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과 사는 하나이지 둘이 아닙니다
늙음과 죽음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니며, 자기와 남이 만든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원인 없이 만들어진 것도 아니다. 다만 태어남이 있기 때문에 늙음과 죽음이 있을 뿐이다. <잡아함경>
부처님께서 도를 깨치시고 처음으로 ‘상주불멸’을 말했습니다.
“기이하고 기이하다. 모든 중생이 다 항상 있어 없어지지 않는 불성을 가지고 있구나! 그것을 모르고 헛되이 헤매며 한없이 고생만 하니. 참으로 안타깝고 안타깝다.”
상주불멸과 함께 중요한 말인 ‘불생불멸’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말인데, 그 뜻은 ‘생겨나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물질, 느낌, 생각. 의지, 판단 이 다섯 가지의 인연으로 이루어진 모든 사물은 생기지도,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여기 얼음이 한 덩어리 있다고 합시다. 얼음을 가만히 두었더니 점점 녹아 물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얼음은 없어지고 물은 생겨났다’라고 할 수 있을까요? 또 그 물을 팔팔 끓였더니 김(수증기)이 나면서 물이 졸아들었습니다. 이것을 ‘물이 없어지고, 김이 생겨났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 <얼음->물->수증기)의 변화과정에서는 새로 생겨난 것도, 그리고 이미 있던 것이 없어진 것도 없습니다.
다만 얼음이란 물질이 인연이 모이고 흩어짐에 따라 물로 변화했다가 수증기로 변했을 뿐입니다. 처음엔 고체였던 것이 액체로 변하고 나중엔 기체로 변화했습니다. 만약 얼음이 ’얼음‘다운 실체가 고정되어 있다면 얼음은 물이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액체인 물도 ’물‘의 성질이 고정되어서 영원하다면 물이 기체인 수증기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모양이 변할 수 있는 것은 그 본질과 실체가 텅 비어 일정한 모양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 예를 들면, 양초에 불을 붙여 놓으면 점점 양초가 타 들어가서 나중에는 양초는 사라집니다. 그렇다고 양초가 없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양초는 비록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공기 중에 빛과 연기로 모양을 바꾸어 그대로 있습니다. 이것을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라 합니다. 양초라는 물질에 불을 붙이면 양초는 빛과 열을 내면서 사라지지만 원래 양초가 가진 에너지는 그대로 어딘가에 보존되는 것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윤회’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태어나고 죽는 것이 아니라, 이 육신에서 저 육신에서 옷 바꿔 입듯 변화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만물 그 어느 것도 새로 생겨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습니다. 다만 모양의 변화만 있을 뿐입니다.
『돈오입도요문론』은 ‘불생불멸’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경에 이르기를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고 하니 어떤 법이 나지 아니하며 어떤 법이 없어지지 아니하는 것입니까?”
“착하지 않음이 나지 않음이요, 착한 법은 없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어떤 것이 착함이며, 어떤 것이 착하지 않음입니까?“
“착하지 않음이란 염루심(불별심)이요, 착한 법이란 염루심이 없음이니 다만 염루가 없으면 곧 착하지 않음이 나지 않음이며, 루가 없음을 얻었을 때에 곧 청정하고 둥글고 밝아 담연히 항상 고요해서 마침내 움직이지 아니하므로 착한 법이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곧 나지도 아니하고 없어지지도 아니한 것이니라.”
출처 ; 무소유 / 김세중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