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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경남거창 거창사건추모공원

작성자허수아비|작성시간26.06.22|조회수0 목록 댓글 0

일 시 :2026년 5월 5일

장 소 :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신차로 2924

 

경남거창 거창사건추모공원

 

거창사건추모공원은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6·25전쟁 중이던 1951년 2월 9일에서 11일까지 거창군 신원면에서 일부 국군에 의해 집단으로 희생당한 주민들의 넋을 위로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조성되었다. 1996년 ‘거창사건 등 관련자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으로 추진된 사업으로 총 부지면적 49,133평 규모의 합동위령사업을 1998년에 착공하여 2004년에 준공되었다. 거창사건추모공원에는 위령탑, 묘역, 역사교육관, 위패봉안각 등의 시설이 있다. 희생자들을 안장한 위령 묘지는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역사교육관은 거창사건희생자합동위령사업의 일환으로 2004년 4월에 완공되었다. 이곳은 그동안 수집되어 온 자료를 보존·전시하고, 왜곡되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며, 역사의 진실을 바로 잡아 이 땅에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기억하고 교훈을 삼을 수 있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다.

 

추모공원 시설안내도이다.

 

넓은 주차장이 잘 마련되어 있다.

 

주차장에서 들어가는 입구에 거창한 추모문(追慕門)이 세워져 있다.

 

멀리 정면으로 천유문이 보이고 좌측은 관리사무소가 있고 우측으로는 거창양민학살사건판결문비와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관리사무소의 모습

 

거창사건 명예회복 추진 현황판이다.

 

거창 양민학살사건 안내도

 

거창사건 신문보도 자료게시판

 

거창양민학살사건판경문비(居昌良民虐殺事件判決碑)가 세워져 있다.

 

좌측엔 신중모국회의원 공적비와 문병현회장 공적비가 세워져있다.

 

중앙에 인자한 어머니가 아기를 안고 있는 상이 모셔져 있다.

 

추모공원으로 들어서는 천유문이다. 천유문(天羑門)은 일상공간과 성역을 구부하는 뜻이며, 문 안쪽은 억울하게 희생된 영령에 대한 추모공간이므로 경건한 마음으로 관람하시기 바랍니다. 천유문(天羑門)이란 영령들을 하늘로 인도한다는 뜻을 지닌다.

 

거창사건 추모공원 안내판이 거창하게 세워져 있다.

 

거창사건 추모공원 안내도

 

거창양민학살사건 안내문이 상세히 안내되어 있다.

 

천유문(天羑門)의 현판

유(羑)자가 정말 어려운 한자라 옥편에서도 찾기 쉽지않다. 유(羑)는 착한말 할 유자로 1.착한 말을 하다. 2.인도하다. 3.권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인도하다라는 뜻으로 "하늘로 인도하는 문"이란 뜻이다.

 

천유문을 지나면 광장을 지나 멀리 거창사건추모공원으로 들어서는 계단으로된 아치가 보인다.

 

진입광장의 좌측으로는 방문자 쉼터와 화장실이 마련되어 있다.

 

우측으로는 위패봉안각이 세워져 있다.

 

방문자 쉼터란 이름표를 달고 있어 궁금하여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방문자 쉼터 안에는 중앙에 탁구대가 준비되어 있다.

 

이렇게 쉴수있는 공간도 마련해 놓았다.

 

계단위의 위패봉안각은 거창사건의 승화 공간으로 1951년 2월 9일 청연마을에서 1차로 희생된 84명, 같은 해 2월 10일 탄량골에서 2차로 희생된 100명, 같은 해 2월 11일 박산골에서 3차로 희생된 517명, 그리고 연행도중 희생된 18명 등 거창군 신원면 3곳에서 희생당한 719명(14세 이하 359명, 16~60세 294명, 60세 이상 66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습니다. 매년 추모제를 지내는 곳이므로 방문하신 여러분들께서는 헌화 분향하실 수 있으며 숙연한 마음을 가져 주시기 바랍니다.

 

 

추모공원으로 들어서는 이 아치로 된 시설물은 옆에서 보면 "추모다리"라는 이름의 구름다리이다.

 

추모다리로 올라가는 데크계단길이다.

 

옆에서 바라본 추모공원으로 올라가는 아치형 다리는 "추모다리"이다.

추모다리에서 내려다 본 천유문과 우측의 방문자 쉼터와 화장실이다.

 

추모다리에서 내려다 본 천유문의 좌측 위패봉안각의 모습

 

이제 본격적으로 추모공원으로 들어간다.

 

멀리 계단 이로 위령탑이 보인다.

 

좌측에서 올려다 본 위령탑의 모습

 

위령탑앞에서 내려다본 거창사건 교육관으로 가는 길이 꽃길로 아름답다.

