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과 그리스도인의 갑옷 - 영적 무장(武裝)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
서론 - 다윗의 물매와 작대기
“이스라엘 군대는 40일 동안 블레셋 거인의 거만한 도전 앞에 떨었다. 그들은 키가 여섯 규빗이나 되는 골리앗의 거대한 체구와 창을 볼 때에 저절로 낙담하게 되었다. 그는 머리에 놋투구를 썼고 중수가 5천 세겔 되는 어린갑(魚鱗甲)을 입고 있었으며 그 다리는 놋경갑을 쳤었다. 그 갑옷은 고기 비늘처럼 차례차례 깐 놋 조각으로 만들어졌고, 그것들은 매우 단단하게 포개졌기 때문에 창이나 화살이 갑옷을 뚫고 들어갈 수 없었다. 거인은 그의 등에 역시 놋으로 만든 창을 메고 있었다. “”(부조, 646) (삼상 17:4-7)
● 성경에 독특한 전투의 한 장면이 등장한다. 바로 다윗과 골리앗의 일대일 결투이다. 여기서거대한 장신이며 빈틈없고 완벽한 무장을 갖춘 골리앗과 물매와 작대기를 든 소년 다윗은 대조되었다. 그러나 예상외의 극적인 승부가 연출되었다. 다윗의 승리했다. 골리앗의 압도적인 기세와 무장을 이긴 비결은 다윗의 특별한 무장에 있었다. 다윗이 평소 익히고 다진 영적인 호연지기(浩然之氣)가 다이나믹한 무용이 되었고 놀라운 승리를 거두게 하였다. 사울의 놋투구와 갑옷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골리앗을 감당하기에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이 제공한 무장을 사양하고 “익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고 말했다. 그는 사울와의 갑옷을 벗고 그 대신 그의 손에 막대기와 목자의 주머니와 단순한 물매를 취했다. (삼상 17:38-40)
●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부조, 647)
신앙노정은 또 하나의 전쟁이다. 선악간의 대쟁투이다. 그리스도인의 생애가 사악한 영적 세력과의 싸움이 필연적이다. 그렇다면 무장을 갖추어야 한다. 승리하기 위한 필수적인 준비 -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하는 일이 필요하다.
1.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엡 6:14) - 성실과 정직으로 살라
“진리가 무엇이냐?”(요 18:38 요14;6)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은 이 질문은 아마도 인생의 가장 중대하고도 가장 빈번히 던져지는 질문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진리는 논증일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상대성으로, 어떤 이에는 규칙일 수도 있다. 그리고 어떤 이에는 종교가 자체가 진리일 것이다. 그러나 진리는 무엇(what)이 아닌 누구(who)냐는 질문으로 접근을 할 때 정확하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에게 진리는 단지 추상적 개념이나 철학적 입장,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진술도 아니다. 진리는 한 인격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그분이 진리이시다. 진리는 인격성을 가지고 구체적인 행위를 내포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구속(救贖)하는 진리 - 의로운 생애 - 도덕적인 성실성과 영적인 일관성 - 모든 관계에 있어 하나님의 기대에 부응하는 삶을 보여주셨다. 진리에는 우리가 믿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행하는 것까지도 포함된다. 진리는 삶에 비례하여 역사하고 작인 한다. (진리 - 현대영어 성실과 정직으로 번역)
● “다윗은 베들레헴 주위의 산에서 풀을 뜯는 양떼를 지키면서 그의 소년 시절을 보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택하시고, 양떼와 함께 지내는 고독한 생활 가운데서 당신께서 장래에 그에게 위임하시고자 계획하신 사업을 위하여 그를 준비시키시고 계셨다. ”(부조, 637)
● “다윗은 단순하고 겸손한 방법으로 대답하면서 그의 아버지의 양떼를 지키는 동안에 겪은 그의 경험을 말했다. 그리고 그는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라고 말하였다.”(부조,646)(삼상17;37)
그리스도께 대한 전적인 헌신만이 죄와 기만의 세상에서 우리를 진리로 무장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4)고 말한다.
2. 의의 흉배 (엡 6:14) - 구원하시는 은혜에 충실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 만일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와 간음죄를 저질렀다면 어덯게 되었을까?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케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시 119:9) 심장을 다치는 일은 치명상이다.
성도들의 의로운 삶은 사단의 공격에서 심장을 보호한다. 즉 우리가 그리스도의 의를 옷 입고, 하나님 앞에 서서 그분의 구원하시는 은혜에 충실할 때, 우리는 용기 있게 주장할 수 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롬 8:31-34).
의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의미하므로, 반드시 바른 삶이 뒤따라야 한다(롬 6:10-14). 의(義)는 제자의 삶으로 우리를 초청한다.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보다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우리를 더 잘 방어해 주는 것은 없다. 우리의 의(義)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흉배이시다.
