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시 : 2026년 4월 24일
장 소 : 전북 고창군 고창읍 동리로 100(고창읍성 정문앞)
우리 민중예술의 유산인 판소리를 재정리하고 그 체계를 집대성한 동리 신채호 조선후기 '인물, 사설, 득음, 너름새'라는 4대 법례를 마련한 이론가이다. 1812년(순조 12)에 태어나 1884년(고종 21)에 사망했다. 「광대가」를 지어 판소리의 이론을 수립하고 인물·사설·득음·너름새라는 4대 법례를 마련했다. 동편제와 서편제의 장점을 조화시키면서 판소리의 ‘듣는 측면’에다 ‘보는 측면’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판소리를 즐기면서 동시에 이론적 정리 작업을 진행했다. 판소리 여섯마당의 사설을 개작하여 체계적인 구성을 갖추게 한 결과, 판소리가 신분을 넘어선 민족문학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고창읍성 정문에서 조금 나오면 동림신재효의 고택이 있다.
신재효고택이 토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초가로 된 대문간이 있다.
초가 대문간을 통해 집안으로 들어가 보자
대문간을 들어서면 사각 토담장 안에 먼저 우물이 있고 사랑채가 자리하고 있다. 엄청난 크기의 고택중에서 이 사랑채만 남아있단다.
화단앞에 민속자료 신재효고택이란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두레박으로 퍼서 올리는 우물의 모습이다.
고창 신재효 고택(高敞 申在孝 古宅) - 국가민속문화유산
이 집은 신재효의 대저택인 동리정사의 사랑채로 조선 철종 때인 1850년에 처음 지었고 1899년에 고쳐 지은 것으로 추정한다, 본래 동리정사는 13,000여㎥ 대지에 안채와 14칸 줄행랑채 등 많은 부속 건물이 있었던 곳이다. 마당으로 수로가 흘렀고 거대한 석가산이 있어 운치 있는 집이었으나 지금은 사랑채만 남아 있다. 신재효(1812~1884)는 〈심청가〉 〈춘향가〉 〈박타령〉 〈토끼타령〉 〈적벽가〉 〈가루지기타령(변강쇠타령)〉등 판소리 여섯 마당을 정리하였다.
이전까지 일정한 체계나 순서 없이 불러오던 광대 소리를 모아 사설의 체계를 잡아 개작하고 통일한 판소리 문학의 이론가요 연출가로서 판소리 사설(타령)을 창작하고 집대성한 인물이다. 신재효는 향리라는 신분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당시 천대 받던 판소리꾼을 교육하고 예술 활동을 후원하여 판소리를 국문학의 정수로 끌어올렸다. 이 집은 특이하게 원기둥과 사각기둥이 섞여 있다. 건축 당시에는 모두 원기둥이었는데 암행어사가 신분에 맞게 법을 지키기를 요청하자 어사의 체면을 살려주고자 집을 낮추고 뒷기둥을 격이 낮은 사각기둥으로 고쳤다고 한다.
대청마루을 중심으로 좌우로 방이 들여져 있다.
방안의 모습인데 뒷편에도 문이 있고 왼쪽 벽에는 벽장이 있는게 특징이다.
좌측면에 있는 부엌이다.
부엌내부의 모습인데 아주 단순하네요
대청마루의 모습
사랑채의 뒷면인데 기둥이 모두 원형인 앞면과 달리 사각기둥이네요
한국의 세익스피어 동리 신재효(桐里 申在孝)
광대소리를 위해 만장의 기염과 소담한 자료, 이론적 유산을 남겨놓은 이가 바로 신재효 이며 이제 그의 생전의 업적으로 인하여 판소리의 성지가 되었다. 그는 서민 판소리 문학의 이론가요, 연출가이며, 광대의 지휘자로서 광대들 뒤에서 그 사설으 정리하여 준 숨은 공로자로 해박한 지식과 절묘한 기법으로 판소리 사설(타령)의 창작과 집대성으로 필생의 대업을 이루었다.
그는 1812년(순조 12년) 11월 6일 고창현 천남면 서문리(현 고창읍 읍내리)에서 신광흡의 1남3녀의 외아들로 태어났으며, 민족문학사의 찬연한 업적의 가치성을 당시 몹시 천대하고 멸시하던 광대와 우리말과 글을 홀로 사랑하고 키우고자 일생의 정력을 오로지 여기에 바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람 이병기 같은 학자는 신재효가 이룩한 판소리의 업적을 문학사상의 「기적인 사업」으로 지적하고 있으며 우리민족성을 발휘하여 국가문학을 크게 이루어 준 우리의 큰 은인이였다고 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동리가비(桐里歌碑)
고창읍내 홍문거리 두춘나무 무지기안
시내우에 정자짓고 정자겨테 포도시렁
포도끄테 연못이라
자서가
姓貫(성관)은 平山申氏(평산신씨) 이실在(재) 효도孝(효)는
帳籍(장적)의 啣字(어자)이요
일백百(백) 근원源(원)은 친구간의 字號(자호)로다
뜰아래핀 碧梧桐(벽오동)은 壬申生(임신생)과 同甲(동갑)이오
里號(이호)는 桐里(동리)오니 너도工夫(공부) 하량이면
가끔가끔 차져오소 / 에용에용 어허 우겨라 방아로구나
시비 하단에는 1984년 12월 27일 백주기(百週忌) 전국시가비(詩歌碑)건립동호회가 세우고, 고창문화원, 판소리학회, 판소리보존연구회, 신씨문중 그리고 개인 헌성자들의 이름들이 새겨져 있다.
사랑채의 정면으로 또 다른 출입문이 달려있다.
사랑채의 우측으로 조그마한 사각 연못이 있는데 물은 고여있질 않는다.
흔히 길거리 화단에서 자주 보는 보라색 팬지이다.
예쁘게 피어있는 노란색의 이 꽃도 팬지인데 꽃말은 "나를 생각해 주세요"란다.
이제 출입대문을 나선다.
고창읍성 앞에 있는 공원의 모습이다.
고창읍성 성곽 아래로 빨간색의 철쭉이 아름답다.
저기 도서관앞에서는 어느 부녀단체가 행사를 하고 있네요
동락정이란 정자이다.
이 곳은 화포청(火砲廳) 터란다.
화포청은 고창현의 화약제조 및 화기제작 등을 관장하던 공청(公廳)으로 고을의 한량들이 편을 갈라 활쏘기를 겨루고 사습(私習)하던 향사당(鄕社堂)으로도 쓰였다.
초가에는 물레방앗간이 만들어져 있는데 관리가 부실하다.
고창읍성의 공영주차장 앞에 있는 고창군농특산품전시판매장이다.
이 건물은 고창공예품전시관이다. 그런에 곧 다른곳으로 이전을 한다네요
고창읍성 아래로 고창 한옥체험마을이 조성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