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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임기 중 구속된 아들
대통령의 가족들은
많은 비리에 연루된다.
보통 자녀들의 경우
아버지의 권력을 바탕으로
'왕자, 공주' 대접을 받으며
떵떵거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김영삼의 아들인 김현철은 이를 넘어
본인이 '소통령'으로 지냈던 인물이다.
비교적 조용하게 지내고 있다가
미국 유학 후, 1984년부터
쌍용투자증권에 재직하고 있었다.
1987년 아버지의 대선출마에
퇴사를 하고 여론조사팀을 꾸려
김영삼의 선거전략을 짰다.
여론조사의 퀄리티가 좋아
김영삼도 매우 신뢰했다고 한다.
1992년 김영삼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는
본인의 여론조사팀을
싱크탱크로 활용하면서
정부의 비선실세로 군림하였다.
사실상 대통령 허가권이 닿는
대부분의 업무에 개입하기 시작하였고,
인사권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고 알려져 있다.
국가 주요 인사를 대부분 먼저 보고 받고
아버지에게 결정하도록
올리는 역할을 하였고,
이를 우려한 주변의 비판자들까지
모두 밀려닸다고 전해진다.
실력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이를 넘어서는 권한까지
휘두르기 시작했던 셈이다.
이후 IMF의 도화선으로 꼽히는
한보철강 사태에서 허가를 해준
'몸통'으로 지목받고,
각종 비리 혐의로 구속되었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로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로 인하여 김영삼의 정권 말기는
어수선하게 흘러가기 시작하였고,
그의 치적들은 김현철에게
많이 묻혀버렸다.
그는 1999년 특별사면으로 석방되었고,
아버지와 같은 정치인으로
활동하려고 하지만 삐그덕 거리고 있다.
여의도연구소의 부소장을 맡기도 했지만,
보수 진영에서도
특별히 챙겨줄 만한 이유가 없어서
국회의원 공천을 받지는 못했다.
그로 인해 18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고,
19대 대선에서도 문재인 후보를 지지하였다.
그 후 민주당에 입당하여 활동하다
2019년 탈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