● 다윗의 심장을 찌른 죄 - 밧세바와 간음죄와 우리야의 살인교사죄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섭리로써 다윗을 그의 원수들의 모든 음모에서 보호하시고 직접 사울을 제지하는 일을 행하셨다. 그러나 다윗의 범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변화시켰다. 여호와께서는 결단코 죄악을 시인하실 수 없으셨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사울의 적의에서 보호하셨지만 그가 지은 죄의 결과로부터 그를 보호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능력을 행사하실 수는 없으셨다. 다윗 자신에게도 큰 변화가 있었다. 그는 자기의 죄와 멀리까지 미칠 그 결과를 의식하고 상심하였다. 그는 자기의 신하들의 목전에서도 천하게 보인다는 것을 느꼈다. 이제까지 그가 번영한 것은 여호와의 계명을 양심적으로 순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의 죄를 알고 있는 그의 신하들은 더욱 거리낌없이 범죄하게 될 것이다. 자기 가족들에 대한 자신의 권위가 약해지고 아들들에게 존경과 순종을 요구할 권위도 약화되었다. 그가 마땅히 죄를 정죄해야 할 때에도 자신의 범죄를 의식하고 그는 침묵을 지켰다. 그로 인해 그의 집에서 공의를 집행해야 할 그의 팔을 약화시켰다. 그의 악한 모본의 감화가 그의 아들들에게 끼쳐졌고 하나님께서도 그 결과를 막으려 하지 아니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만사를 되어지는 대로 흘러가도록 버려 두셨으며 그리하여 다윗은 격렬한 징벌을 받았다. ”(부조, 723)
3.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엡 6:15, 사 52:7) - 복음의 기초에 굳게 서라
“나는 거의 실족할 뻔 하였고 내 걸음이 미끄러질 뻔 하였으니”(시73;2)여기서 말하는 신은 로마 군인이 신었던 부츠를 가리킬 것이다. 로마 군인들은 전쟁 시에 지면에 강하게 밀착되게 하는 신발을 신었다. 군인은 적과 접전을 벌일 때에 미끄러지거나 넘어져서는 안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복음의 진리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 새 영어 성경(New English Bible)은 에베소서 6:15을 핵심이 잘 드러나게 번역하였다. “평안의 복음을 신으로 삼아, 든든한 발판을 확보하라.” 만일 발이 몸의 기초라면, 발은 온 몸을 안정적으로 지탱시켜주는 견고한 발판이 되어야 한다. 평안의 복음이 신앙의 기초가 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우리가 받은 다른 진리들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것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복음의 기초 위에 세워질 필요가 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기초로 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것들은 곧 무너지고 말 것이다.
● 압살롬의 반역과 도피 ---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말했다. 양심은 다윗에게 쓰리고 굴욕적인 사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의 충실한 신하들은 돌연한 그의 불운을 보고 이상히 여겼지만 왕에게는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는 가끔 이와 같은 일에 대한 예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죄를 그처럼 오래 참으시고 마땅히 받아야 할 보응을 내리시지 않고 지체하시는데 대해 이상히 여겼었다. 그러나 이제 급하고도 슬픈 도망으로 그의 발은 맨발이었고, 그의 왕복은 베옷으로 바뀌어졌으며, 그의 추종자들의 애곡은 이산 저산에 메아리쳤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그는 그의 사랑하는 수도-그의 범죄 장면이 벌어졌던 곳-를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오래 참으심을 기억하였다. 그에게서 희망이 사라진 것은 결단코 아니었다. 그는 여호와께서 여전히 그를 은혜로 다루시리라는 것을 느꼈다. ”(부조, 737)
● 다윗의 최대의 굴욕의 시기에 보인 믿음 --- “다윗은 자신의 죄에서 그가 고통당하는 원인을 찾았다. 선지자 미가의 말은 다윗의 마음을 감명시킨 그 정신을 풍기고 있다. “어두운 데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니 주께서 나를 위하여 심판하사 신원하시기까지는 그의 노를 당할”(미 7:8, 9)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버리지 않으셨다. 가장 쓰라린 학대와 모독 중에서도 겸손과 무아의 정신과 관대함과 유순함을 나타낸 그의 이 같은 경험의 이야기는 그의 온 생애의 경험 중에 가장 고상한 사건 중에 하나이다. 이스라엘의 통치자 다윗이 가장 처절한 외적 굴욕을 당하던 이 시간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참으로 더 위대한 때는 결코 없었다. ”(부조, 738)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소이다 많은 사람이 있어 나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하나님께 도움을 얻지 못한다 하나이다... 내가 누워 자고 깨었으니 여호와께서 나를 붙드심이로다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하여도 나는 두려워 아니하리이다 …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시 3:1-8)
4. 믿음의 방패 (엡 6:16) - 계속적인 믿음, 지속적인 확신
로마 군인의 방패는 높이가 4피트(약 120cm), 넓이가 2피트(약 60cm)되는 튼튼한 나무로 만들어 가죽으로 입히고 쇠로 테두리를 두른 것이었다. 로마 군인은 한 손에 방패를, 다른 손에는 칼을 잡고 방어와 공격을 위해 무장하였다.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가 되신다(잠 30:5).
