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2026.06.07 / 로마서 8장 31∼35절, 37절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로마서 8장 31∼35절, 37절)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예기치 않은 큰 혼란과 어려움을 당합니다. 갑자기 사랑하는 가족이 먼저 세상을 떠난다든지, 잘 되던 사업이 하루아침에 무너져서 길거리에 맨몸으로 내동댕이쳐 지는 절망, 몸이 너무 안 좋아서 병원에 가니 “왜 이제 오셨습니까? 암이 온몸에 퍼져서 이제 더 이상 어떻게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어떤 일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절망 등을 만나면 누구나 마음이 무너지고 좌절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깊은 고난의 골짜기를 지나가면서 힘들어서 우울증에 빠지고, 급기야 자기 목숨을 포기하는 최악의 선택을 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절망의 상황은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우리 하나님을 믿는 사람도 예외는 아닙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잘하는 것 같은데 갑자기 문제가 생겨나고, 자녀가 나가서 사고를 치고, 사람들이 등을 돌리고, 그래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가? 안 계시는가?’하는 시험에 들고 시련의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와 같은 절망적인 상황이 다가온다고 할지라도 꼭 기억할 것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느냐?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이십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 35절에 담대히 선포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어떤 문제와 어려움에 있습니까? 약속의 말씀 붙잡고 믿음으로 전진해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우리가 절망에 처했을 때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1.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1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사랑의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우리 편이 되어주십니다. 우리를 위로하고 격려해 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신데 감히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온 세상 사람이 나에게 달려들어 공격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우리는 넉넉히 이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시편 121편 1~2절과 7~8절에 시편 기자는 이와 같이 고백합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에게서로다 야훼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야훼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우리가 예수 믿는 날부터 세상 끝날 때까지 우리 주님이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때때로 외롭고 슬프고 힘들고 어려운 시간 지날 때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라고 불렸던 다윗 왕의 일생을 돌아보면서 주님이 함께하심을 생각하고 너무 감사해서 고백한 시가 시편 23편인데, 그가 고난 겪었던 상황을 기억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시편 23편 4~6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야훼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사랑의 주님께서 일생 다 가도록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저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긴 말씀 가운데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입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주셔서 우리를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위대한 승리자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주님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주관하고 계시고 나의 삶을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그 순간, 옛사람의 모습, 죄와 허물로 얼룩진 모습은 십자가에 못 박아 다 사라져 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영생의 몸으로 부활한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운명이 바뀝니다. 절망의 운명에서 희망의 운명으로, 슬픔과 좌절에서 기쁨과 희망으로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슴 펴고 당당하게 외쳐야 합니다. 환난아! 물러가라. 염려야! 물러가라. 나는 주님 안에서 승리자이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하나님이 나아가서 우리를 굳건히 세워주십니다.
2. 우리를 세우시는 하나님
로마서 8장 34절입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습니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셔서 우리의 죄를 다 사하셨는데, 그런데 마귀는 와서 우리를 참소하고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마귀의 존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우리를 파멸시키는 것이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악의 세력들이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사회 기본 질서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사람과 사람 관계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가정을 무너뜨리려고 하고, 나라와 나라 사이의 전쟁을 일으켜서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다 악한 원수 마귀의 역사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과거를 지배합니다. 어두운 과거를 지배해서 끊임없이 어두운 과거를 기억나게 해서 우리를 절망에 빠지게 하고, 다시 내 마음속에 그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덮어서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그러한 문제 많은 인생으로 나를 전락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수 믿지 않은 사람들이 점치는 사람을 찾아갑니다. 이 나라의 무속인이 80만이라고 하는 보고는 그만큼 이 나라가 불안한 나라로 바뀌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이 다시 일어나서 그들을 바른길로 인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고 나서도 자꾸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가 나를 괴롭힙니다. 과거에 실패한 경험, 상처 입었던 경험, 과거에 여러 가지 아팠던 기억들이 나를 붙잡아서 무너뜨리는데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일어나야 합니다. 당당히 일어나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존재로 변화된 것입니다. 과거의 실패도, 과거의 상처도, 과거의 어두운 그림들도 이제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는 죄와 절망에서 놓여남을 받고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 12장 11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예수를 믿고 난 다음 예수의 보혈의 능력으로, 우리가 전하는 능력의 말씀으로 흑암의 권세와 싸워 이기는 주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보혈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종교 개혁 당시에 마르틴 루터가 과로로 몸이 아파 며칠간 누워 있던 적이 있습니다. 마르틴 루터가 누워 있는 침실로 마귀가 슬그머니 들어와서 큰 두루마리 책을 쫙 펼쳤는데, 이쪽부터 저기까지 빼곡하게 마르틴 루터가 어릴 때부터 지은 모든 죄를 낱낱이 다 기록해 놨습니다. 자라나면서 그가 성직자가 되고 난 후에 모든 죄를 다 기록해 놓았습니다.
너무나 몸도 마음도 지치고 무거워졌습니다. 그때 갑자기 주님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그래서 마르틴 루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습니다. “마귀야 너가 한 가지 잊은 것이 있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나의 이 모든 죄를 다 씻어 버렸다. 썩 물러가라.” 흑암의 권세가 물러간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을 때 과거는 이미 단절된 것입니다. 절망의 과거, 슬픔의 과거, 실패의 과거, 상처 입은 과거, 버림받았던 과거, 배신당한 과거는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운 변화된 하나님의 자녀로 우리가 우뚝 선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가 말했습니다. “성경을 짜보아라! 그러면 예수의 피가 나올 것이다.”