 

위령탑 바로 아래로 조그마한 연못에서 분수대가 물을 뿜어내고 있다.

 

 

위령탑을 중심으로 좌우로 군상이 모셔져 있고 그 뒷편에 높이 4m, 길이 70m의 부조벽(테마 : 해한과 화합)이 만들어져 있다.

부조벽에는 우리 조상들이 생전 망인의 가슴에 마디마디 맺혔던 한을 품고 승천하여 평안하기를 비는 씻김굿의 살풀이와 소리꾼이 망인을 달래는 회심곡을 대입하여 테마를 전개하였으며, 도입부와 말미에 사건 전체를 노래하는 회심곡을 서사시로 도입 영혼을 달래고 추모하였으며, 50여년 동안 은폐되었던 사건의 전말을 5마당의 장으로 소주제를 구성하여 표현하였습니다.

 

님이여,

이제 천상에서

행복을 누리소서

 

민족비극인 6.25전쟁으로 인해 발생된 참극을 무고하게 희생된  고인들의 넋을 위로하여 구천에서 방황하는 영혼이 한을 풀고 다시 태어나 승천하여 영원한 행복을 누리도록 염원하는 뜻

거창사건으로 희생된 남자, 여자, 어린이의 무덤을 상징하는 3단의 돔 사이로 영혼이 부활하여 어둠을 혜치고 하늘로 오름

 

우측 군상(테마:환희)이다. 규모는 좌대 1.5m, 군상 2.5m이다.

후손들이 정성 어린 위로 속에 한을 풀고 승천의 기쁨을 만끽하는 영령들과 유족들을 환조로 표현하였다.

 

좌측군상 (테마 : 참회)은 규모 좌대 1.5m, 군상 2.5m이다. 

고인들에게 심대한 피해를 끼친 국군들이 진심으로 영령들과 유족들에게 참회하는 모습을 환조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뒷편의 부조벽은 해한과 화합을 상징한다. 높이 4m, 길이 70m이다.

우리 조상들이 생전 망인의 가슴에 마디마디 맺혔던 한을 풀고 승천하여 편안하기를 비는 씻김굿의 살풍이와 소리꾼이 망인을 달래는 회식목을 대입하여 테마를 전개하였으며, 도입부와 말미에 사건 전체를 노래하는 회심곡을 서사시로 도입 영혼을 달래고 추모하였으며, 50여년 동안 은폐되었던 사건의 전말을 5마당의 장으로 소주제를 구성하여 표현하였습니다.

 

통한의 장 1, 2

공비토벌을 위해 투입된 국군들에 의해 온 마을이 소개되고 내몰리는 주민들의 불안과 참극을 표현

 

회한의 장

사건의 진상을 밝히려는 국회조사단 피격과 분묘이장, 비문파손, 통비혐의로 고통받는 유족들을 표현

 

화합의 장

한의 치유와 명예회복으로 군민 모두 한마음 되어 화합을 노래

 

회심곡 1.

 

통한의 장 1, 2

공비토벌을 위해 투입된 국군들에 의해 온 마을이 소개되고 내몰리는 주민들의 불안과 참극을 표현

 

비극 태동의 장

민족비극의 발단인 빨치산의 보급투쟁과 경찰, 의용 청년들과 빨치산과의 격전을 표현

 

고요한 아침의 장

평화가 깃든 고요한 신원 산골의 화기애애한 모습을 표현

 

회심곡 2.

 

 

묘역으로 오르는 축대아래에 묘역의 배치도가 잘 마련되어 있다.

 

묘역으로 올라가 본다.

 

좌우로 수많은 영령들이 묻혀있다.

 

뒷편에 바라본 위령탑의 아름다운 모습

 

묘역에서 내려다 본 위령탑의 모습

 

묘역 건느편으로 멀리 박산골의 영령들을 모시고 있는 박산517앙모루도 보인다.

 

묘역 뒷편으로 기와 담장이 둘러져 있고 그 뒷편으로 무궁화를 심어 무궁화동산을 만들었다.

 

 

추모비 아래 정원에 정자옆에 추모운이란 싯귀가 적힌 커다란 돌이 하나 세워져 있다.

 

追慕韻(추모운) - 松軒(송헌) 南相慶(남상경)

 瑞日無光滄海東(서일무광창해동)  萬人哀哭一時同(만인애곡일시동)

居昌不覺非常月(거창불각비상월)  新院悲吹摠惡風(신원비취총악풍)

民意堂堂淸水裡(민의당당청수리)  愁雲片片淚蒙中(수운편편루몽중)

川鳴江咽天明動(천명강인천명동)  愴望佳城痛嘆通(창망가성통탄통)

 

성스러운 날 태양마저 바다멀리 사라져

추모제에 모인 사람들이 슬피 통곡하는구나

거창은 심상치 않은 그날의 낌새를 알지 못하였고

신원은 온통 살시의 피 바람이 불어 슬픔에 잠겼네.

