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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泳三, 金寧 金氏

작성자청산(靑山) 노승렬|작성시간23.07.28|조회수41 목록 댓글 0

金泳三, 金寧 金氏,

신라의 적통을 잇는 자부심
김대중 대통령의 가락 김씨가

거족임에도 불구하고

망국의 한을 삭여온

‘정치적 변방’의 후예라면,

김영삼 전 대통령은

통일신라의 ‘적통’을 잇는

신라계 김씨의 후손이다.

본관이 금녕(金寧) 김씨(金氏)다.

신라 경순왕의 8세손인

김시흥(金時興)을 시조로 모신다.

따라서 김시흥은

신라 김씨의 원조

김알지(金閼智)의 35세손이 된다.

김시흥은 의성(義城)에서 출생해

고려 인종때 묘청의 난을 평정해

금녕군(金寧君)에 봉해졌으며,

명종 때는 조위총(趙位寵)의 난을

토평하는 데 공을 세워

식읍을 하사받고

상락군(上洛君)에 봉해졌다.

후손들이 그 지명을 따

본관을 금녕으로 하다

고려말에 지명이 김해(金海)로 개칭되자

김해로 본관을 삼게 되었다.

그래서 한때는 수로왕 계통의

김해 김씨와의 구분을 위해

김해 김씨를 선김(先金)으로,

금녕 김씨는 후김(後金)으로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시대 사육신의 한 사람인

김문기의 명성이 크게 알려진 뒤

여러 사람이 그 후손임을

자처하고 나서는 등

종통(宗統)을 어지럽히자

1865년(고종 2년)에

다시 금녕으로 확정하였다.

금녕 김씨가 배출한 인물로는

조선 개국공신 김인찬,

사육신의 한 사람인 김문기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김문기 이후

이렇다할 인물을 배출하지 못하다

해방 이후 문중에서 김홍일 장군,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등이 나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문중에서는 시조 이래 처음으로 등장한

‘임금’이 되는 셈이다.

친인척 정치권 진입 불가
YS는

금녕 김씨 문정공파(文正公派) 28대손으로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

1371번지에서 태어났다.

1928년 12월 4일 생이지만

호적에는 1927년 12월 20일 생으로 기록되었다.

실제 나이보다 한 살 더 많게 되어 있다.

멸치잡이 어장을 소유한

부친 김홍조(金洪祚)와

모친 박부연(朴富連, 작고)씨 사이에서

태어난 1남5녀 중 첫째.

이름 ‘영삼’(泳三)은 ‘물을 세번 헤엄쳐야

금빛을 만난다’는 뜻으로

조부 김동옥(金東玉)씨가 지었다.

집안에서는 금빛이

대권을 암시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다고 한다.

YS의 모친 박부연씨는

1960년 여름

무장간첩에 의해 피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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