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지식의 유희와 가짜 성전의 붕괴
"가장 가까운 사람의 투정도 소화 못 시키면서, 무슨 우주와 인류를 논했는가."
우리는 흔히 거창한 철학적 텍스트를 읽고, 종교적 교리의 본질을 깨달으며, 우주의 해방을 논할 때 스스로가 대단히 고결한 존재가 되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머릿속으로는 동서고금의 성인들이 말한 무아(無我)의 경지를 이해했고, 신의 사랑과 자비가 세상에 어떻게 구현되어야 하는지 완벽하게 논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지식으로 켜켜이 쌓아 올린 영성의 성전은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남들보다 삶의 본질을 더 깊이 꿰뚫어 보고 있다는 은밀한 우월감은 저를 지독한 '지식의 허영'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은연중에 타인을 가르치려 들고, 내 논리 위에 군림하려는 이른바 '교주병'에 걸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삶의 진짜 시험대는 골방의 모니터 앞이나 두꺼운 철학책 속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초라한 일상에 있었습니다. 머리로는 온 인류를 포용할 수 있을 것 같던 거대한 자아는, 정작 문을 열고 나간 현실에서 여지없이 깨어지고 부서졌습니다. 가장 가까운 존재인 아내가 툭 던진 사소한 투정 하나,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작은 서운함의 말 한마디조차 소화해 내지 못하고 마음의 불길을 일으키는 저 자신의 옹졸함을 목격한 순간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타인의 감정조차 품어주지 못하면서 방구석에서 우주의 해방을 논하던 제 영성은 그야말로 알맹이 없는 위선이자 껍데기일 뿐이었습니다. 관념 속의 거룩함은 현실의 아주 작은 마찰 앞에서도 힘없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가짜로 지어 올린 영성의 성전이 통렬하게 무너져 내리자, 뒤이어 감당하기 힘든 지독한 허무와 무기력이 찾아왔습니다. 머릿속을 채우던 지식들이 모두 유희에 불과했음을 깨달았을 때, 저는 길을 잃었습니다. "가짜 성전이 무너진 자리에 남은 이 초라한 나는, 이제 무엇을 지향하며 살아야 한단 말인가?"라는 깊은 혼란과 허탈함이 영혼을 뒤흔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