를 채택하면서 화폐산식(貨幣算式)을 1냥(兩)은 10전(錢), 1전은 10푼으로 정하였다.

☆ 원(元)
①조선 말기 화폐단위의 하나. 1894년(고종 31)부터 1905년까지 사용되었다.

☆ 환
① 한국에서 근대적 화폐조례가 제정, 실시된 것은 1894년(고종 31) 8월에 발표된 이다. 이때는 은본위제도였으나 1901년(광무 5) 2월에 다시 금본위로 바뀌었다. 이때 순금 750g(2푼)으로 가격단위를 정하고 이를 환이라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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