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땅
남정바리며 복쟁이 잡아 입에 입 대고, 헛바람 불며 놀았습니다. 뽈록하게 튀어나온 치어들의 부레가 허기인 줄도 모르고요. 겁 없이 뜨는 몸 깔깔거리며 바다에 띄우다, 하얗게 바다가 지워질 때 돌아가면 자주 누군가 죽어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마당 한구석에서 주검 껍질처럼 벗겨진 머구리 잠수복에 나무 신발에, 납덩어리를 매달고 있었습니다. 우주복 같이 생긴 잠수복 입어 보려다,
아버지 무거워요, 바다에 빠져 죽겠어요
아니야, 그건 네가 부력이 없는 세상에 살아서 그래
아버지, 부력이 뭐예요?
땅에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힘이지, 내가
너의 땅이 되어주지 못 할 때가 되면
너도 알게 될 거야, 아버지 그럼
내 신발에도 납을 달아 주세요
그러지 않아도 돼, 내가 너의 납덩어린 걸
아버지, 너무 깊게 묻혀
발이 닿지 않는 땅
• 책 소개[시집-고래발자국]
그의 바다는 자연의 일부가 아닌 삶의 터전이었다.
199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성일 시인의 고향은 주문진이다. 그의 아버지는 주문진 앞 바다로 머구리배를 타고 나가 해산물을 채취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그의 시는 아버지의 바다로부터 시작된다. 그간 우리나라 시인들에게 바다는 낭만적인 자연의 일부였지만 그에게 이르러 바다는 자연의 일부가 아닌 삶의 터전이 되었다. 이제 한국시단은 마침내 진정한 바다의 시인을 갖게 된 것이다.
그의 유년 시절부터 바다는 죽음의 강박감을 그에게 안겨주었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방법으로 ‘부력’이나 ‘부표’를 의식해야 했다. 바다가 안겨주는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게 해주는 존재는 아버지였으나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한 현실의 무게는 그에게 벗어나기 어려운 질곡으로 여겨져 왔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바다를 ‘땅’과 연계시키면서 바다 속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삶의 가능성을 찾아내고 있다.
• 저자 소개
이성일은 1967년 봄에 강원도 주문진에서 태어나 199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안개바다」로 등단하여 시작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