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중기 학자 이문건이 쓴 아이를 기르는 기록인 『양아록(養兒錄)』의 일부입니다.
이 문서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손자의 탄생을 기뻐하는 시와 글,
두 번째는 손자가 자라면서 겪는 훈육의 고충을 담은 시,
마지막은 중국 시인 도연명의 시를 인용하여 자식 농사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내용입니다.
각 문장에 대한 해석과 저자 소개를 해 드리겠습니다.
[문장 해석]
1. 제목 및 서문
143. 養兒錄 (양아록): 아이를 기르는 기록.
默齋 李文健(1494-1567) (묵재 이문건): 저자와 그의 생몰년. 묵재는 그의 호입니다.
2. 손자 탄생을 기뻐하는 시
이 시는 유배 생활의 외로움 속에 얻은 손자를 보며 느끼는 기쁨과 앞날에 대한 기대를 담고 있습니다.
천리(天理, 만물의 이치)로 생명을 낳고 낳음은 과연 끝이 없어,
어리석은 내 아이(아들)가 윤(尹)을 얻어 가풍을 잇게 되었구나. (윤은 손자 이름)
조상님의 영혼이 저세상에서 마땅히 많이 도와주셨으리니,
뒷날 인간 세상의 일이 조금이나마 풍족하기를 바라노라.
오늘 기쁘게 저 갓난아이를 보며,
늙어가는 내년에 네가 성동(成童, 자라난 아이)이 된 것을 보고 싶구나.
귀양살이는 쓸쓸했으나 도리어 편안해지니,
홀로 봄술을 따르며 늙은 옴(내 자신)을 축하하노라.
<초팔일 작(初八日作)> - (손자가 태어난 지) 8일째에 짓다.
3. 『양아록』을 쓰게 된 동기 (산문)
그가 왜 이 기록을 남기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 설명입니다.
아이를 기르는 것에 반드시 기록이 있을 필요는 없으나, 기록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늙어서 귀양 살고 있어 벗들이 이미 적고, 생계를 꾀하는 지혜는 둔하여 산업(재산)을 경영하지 못하였다. 아내마저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홀로 외롭게 지내는데, 오직 손자가 노는 것만을 보며 하루를 보낸다.......
앉는 것을 익히고, 이가 나고, 기어 다니는 등의 일을 겸하여 기록하고, 짧은 문구를 뒤에 붙여 마음속의 그리운 뜻을 기탁하노라. 아이가 만약 자라나서 이것을 보게 된다면, 조상(나)의 마음을 문자 위에서 조금이나마 얻을 수 있으리라.
嘉靖三十年辛亥歲(1551)中秋下弦 默齋 星山李文健(子發) 寓謫舍書 (가정 30년 신해년(1551) 추석 지난 하현, 성산 이문건 자발이 유배지 집에서 머물며 쓰다)
4. 손자 훈육의 고충을 담은 시
손자가 조금 자라나 말을 듣지 않고 공부를 게을리하자, 이를 훈계하며 매를 들고 느끼는 할아버지의 마음을 그렸습니다.
아이는 누가 매일 글을 읽으라 권하는가, 노인(나)만이 헛되이 네가 세월 아끼기를 바라노라.
마음대로 꾸짖어도 깨달을 길이 없고, 틈을 타서 무리를 따라 북쪽과 서쪽으로 달리네.
사람을 시켜 불러들이면 꾸짖음을 당할까 의심하여, 부르짖고 (발을) 끌며 문 앞에 와서 들어오지 않네.
내가 직접 일어나 몰아와서 정수리와 볼기를 때리니, 머리를 숙이고 엎드려 우니 내 마음이 슬프구나.
매를 맞은 후 세 날 아침(사흘 동안)은 얼굴과 눈이 부었는데, 혹 거스르는 기운(반항심) 때문인가 그 근본 원인을 모르겠구나.
비록 끝내 게으르고 거만하여 어리석은 바보로 돌아갈지라도, 하늘의 명(천명)이 이와 같으니 누구를 원망하거나 허물하기 어려우리라.
『養兒錄』 (양아록)
5. 도연명의 시 인용
자식들이 공부를 싫어하는 것에 탄식하는 중국의 시 성인 도연명의 시를 인용하여, 자신의 처지와 같은 심정임을 보여줍니다.
○ 責子 (책자) - 자식을 꾸짖다
陶淵明(365-427) (도연명)
백발은 양쪽 관자놀이를 덮고, 피부는 다시는 단단하지 않구나.
비록 다섯 아들이 있으나, 모두 종이와 붓(공부)을 좋아하지 않네.
아서(阿舒, 첫째)는 이미 열여섯인데, 게으르기가 짝이 없구나.
아선(阿宣, 둘째)은 지학(志學, 열다섯)의 나이에 다가서는데, 문술(학문)을 사랑하지 않네.
옹단(雍端, 쌍둥이인 셋째와 넷째)은 나이가 열셋인데, 육(6)과 칠(7)도 알지 못하네.
통자(通子, 다섯째)는 아홉 살에 가까워지는데, 다만 배와 밤만을 찾누나.
하늘의 운수가 진실로 이와 같을진대, 또 잔 속의 물건(술)이나 나아가려네.
『古文眞寶』 上 (고문진보 상) - 유명한 고문을 모아놓은 책 『고문진보』 전집에 실려 있다는 뜻입니다.
[저자 및 작품 소개]
1. 이문건 (李文健, 1494-1567)
호: 묵재(默齋)
관관: 성산(星山)
소개: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관료입니다. 어린 시절 형제들을 모두 잃는 등 가문의 불행을 겪었으나, 학문에 힘써 관직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중종 말년과 명종 초에 일어난 당쟁에 휘말려 기묘사화(己卯士禍) 등으로 두 형을 잃고, 자신도 유배 생활을 하게 됩니다.
유배 생활: 그는 경상도 금산(지금의 김천시)에서 약 23년 동안 유배 생활을 했습니다. 이 기간에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아내마저 세상을 떠나는 등 고독하고 고단한 삶을 살았습니다.
2. 『양아록(養兒錄)』
내용: 이문건이 유배지에서 얻은 손자 이윤남(李允男)을 태어난 순간부터 16세까지 키우는 과정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글입니다.
가치: 조선 시대 남자가, 그것도 고위 관료 출신의 양반 학자가 아이를 기르는 상세한 과정을 직접 기록했다는 점에서 매우 희귀하고 중요한 사료입니다.
당시의 육아 풍습과 가정생활을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아이의 질병과 이를 치료하는 한방 요법에 대한 기록은 의학사적으로도 가치가 큽니다.
할아버지로서 손자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엄격하게 훈육하고자 했던 고민, 공부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때의 탄식 등 인간적인 면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이 사진 속 문장들은 인생의 온갖 시련을 겪고 귀양살이를 하던 노학자가 유일한 희망인 손자를 얻은 기쁨, 그 손자를 잘 키워 가문을 잇게 하려는 간절한 염원, 그리고 훈육 과정에서 겪는 좌절과 체념의 인간적인 고충을 시와 글로 생생하게 담아낸 『양아록』의 핵심적인 부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