유족들의 의지는 푸른 물 속과 같이 꿋꿋하여도

근심은 구름조각처럼 떠다니다가 이슬비 되어 흐르는 가운데

시내가 울고 강이 흐느껴도 하늘은 밝아 오는 것

구슬프게 합동 묘를 바라보니 뼈에 사무치는 탄식뿐이더라.

 

올려다 본 위령탑과 그 주변의 모습

 

위령탑을 올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를 계단으로 이렇게 만들어 포토존이란다.

 

포토존에서 올려다 본 위령탑의 전경이다.

 

 

거창사건 교육관으로 가는 길에 백형진의 신원 가는 길이란 시비가 세워져 있었다. 싯귀가 가슴을 콱막는 내용이라 옮겨본다.

 

신원 가는 길 - 백형진

 

아직도 미완의 꽃이 피어서 

지지 않는 땅

찔레꽃 철쭉꽃이 만발하고

달구지 몰고가는 할아버지가 쉬어 가는 

읍내 면서기도 기피하는 이곳을

우리는 아파도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간다.

 

농촌 살리 자고 

플래카드 읍내 한바퀴 돌아도

누구하나 가들떠도 안보고

배고픈 오지의 땅에

무배추 농사지어 고랭지 채소라고

이름내도 거들떠보지도 않는 곳

우리는 아파도 오라며 오고

가라면 간다.

 

빨갱이란 말에 쪽팔려서

명예 회복 한답시고

거리마다 도시마다 곳곳이 돌아도

거들떠도 안 봐주는

서울 양반들 말만 OK, OK

 

누군들 멋진 곳에 살고 싶지 않으랴

누군들 도회지에 살고 싶지 않으랴

과정리, 박산골과 덕산리, 청연골

대현리 탄량골, 흙 무덤 거느리고

구들장 같은 

농노 빛 한바지개 지고 살아도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간다.

 

신원길아!

신원길아!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간다.

 

역사교육관으로 가는 길이다.

 

역사교육관의 모습이다. 역사교육관의 내용은 양이 많아서 따로 분리하여 다음회에 소개합니다.

 

이제 거창사건 묘역을 한바퀴 돌아오는 나라꽃 무궁화 명소로 들어선다.

 

제11화 나라꽃 무궁화 명소 최우수로 선정되었단다.

 

이 곳에 심어진 무궁화는 국립산림과학원에서 기증한 것을 심었단다. 

 

 

 

 

 

 

 

 

 

 

 

 

 

드지어 묘역 뒤를 한바퀴 돌아오는 무궁화 동산길이 끝나는 지점에 도착했다.

 

여기는 위패봉안각인데 문이 굳게 잠겨있어 추모는 하질 못했다. 문앞에 "추모를 하실 분은 아래 연락처로 연락하라고 전화번호가 적혀있는데 성가시게 전화하기가 좀 그렇다. 항시 문을 좀 열어두면 많은 방문객들이 추모를 할 수 있을텐데...

 

 

여기가 무궁화 동산 끝나는 지점이며 출발지점이기도 하다. 거창사건추모공원 무궁화 동산은 2012년에 처음 시작하여 1.2ha의 면적에 약 4,200주가 식재되어 있으며 현재고 진행형이다. 품종은 한겨레 등 6품종이며 참여단체는 민.관.군.학교 등이 함께 참여한다.

이 거창사건추모공원 무궁화 동산은 1951년 2월 9일부터 3일 동안 거창사건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719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2012년 부터 향토애와 호국보훈의 상징인 무궁화를 식재하고 무궁화 동산을 조성하였다. 2024년 "제11회 나라꽃 무궁화 명소"로 지정되어 인근에서 가장 큰 규모의 무궁화동산이며 거창사건추모공원의 무궁화 동산은 한국전쟁의 비극을 인권과 평화로 승화시키는 교육의 장으로 그 가치와 의미가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거창사건 추모공언 아래로 개울 옆의 들녘모습

 

 

거창사건추모공원 관리사무소이다.

 

관리사무소 옆에는 이곳에서 사용하는 전기차가 기다리고 있다.

 

넓은 주차장의 모습

 

멀리 보이는 돌계단을 오르면 탄량골 희생장소가 있다.

 

여기는 탄량골 희생장소 이다. 

 

탄량골 희생장소 보존비가 세워져 있다.

 

 

 

탄량골 희생장소에서 내려다본 주차장의 모습

 

거창사건추모공원은 아주 잘 가꾸어 관리가 잘 되어 아름답고 쾌적한 공간으로 기억된다.

 

멀리서 바라본 거창사건추모공원의 전경 왼족 교육관으로 부터 길게 널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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