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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따르라 (4) 바위 틈새에서 바라본 영광 <출애굽기> 33:12~23 / 이재훈 위임목사

작성자Arum|작성시간26.06.18|조회수0 목록 댓글 0

나를 따르라 (4)
바위 틈새에서 바라본 영광

<출애굽기> 33:12~23
/ 이재훈 위임목사
 

기도는 영혼의 창문입니다. 기도하는 내용을 들어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가까운 지, 혹은 하나님과 얼마나 상관없이 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기도제목이 있습니다. 개인의 건강과 자녀, 사업과 관계의 문제 등 모든 기도제목이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여전히 남아 있는 기도제목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면 여러분은 어떤 기도제목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하는 갈망

 

모세가 있는 자리가 그랬습니다. 모세는 출애굽 기적의 통로로 쓰임 받았습니다. 구름 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함을 받았고, 하나님과 친구처럼 대화할 수 있는 특권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이만하면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모세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주의 영광을 내게 보여주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나를 따르라’를 주제로 제자 됨의 증거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 근거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믿음으로 연합되었다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열매를 맺듯이,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분에게 연결되어 있는 존재입니다. 사슴이 시냇물을 찾는 갈급함같이,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갈망과 그분의 임재를 갈급해하는 영혼입니다. 오늘은 거기서 더 나아가 그리스도 제자들의 마음속에 있어야 할 중요한 증거를 찾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열심,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하는 갈망입니다.
모세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게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바위 틈새에 두시고 그 손으로 덮어주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지나간 뒤 그 뒷모습을 보여주십니다. 바위 틈새에서 모세가 보았던 영광이 무엇인지, 그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의 마음속에 있어야 할 갈망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내가 주를 알게 하소서”

 

<출애굽기> 33장 12절에서 17절까지 하나님과 모세의 대화가 나옵니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하나님을 배신한 이후 이루어진 대화입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습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으로 가도록 허락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천사를 보내주시겠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은 함께 가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약속하신 선물은 주시지만, 하나님은 함께 하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그 땅으로 올라가거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들이니 여차 하면 내가 가는 도중에 너희를 멸망시킬지 모르니 말이다”(출 33:3).
여러분이 모세였다면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그래도 약속의 땅은 들어갈 수 있으니 된 것 아닌가?’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포기하지 않고 겸손하고 간절하게 중보기도합니다. 모세의 간구를 보면 그 갈망이 한 단계씩 깊어집니다. 그 간구에 응답하실 때마다 하나님과 모세의 관계도 한 단계씩 깊어집니다.
모세가 가장 먼저 구한 것은 무엇인가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었습니다. 13절을 보면 “주의 길을 내게 가르쳐 주셔서 내가 주를 알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무엇을 구하기 전에 모세는 하나님을 알고 싶었습니다. 이러한 갈망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14절을 보면 “내가 친히 너와 함께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친히’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파님(Panim), 얼굴입니다. 원문을 그대로 옮기면 “내 얼굴이 가리라”는 뜻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너와 함께’라는 표현은 해석을 돕기 위해 덧붙인 번역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모세를 향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모세를 부르셨기에 은총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명확하게 분석하면, 하나님이 모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거기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더 분명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여호와께 말했습니다. ‘주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려거든 아예 우리를 여기서 올려 보내지 마십시오. 주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시면 나와 주의 백성들이 주께 은총을 입었는지 누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나와 주의 백성들이 지면의 다른 모든 백성들과 어떻게 구별되겠습니까?’”(15~16절).
모세의 기도는 어떤 내용입니까? 약속의 땅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와 함께 하시겠다고 하는 것보다, 모든 백성과 함께 하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다 받아도 그것을 주시는 분이 함께 계시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선물보다 선물을 주신 분이 더 귀하다는 고백하는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진노를 만들어내고, 하나님을 배신하고 패역한 백성들이지만, “하나님이 이 백성들과 함께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의 영광을 보여주십시오”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네가 말한 그대로 내가 하겠다. 네가 내 은총을 입었고 내가 너를 이름으로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17절).
모세에게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이 모세가 기도한 대로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하고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 백성들과도 함께 하십니다. 약속의 땅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땅에 백성들과 함께 가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간구와 중보에 응답하심으로써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런데 모세는 또 거기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 기도제목이 바로 “주의 영광을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그러면 부탁입니다만, 내게 주의 영광을 보여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18절).
모세는 이미 임재의 약속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머무르지 않고 더 구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의 갈망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백성의 마음입니다. 한번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사람은 결코 거기서 멈추지 못합니다. 그분을 더 알기를 원하고, 그분을 더 보기를 원하고, 그 영광을 보기를 갈망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에게 있어야 갈망은 그분을 더 알기 원할 뿐만 아니라 영광을 보기를 원하는 갈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었다는 제자의 마음속에 있어야 하는 증거입니다.
제자도를 내가 무엇인가를 하는 행위로 먼저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내가 무엇인가를 행함으로 제자로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고, 연결되어 있는 존재,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하나님께 목말라 해야 합니다. 그분과의 교제를 깊이 추구하면서 응답을 받습니다. 모세는 응답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하나님을 더 깊이 갈망하며 궁극적으로 구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합니다.
‘영광’이라는 히브리어 단어가 ‘카보드(Kabod)’인데, ‘무게’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여러분, 무게감이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깃털처럼 가벼운 사람이 있고, 묵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무게입니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분을 통하여 모든 것이 통치되는 무게, 하나님 자체의 무게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달랐습니다. 흙장난에 머무르지 않고 바다 자체를 바라보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의 마음속에 그분의 영광에 대한 목마름, 그분의 영광을 보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삶의 선택 기준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가?’에 달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영광의 실체는 선함입니다”

