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無常)의 실천적 이해 <박경준 교수>
“현실 직시하고 집착버려야 창조적 삶 가능”
불교의 핵심 진리인 연기법은 인간과 우주의 어떤 궁극적 제1원인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직 모든 사물과 존재의 상호 작용 및 관계에 의한 생멸 변화만을 인정한다. 이러한 연기법에 입각하여 시간의 측면에서 제법의 특징을 규정한 것이 이른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일체의 유위법은 항상함이 없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무상을 흔히 일기(一期)무상과 찰나무상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일기무상이란, 사람이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어가고〔生老病死〕, 우주가 형성되어 머물다 파괴되어 없어지며〔成住壞空〕, 생각이 일어나 머물다 변하여 사라지는〔生住異滅〕 것처럼, 어떤 사물과 현상이 생성. 변화. 소멸하는 전 과정을 한 기간〔一期〕으로 해서 설명하는 무상의 개념이다.
찰나무상이란 어떤 사물과 현상이 일정한 기간을 단위로 하여 무상할 뿐만 아니라, 찰나를 단위로 해서도 무상하다는 개념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몇 년 만에 만났을 때 그 사람이 변한 것은 알아도, 매일 만나는 사람의 변화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실제로 하루하루 변해간다. 아니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고 찰나찰나 변해간다. 알고 보면 모든 것이 다 이렇게 찰나무상인 것이다.
부질없는 것들에 대한 욕망 접으면
그때부터 눈앞에 새로운 세계 열려
이처럼 우주와 인생, 정신과 물질을 포함한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항상함이 없고, 끝없이 생멸 변화해 갈 뿐이다. 만물이 유전한다는 것, 바로 이것이 무상(anicca)의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사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이 ‘무상’이라는 말이 애상(哀傷)과 비감(悲感), 더 나아가서는 절망감을 의미하는 감성적 개념으로 쓰여왔다. 단적인 예로, 가을 날 떨어지는 낙엽이나 어떤 사람의 우연한 죽음을 보고 우리는 ‘인생무상’을 말하기 일쑤다. 이러한 무상의 개념은 비관적 인생관을 낳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봄. 여름이 지나면 가을이 오는 것만이 무상이 아니고, 가을.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오는 것도 무상이다. ‘모든 사물과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참모습’에 대한 불타의 냉철한 이지적 통찰의 결과, 무상의 가르침이 설해졌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불타의 모든 가르침이 단순한 지식이나 관념적인 이론체계에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실천과 수행을 지향하고 있듯이 무상의 가르침 속에도 실천적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무상의 실천적 의미는 무엇일까?
색수상행식의 오온(五蘊)이 무상함을 설하는 한 원시경전의 내용을 살펴보면, 무상의 인식이 슬픔이라든가 절망으로 연결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더 적극적인 삶을 촉발시키고 있다. 물론 세속적인 입장에서는 본능적이고 이기적인 욕망을 마음껏 추구하는 것이 적극적인 삶인 양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적극적’이라는 의미는 그와는 질적으로 다른 개념이다. 전자의 적극적인 삶을 요란하게 흐르는 개울물에 비유한다면, 후자의 적극적인 삶은 소리 없이 유유히 흐르는 장강(長江)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온의 무상함에 대한 통찰은 마침내 열반의 삶을 성취케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무상의 자각은 본능적. 맹목적. 세속적인 탐욕의 삶에 빠져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반성적. 창조적. 종교적인 삶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가게 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존은 최후의 설법에서 제자들에게 “제행이 무상하므로 그대들은 마땅히 근행정진(勤行精進)하라”고 유계하고 있는 것이다.
세존의 이러한 입장은 잡아함 〈명명경(明冥經)〉에도 잘 나타나고 있다.
“대왕이여, 알으시오. 네 부류의 사람이 있소. 어떤 것이 넷인가. 어떤 사람은 어둠에서 어둠으로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어둠에서 밝음으로 들어가며, 어떤 사람은 밝음에서 어둠으로 들어가고, 어떤 사람은 밝음에서 밝음으로 들어가오.”
이 경의 내용을 잘 음미해 보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교훈을 얻어 낼 수가 있다. 첫째, 현재 아무리 좋은 환경 속에서 잘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상의 이법을 깨닫지 못하고 지금의 상황이 영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열심히 노력하지 않고 악행을 일삼으면 반드시 어두운 운명에 떨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지금의 좋은 여건이 영원할 것이라는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둘째, 현재 아무리 나쁜 환경 속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무상의 이법을 깨달아 지금의 상황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여, 열심히 노력하고 선행을 쌓아 가면 반드시 밝은 운명으로 바뀐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것은 우리들의 창조적 의지와 노력을 강조하고 있다 할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에 근거하여 미즈노 고겐(水野弘元) 선생은 제행무상의 의의를,
① 무상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괴로움에 의해서 자신과 세간의 결함을 알게 되어 종교심이 싹트게 된다는 점,
② 자신과 주위 사람, 재산과 지위와 명예에 집착하는 아집의 마음을 버리게 된다는 점,
③ 무상을 봄으로써 사회 인생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그로 인한 정진 노력의 결의를 얻을 수 있다는 점
등으로 정리하였을 것이다.
요컨대 무상의 가르침은 비관적 인생관과는 거리가 멀다.
그것은 부질없는 것에 대한 탐닉과 집착을 경계하면서, 동시에 무상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부지런하고 창조적으로 살아갈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