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준회원게시판

삶을 포맷하고 우주의 틀 없는 집을 짓다

작성자대리인|작성시간26.06.16|조회수94 목록 댓글 0

관념의 성전이 무너진 황무지 위에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우리는 사체를 먹는 구더기이기도 하며 동시에 천년을 사는 학이요 천개의 연꽃이자 흰 백합의 향기이기도 합니다 이 극과 극의 형상이 모두 나라는 존재의 본질임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컴퓨터가 바이러스에 걸렸을 때 초기화를 하듯 삶의 포맷이 시작됩니다 갓난아기로 되돌아가고 정자로 되돌아가듯 나를 온전히 진공 상태로 만들어 비워낼 때 그 빈 가죽 부대에 저절로 새로운 술이 채워지기 시작합니다

잠에서 깨어나 고요한 수련 속에서 마주한 나는 곧 창조자였습니다 무언가를 억지로 만들어내려는 창조를 멈추는 순간 이미 온전하게 창조되어 있는 본래의 우주를 보게 됩니다 우리는 거대한 프랙탈의 일부분이자 전체이며 홀로그램의 파편이자 우주 그 자체입니다 창조를 멈춘다는 것은 깊은 이완이자 휴식이며 그때 비로소 우리는 삶이라는 무대를 자유롭게 노니는 여행자가 됩니다

이러한 깨달음 속에서 써 내려가는 나의 시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닙니다 피어난 꽃의 향기이기도 하고 사체가 썩어가는 냄새이기도 한 그 노래는 충만함의 흘러넘침이자 걸림 없는 삶의 노래일 뿐입니다 내가 쓴 글과 시에 집착하지 않고 완전히 잊어버릴 때 내면은 늘 솟아나는 샘물처럼 새로워집니다 뼈를 발라내고 가시를 발라내어 오직 살코기만 취하듯 그렇게 순수한 진실만을 남겨야 합니다

우리는 삶이라는 단단한 대들보 위에 진실이라는 서까래를 얹어 우주의 틀 없는 집을 지어 나갑니다 이 시의 집은 고결한 성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거친 삶의 현장에서도 암자의 앞마당에서도 성당과 교회에서도 심지어 막걸리를 마시는 저잣거리에서도 눈썹 사이로 보이는 세상을 그대로 옮겨 적으며 지어집니다

타행성에서 지구를 바라보면 땅 또한 우주 공간에 떠 있는 하늘일 뿐입니다 땅을 관통해 시선을 직선으로 통과해 끝없이 나아가면 지구 반대쪽 사람 눈에는 그저 끝없는 하늘이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우주인이자 잠재된 하느님입니다 이 우주적 통찰을 두고 언제까지 꿈속에서 꿈을 쫓으며 살 수는 없습니다 이제는 깨어나야 할 때입니다 방구석의 오만한 자아를 내려놓고 삶의 실전으로 나아갈 때 비로소 진짜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