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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작성자靑山 노승렬|작성시간20.04.01|조회수83 목록 댓글 0

명대사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Or to take arms against a sea of troubles

And by opposing end them. To die, to sleep,

No more; and by a sleep to say we end

The heart-ache and the thousand natural shocks

That flesh is heir to: 'tis a consummation

Devoutly to be wish'd. To die, to sleep;

To sleep, perchance to dream

ay, there's the rub.

For in that sleep of death what dreams may come,

When we have shuffled off this mortal coil,

Must give us pause—there's the respect

That makes calamity of so long life.

For who would bear the whips and scorns of time,

Th'oppressor's wrong, the proud man's contumely,

The pangs of dispriz'd love, the law's delay,

The insolence of office, and the spurns

That patient merit of th'unworthy takes,

When he himself might his quietus make

With a bare bodkin? Who would fardels bear,

To grunt and sweat under a weary life,

But that the dread of something after death,

The undiscovere'd country, from whose bourn

No traveller returns, puzzles the will,

And makes us rather bear those ills we have

Than fly to others that we know not of?

Thus conscience does make cowards of us all,

And thus the native hue of resolution

Is sicklied o'er with the pale cast of thought,

And enterprises of great pitch and moment

With this regard their currents turn awry

And lose the name of action.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운명의 가혹한 화살과 물맷돌을

마음 속으로 견뎌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아니면 무기를 들고 곤경의 바다에 맞서,

끝을 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죽는 것은, 잠드는 것,

그것 뿐. 잠으로 심장의 고통과 육신으로부터 지음 받은

천가지 천부적인 충동을 끝낼 수 있다면

것이 독실히도 바라던 것 아닌가.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잠이 들면 꿈을 꾼다.

그것이 곤란하구나!

죽음의 잠에서, 어떤 꿈이 올지 모르기에.

그것이 우리를 주저 하도록 하고, 그것 때문에

이 재앙의 긴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 누가 이 세 사나운 채찍을 견디며,

권력자의 잘못과 세도가의 멸시,

경멸적인 사랑의 고통스러움과 끝없는 소송, 관리들의 오만

그리고 인내의 가치가 하찮은 자들에게 받는 멸시를,

이 모든 것은 어떻게 참고 지내겠는가?

빼어 든 단검 한 자루면 스스로 삶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데

그 누가 무거운 짐을 진채 지친 삶 속에서 땀을 흘릴 것인가?

죽음 뒤에 올 두려운 무언가,

경계에서 돌아온 여행자가 없는 발견되지 않는 나라가

의지를 교란시켜,

알 수도 없는 고난으로 가느니

차라리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을 견디게 한다면?

그렇게 깨달음이 우리 모두를 겁쟁이로 만들고

그리하여 결단의 생기 찬 빛깔은

사념의 창백한 기색으로 드리워지고

위대한 정점의 진취와 움직임도

이런 이유로 물길이 틀어져

행동이란 이름마저 잃는다


위 대사는 클로디어스와 폴로니어스가 숨어서

 햄릿을 지켜보고

햄릿과 오필리어가 만나는 장면에서

햄릿이 자신의 고뇌를 토로하는 내용이다.

이 전설적인 문단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문장은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일 것이다.

흔히 원문을 'dead or live'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게 아니라 'to be or not to be'다.

'to be'가 '사느냐', 'not to be'가 '죽느냐'이며,

 어순이 바뀐 것이다.

 이 해석이 정착되기 전에는

 이 말이 이 곳에 있을 것인지 떠날 것인지 등으로

 번역되기도 했고,

요즘도 '있음이냐 없음이냐'로 번역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대사에서

계속 죽음에 대해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죽느냐 사느냐의 의미로 본다.

서양에서도 두가지 해석이 모두 존재한다.

to be를 '계속 존재할 것인가'로 해석하거나

 'to be' 다음 dead man이 생략되어 있다고 본다.

이 대사 이후 햄릿의 독백에서

죽음 이후의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고

죽음에서 살아 돌아온 자가 없으니

그것이 두려워 죽은 자가 되느냐 마느냐,

혹은 계속 여기에 존재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고민으로 본다.

일본에서는 보편적으로

'살아야 하느냐, 죽어야 하느냐

(生きるべきか死ぬべきか)'로

 번역된 문장이 널리 쓰이고 있다.

사실 '죽느냐 사느냐'로 옮기는 것은

 '해석역(譯)'이라 할 수 있다.

to be or not to be 자체가 '죽느냐 사느냐'처럼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문학적 수사다.

be 자체가 영어 문장의

아주 기본적인 단어이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일반적이고 기본적이어서

역설적으로 심오한 느낌을 풍기는 문장이다.

우리말로 치면 거의 '있을까 말까' 수준이다.

문학적인 표현은 문학적인 표현으로 옮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봤을 때,

죽느냐 사느냐는 사실 그렇게 만족스러운 번역은 아닌

 차선책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있을까 말까'라고 옮기기도 곤란하다.

여러모로 번역하기 난감한 문장이 아닐 수 없다.


이 대사의 의미는

다른 측면에서 문제가 되는데,

그것은 이 대사는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독백으로 간주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햄릿이 이 대사를 할 때

오필리어가 무대 위에 있으며

 햄릿도 명백히 오필리어의 존재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대 상에서의 위치로 봐도

햄릿이 오필리어를 눈치채지 못할 구도가 아니며,

이어지는 대사 마지막에는

오필리어를 직접 부른다.


참고로, 이런 아나그램도 존재한다.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

Whether 'tis nobler in the mind to suffer

The slings and arrows of outrageous fortune.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물맷돌과 화살을

마음 속으로 견뎌내는 것이 더 고귀한가.)

→In one of the Bard's best-thought-of tragedies,

our insistent hero, Hamlet, queries

on two fronts about how life turns rotten

(셰익스피어가 최고로 여기는 비극으로

 우리의 고집 센 주인공 햄릿은

삶이 어떻게 부패하는지를 두개의 관점에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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