● “믿음이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제일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아신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 믿음을 가질 때, 우리는 자신의 길을 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길을 택하게 된다.”(교육, 253) 이러한 믿음은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도록(엡 6:16) 우리에게 힘을 부여해 준다. 원수의 불화살은 유혹, 의심, 욕심, 절망, 시련, 반역, 죄책감 등 여러 다른 형태로 날아온다.
“유혹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순결과 진리에로 지향하도록 영감을 주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인식하는 것보다 더 유력한 것은 없다..... 이 생각은 부패한 애굽에서 요셉의 방패가 되었다. 유혹의 속삭임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믿음을 마음 속에 품고 있는 모든 사람은 이처럼 보호되는 것이다.”(교육, 255)
● “다윗은 그의 양떼를 지켜 보호하면서 크신 목자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양들을 어떻게 돌보시는가를 배우고 있었다. ”(부조, 644) .........점진적인 믿음 - 초장 - 사망의 골짜기 - 영원 ---- 이 경험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꼴지웠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 계속적인 믿음의 성숙
5. 구원의 투구 (엡 6:17, 살전 5:8) -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에
사단은 우리의 생각을 좌절시키고자 한다. 의심과 절망의 비수를 꼿으려 한다. 우리의 생각을 장악하여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로부터 우리를 끊으려 한다.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소망”(살전 5:8)으로 살아야 한다.
감사하게도 구원의 소망은 예수님의 행위와 그분의 공로, 그리고 그분의 거룩하심에 의해 주어진다. 만일 소망이 다른 어떤 것에 기초한다면 그 소망은 조만간에 사라지고 말 것이다. 비록 사단이 종종 우리로 하여금 구원의 경험을 의심하게 하더라도 구원의 투구를 쓰고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는 한 우리는 두려할 필요가 없다(요 6:37-39, 롬 8:31-39, 벧전 1:3-10).
● 영국의 런던에 에드워드 모트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고아와 같이 의지할 곳이라고는 아무데도 없었기에 어린 나이에 가구 공장에 들어가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을 끝마치고 나서도 그를 따뜻하게 반겨 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런던 거리를 이리저리 쏘다니기가 일쑤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트는 한 교회에 무심코 들어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그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깊은 은혜를 받았다. 세상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줄 알았는데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심을 알게 된 것이었다.
그때부터 모트의 인생관이 달라졌다. 그는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가구 공장의 직공에서 사장까지 되었다.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사랑에 뜨거운 감격이 솟구쳤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연필을 들고 적어내려 갔다.
1. 이 몸의 소망 무엔가 내 주의 보혈뿐 일세 주 예수 이름 밖에는 맘 붙일 곳이 없도다
2. 비바람 불고 어둔 밤 큰 물결 높이 설렐 때 내 주의 크신 은혜에 내 배의 닻을 주리라
3. 뜬 구름 같은 세상에 내 온갖 소망 끊길 때 내 주의 언약 믿으면 내 소망 더욱 크리라
4. 주 예수 재림하실 때 이 몸을 거둬 주시리 내 주의 의를 힘입어 그 보좌 앞에 서리라
후렴. 주 예수 반석 되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찬미가, 505)
● 인구조사로 하나님 앞에 범죄한 다윗은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처분을 맡겼다.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나이다”(삼하 24:14) --- 하나님의 손은 은혜의 손이다. 회개한 다윗은 진노중에서도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을 확신하였기에 감히 하나님이 손에 자신을 내어 던졌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시 37:5)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 16:3)
●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애 3:22-23)
결론 - 익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인간적이거나 세상적인 무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신갑주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바로 설 것이고 승리를 거둘 것이다. 다윗은 숱한 전쟁과 싸움으로 일생을 보내었던 용사였으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했다.
다윗의 체험적인 신앙과 믿음의 연단은 악의 세력과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였다. 모세의 목자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로 사용된 것처럼, 다윗의 손에 익숙한 물매와 막대기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었다.
맞춤식 전신갑주를 입자
사울의 놋투구와 갑옷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골리앗을 감당하기에 어림도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이 제공한 무장을 사양하고 “익숙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고 말했다. 그는 사울와의 갑옷을 벗고 그 대신 그의 손에 막대기와 목자의 주머니와 단순한 물매를 취했다. (삼상 17:3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