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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격투기

6.25에 참전하여 중공군을 몰살시킨 군마 '레클리스 병장'

작성시간25.05.18|조회수8,319 목록 댓글 11


한국전쟁 당시 전선에서 활약한 미 해병대에 레클리스(병장, Sgt. Reckless, ~ 1968.5.13)라는 몽고종 암말인 군마가 있었다.

이 군마는 6.25 동란 한국전쟁이 발발하기 전에는 서울 신설동 경마장에서 경주마로 트랙을 누볐던 말이였는데 한국명은 '아침해'였다. 이 해병 제 1 해병사단 제 5 해병 연대 무반동총 대전차 소대의 군마이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을 넘어 남친해 내려온 북한군이 일으킨 한국전쟁과 함께 '아침해'의 운명도 바뀌게 됩니다.

6.25전쟁이 치열했던 1952년 마주였던 소년 김문혁은 미 해병 1사단 5연대 부반동화기 소대의 에릭 페더슨 중위에게 자신의 애매 '아침해'를 250달러에 팔고맙니다.

소년의 여동생이 다치는 바람에 치료비를 마련하고자 어쩔수 없는 선택이였다고 합니다.


미 국방부는 이때를 '아침해'의 미군 입대일로 기록하였습니다. '아침해'는 최전선의 해병대원들에게 탄약과 포탄을 나르는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해병대원들은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무모할 정도로 용감하게 (Reckless)' 임무를 수행한 아침해에게 '레클리스'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렇게 전쟁의 비극으로 전주인과 이별을 한 전주인 남매의 한이라도 풀어주려는 듯 두려움없이 전쟁터를 누볐습니다.


식성이 매우 특이하여 달걀과 맥주, 코카콜라는 물론이요 병사들의 간식인 30달러짜리 감자칩도 스스로 거리낌없이 먹어치웠다고 한다.


그런데 이 말이 보통 영특한게 아니여서 베가스 고지의 전투에 투입된 레클리스는 병사 피더슨이 부르면 어김없이 달려와 상황을 눈치채곤 홀로 보급기지까지 많을때는 하루 51차례까지 왕복으로 무거운 물자를 매달고 달렸다.

"새벽 여명의 연기와 화염속에 말의 실루엣을 보고 내눈을 믿지 못했다. 레클리스였다"

- 헤럴드 워틀리 예비역병장이남긴말 -

"암갈색 몸매에 하얀 얼굴을 한 레클리스가 빗발치는 총탄을 뚫고 전투병에겐 생명과도 같은 포탄을 날라주는 모습은 모두에게 감동이었습니다. 레클리스의 용기와 헌신은 적을 괴멸시키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 암말은 말이 아니라 해병대였습니다. 군인들과 동료로서 가까워지려했고 그들을 위해 무엇이든 하려고 하였으며 어디든 아무곳이든 함께했습니다"

- 레클리스 해병대 동료들의 증언 -


레클리스와 미 해병대 대원들이 사용했던 75mm 무반동포

레클리스는 전쟁이 막바지에 치닫던 1953년 3월 미 해병과 중공군 120사단이 맞붙은 '연천 전투 (네바다 전투)'에서는 닷새간 51회에 걸쳐 4000kg의 실탄을 최전방에 날라 혁혁한 전공을 세웁니다 (전사자:중공군 1300여명,미군 118명)

또한 수많은 전장터의 보급기지와 최전방 고지를 386회나 왕복하며 탄약 수백톤을 날랐습니다.이렇게 레클리스가 전투에서 포격과 총격을 뚫고 도저히 사람이 할 수 없는 엄청난 양의 탄약을 실어단 준덕에 많은 고지를 탈환하였습니다


레클리스는 전선을 오가는 길도 빨리 익혀 경황이 없을때는 혼자 왕래를 하였습니다. 총격이 시작되면 몸을 숙여 앉아서 피하고 포격이 시작되면 벙커로 피하는 영리함도 지녔습니다.

옆에서 발사되는 포탄의 굉음에도 놀라는 법이 없었고 탄약뿐만아니라 부상병들도 안전하게 병동으로 날랐습니다.


또한 레클리스는 친화력이 좋아 병사들과 친하였으며 맥주를 좋아했고 스크램블 에그와 초콜릿푸딩을 잘먹었다고 합니다.

미 국방부는 장병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한 레클리스를 정전협정후 미국 버지니아 콴티코해병대 본부로 데려갔습니다. 또한 전쟁터에서 부상당한 레클리스에게 전투중 부상당한 군인에게 주는 퍼플하드훈장은 물론 미 대통령 표창장과 국방부 종군기장을 수여받았습니다.

그리고 1959년 미 역사상 처음으로 군마인 레클리스를 하사관으로 진급시킨 후 근무기장인 선행장도 수여하였으며 1960년 성대한 전역식을 가진 레클리스가 1968년 죽자 미 해병대는 정식 장례식을 치르는 등 마지막까지 최대한 예우를 했다고합니다.



그리고 한국 전쟁에 영웅 레클리스가 다시 탄생 영원의 세월을 살게 되었습니다. 2013년 7월 18일 국립해병대박물관 야외공원에 실물크기 동상이 설치된 데 이어 한미동맹의 상징으로 부상한 군마 레클리스의 동상과 기념관 헌정식이 2013년 7월 26일 오후 미해병대 본부에서 열렸습니다.


제임스 에이머스 해병대 사령관과 한국전 참전 용사 미 해병 1사단 5연대 소속 해럴드 워들리(80)예비역 병장

해럴드 워들리(80)예비역 병장이 참석하여 생생한 추억을 소개해 영웅담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우리의 용감한 전우 레클리스는 부대에서 유일하게 네 발 달린 해병대원이었다. 행군을 할때가 되면 모두 레클리스처럼 발이 네 개였으면 하고 바랬다"는 농담으로 말을 열었습니다. 워들리씨는 "레클리스는 천상 해병대원이었다. 철조망 아래로 기기도했고 총격전때는 영리하게 납작 엎드리기도했다. 적군의 폭격이 있을때는 벙커로 재빨리 뛰어들어가기도했다"고 회상하였습니다.


레클리스는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와 라이프매거진 등이 특집기사로 다뤘었고 1997년 라이프지 특별호에선 '세계100대영웅'에 선정 되기도 했습니다. 100대영웅에는 조지워싱턴, 에이브러험 링컹,성녀마더테레사등과 함께 이름을 올린것입니다.

이후 메모리얼 데이와 베테랑스 데이에 매년 기념되고 있으며 장난감 모형으로도 제작되어 팔리고 있다.


그런 한국전쟁 영웅 레클리스가 드디어 고국인 한국땅으로 돌아온다고합니다. 연천군은 그가 수도 없이 탄약을 날랐던 연천 고랑포구 역사공원조성지 한가운데에 내년 말까지 그의 동상을 세울 예정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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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1

댓글 리스트
  • 작성시간 25.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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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시간 25.05.19 레클리스 하사 저정도면 원사진급 시켜줘야하는거 아닌가
  • 작성시간 25.05.19 이 정도면 어지간한 인간보다 나은듯
  • 작성시간 25.05.19 아..이런 게시물 너무 좋습니다ㅠㅜ
  • 작성시간 25.05.19 용비불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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