 

모세의 간구에 하나님이 응답하시는데, 우리의 예상과 다릅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내 모든 선함을 네 앞에 지나가게 하겠고 내가 네 앞에 내 이름 여호와를 선포하겠다. 나는 내가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고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길 것이다’”(19절).
모세는 주의 영광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내 모든 선함을 내 앞으로 지나가게 하겠다”고 말씀합니다. 영광을 구했는데 선하심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놓쳐선 안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 영광의 실체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당시 이방 민족들은 자신들의 신을 무서운 빛으로 떠올렸다고 합니다. 쏟아지는 빛, 사람들을 무섭게 하는 빛, 사람들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빛입니다. 이방 신들의 임재는 그저 힘을 자랑하고, 사람들을 억압하고 짓누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그분의 선하심으로 나타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가장 영광은 무엇입니까? 선함이 발견될 때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같이 선함의 열매가 나타날 때 우리는 영광스러움을 봅니다. 하나님 영광의 실체는 선함입니다.
14절에서 모세에게 하나님이 “내 얼굴이 가리라, 내가 친히 너와 함께 하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20절에서는 정반대로 “네가 내 얼굴은 보지 못한다. 나를 보고 살 자가 없다”라고 하십니다. 똑같은 얼굴입니다.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그런데 14절에서는 “내 얼굴이 가리라”라고 하셨는데, 20절에서는 “그 얼굴은 볼 수 없다, 보게 되면 살 자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모순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모순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얼굴, 기꺼이 보여주시는 얼굴이 있고, 우리가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얼굴이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보고 싶어 하는 얼굴이 보게 되면 죽는 얼굴입니다.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얼굴을 가려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 있을 만큼만 보여주심으로 함께하시는 분입니다. 종교개혁자 칼뱅은 이것을 하나님의 낮추심, ‘어코모데이션’(Accommodation)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어른이 아기들과 대화할 때 눈높이에 맞춰서 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을 모세에게 그렇게 보여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의 갈망에 이렇게 응답하십니다.

 

하나님 영광을 안전하게 보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

 

“그러고 나서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자, 내 가까운 곳에 바위가 있으니 그 위에 서 있어라. 그러면 내 영광이 지나갈 때 내가 너를 바위 틈새에 두고 내가 다 지나갈 때까지 내 손으로 덮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내가 내 손을 뗄 것이니 너는 내 뒷모습만 보고 내 얼굴은 보지 못할 것이다’”(21~23절).
하나님의 영광을 모세에게 보여주시되, 그 영광을 보고 죽지 않도록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위 틈새에 모세를 두고 손으로 덮어주시고 그 영광이 지나간 후에 그 뒷모습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 장면에 복음이 나타납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분이 바위틈에 숨겨주셨고, 그 손으로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갈라진 바위틈은 우리가 그 안에 숨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안전하게 볼 수 있도록 해 주시는 존재, 곧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십니다.
오래된 찬송가 가운데 이런 가사들이 있습니다. ‘만세 반석 열리니 내가 들어갑니다.’ 반석은 바위를 뜻합니다. 바위가 열려 내가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찬송 가사 ‘만세 반석 열린 곳에 내가 편히 쉬리니 나의 반석 구주 예수 나를 숨겨 주소서’, ‘오 놀라운 구세주 예수 내 주 참 능력의 주시로다. 큰 바위 밑 안전한 그곳으로 내 영혼을 숨기시네. 메마른 땅을 종일 걸어가도 나 피곤치 아니하며 저 위험한 곳 내가 이를 때면 큰 바위에 숨기시고 주 손을 덮으시네’는 오늘 본문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우리를 위해 갈라지고 열린 반석 틈에 숨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안전하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렇게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장차 오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모세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뒷모습만 보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 시대가 열렸습니다. 
“‘어둠에서 빛이 비치라’고 명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비추셨기 때문입니다”(고후 4:6).
“그 말씀이 육신이 돼 우리 가운데 계셨기에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었습니다”(요 1:14).
모세가 보기를 갈망했지만, 뒷모습만 보았던 영광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모세에게는 닫혀 있던 그 얼굴이 그리스도 안에서 활짝 열리며 “와 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바위틈에 숨어서 손바닥에 가린 채 보았지만, 우리는 바위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다 벗은 얼굴로 주의 영광을 바라보는 가운데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 일은 주의 영으로 말미암습니다”(고후 3:18).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의 제자 내면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반석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며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는 갈망이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가 원했던 것뿐만 아니라 필요한 것도 주셨습니다. 그가 원한 것은 영광이었지만, 그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아는 지식이었습니다. 
모세는 바위 틈새에서 주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바위 틈새는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모세는 뒷모습만 보았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빛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를 갈망하고, 그분을 더 깊이 알아가고, 그분과 동행하는 삶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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