예수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고 우리를 쓰라린 상처 속에서 치료하고 일으켜 세워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쓰임 받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죄의식에서, 실패의 기억 속에서, 어두운 과거의 그림자에서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일어나시기를 바랍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뉴욕에 있는 큰 대형 병원에 정신과 의사와 면담할 때 그 정신과 의사가 이와 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만일 정신병 환자들이 자기의 과거에 쓰라린 상처를 잊기만 한다면, 미움의 대상을 용서만 한다면 지금 당장 3분의 2 이상은 완치되어 이 병원을 퇴원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환자가 과거의 악몽에 사로잡혀 밤낮으로 되뇌기 때문에 정신병에서 놓여남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얘기한 것입니다.
여러분, 과거에 붙들려 있으면 우리는 이와 같은 정신병의 문제에 갇힐 수 있습니다. 과거를 단절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자꾸 과거를 얘기하는 것은 그것은 바람직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놓여있는 것은 희망의 내일, 축복의 미래밖에 없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간 것입니다. 지나간 과거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전진해 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3. 사랑의 확신
여러분,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나는 새사람이 되었고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사랑의 확신 가운데 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5절은 말씀합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성경 말씀에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떤 것들이 어떤 문제라고 하지 않고 누가라고 한 것은 이 대부분의 우리에게 다가오는 환난이 사람을 통해 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을 통해서 환난이 다가오고, 그 환난으로 다가와서 내 마음에 곤고함이 다가오게 되고, 사람을 통해 박해를 당하게 되고 또 헐벗고 굶주리고 위험에 도사리게 되는 그런 일들이 사람을 통해서 다가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평생 주의 복음을 전하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은 동족인 유대인들이 쫓아와서 끝까지 그를 괴롭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죽이려고 하고 그를 감옥에 집어넣으려고 하고 그리고 그가 말씀을 전할 때 하루는 끌어내서 돌로 쳐서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어서 정신을 잃어버리니까 죽은 줄 알고 시체를 끌어다 내려다 버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가져다주는 어떤 문제와 어려움도, 사람들이 갖고 오는 어떠한 환난과 핍박과 고통의 그 문제도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 어떤 것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38절, 39절은 선언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온 세상 사람이 우리를 버리고 떠난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나와 함께 하십니다.
찬송가 88장 2절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 몸에 모든 염려, 이 세상 고락도 주님 항상 같이하여 주시고, 시험을 당할 때 악마의 계교를 즉시 물리치사 나를 지키네. 그다음 가사가 참 은혜롭습니다. 온 세상 날 버려도 주 예수 안 버려 끝까지 나를 돌아보시니 주는 저 산 밑에 백합, 빛나는 새벽 별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우리가 참 강한 것 같은데요, 사람이 얼마나 약한지 누구 말 한마디 듣고 상처받고 주저앉습니다. 누가 나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나에 대해서 비판하는 이야기를 하면, 그거 가지고 마음 앓이를 하고 밥맛도 없고 뭐 하기도 싫고,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앞서서 큰일들을 치르고 나서도 말 한마디로 무너지는 것이 우리 인간의 연약함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이 다가올 때 담대히 외쳐야 합니다.
로마서 8장 37절에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넉넉히 이기느니라.
여러분, 우리는 승리자입니다. 왜? 사랑의 주님이 함께 하고 계시기 때문에. 누가 뭐라 그래도 사람 이야기 듣지 말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를 향하신 주님의 그 은혜와 사랑을 잊지 말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전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메리 스티븐슨이라고 하는 분이 1936년에 지은 ‘모래 위에 발자국’이라고 하는 시는 굉장히 큰 감동을 주는 귀한 시입니다. 오늘 이 시를 읽으면서 오늘 말씀을 마무리합니다.
어느 날 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나는 주님과 함께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하늘 위로는 내 인생의 여러 순간들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나는 각 장면마다 두 사람의 발자국이 모래 위에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중 하나는 나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장면이 나의 주님에게서 사라지려는 순간, 나는 모래 위에 남겨진 발자국들을 뒤돌아보았습니다.
내 인생의 행로에서 여러 번 오직 한 사람의 발자국만 남겨져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일이 내가 매우 슬프고 괴로웠을 때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인하여 너무나 괴로웠던 나는 주님께 물어보았습니다.
“주님! 주님께서는 내가 너와 함께하리니 너는 항상 나를 따를지어다. 이렇게 말씀하셨잖아요. 그런데 내 인생의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돌이켜보니 오직 나의 발자국만 남겨져 있더군요. 어느 때보다도 주님이 필요했던 바로 그때 어찌하여 주님은 내 곁을 떠나셨는지 나는 정말로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대답하셨어요.“사랑하는 나의 아들아! 나는 너를 누구보다 사랑한단다. 네가 시련과 고통을 당하고 있었을 때 나는 한 번도 네 곁을 떠난 적이 없었느니라. 네가 한 사람의 발자국밖에 볼 수 없었던 바로 그때는 내가 너를 안고 가던 때였느니라.”
가장 힘들고 어려워서 발걸음도 떼지 못하는 그때에는 주님이 우리를 안고 가십니다.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성가 493장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후렴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 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택하여 주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구원해 주신 은혜를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인생의 고비고비 순간마다 우리를 안고 가셨던 주님, 주님만 바라봅니다. 주님만 의지합니다. 우리 일생 다 가도록 주님의 손 꼭 붙잡고 주님과 동행하며 믿음으로 전진해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