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영조가 사도세자 이훤을 뒤주에 가둬 죽인 임오화변
사실 왕이 자기 아들을 죽이는 사건이 없지 않이 있었음
중종은 복성군을 사사했었고
인재보는 눈과 도망치는 실력만큼은 발군이지만
자식농사는 흉년인 선조는
살인마 왕자 순화군이 풍맞았을 때 고의로 치료를 안해 죽도록 방치했었음
임오화변 때 사람들이 진짜 충격 받았던 것은 바로...
"아니 어떻게 사람을 뒤주에 가둬서 죽일 생각을 했지????"
뒤주란 그 용도가 곡식을 보관하는 것인데
거기에 사람을 가둬서 죽인 것에 충격 받았던 것임
광해군이 영창대군을 초고온 찜질방을 이용해
열사병으로 제거한 것도 엽기적인데
식량 보관함에 사람을 보관해서 죽인 영조의 술책에
사도세자를 증오하는 정치파벌조차 경악했다고 함
어찌나 충격적이었던지 임오화변 이후 궁중에서 사람들이
뒤주를 지칭할 때 차마 뒤주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거'라고 이야기했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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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1
댓글 리스트-
작성시간 25.10.15 윽 폐소공포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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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25.10.15 영조시대 정치를 잘한 성군으로 알고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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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25.10.15 진작 죽였어야함. 사도세자가 궁궐서 고문하고 베어 죽인 사람 숫자가 수십에서 백명 가까이 되는게 정설. 거열형도 아니고 뒤주에서 굶겨죽였으면 자비를 베푼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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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시간 25.10.15 영조 입장에서 보면 그간 범죄행각 때문에 사도세자에게 왕위를 물려 줄 수 없었음
세손이 똘똘하기 때문에 왕위는 세손이 이으면 됨
하지만 정조한테 왕위를 물려줘도 사도세자가 살아 있으면 정통성이 겁나 빈약해짐
결국 사도세자를 죽일 수 밖에 없다는 결론
근데 공식적으로 사형 시키면 정조가 사사당한 죄인의 아들이 되므로 정통성에 문제 생김
독살이나 암살로 의문사 당하면 그 역시도 정조의 정통성에 해가 됨 -> 영조 본인이 이거 때문에 재위 내내 시달림
결국은 사형이 아니면서도 세손과 엮을 수 없는 명명백백한 죽음이 필요함
그래서 자결 시키려 했는데 신하들이 반대해서 실패
결국 뒤주에 가두는 벌 주다 벌이 과해서 죽은 걸로 마무리 -
작성시간 25.10.15 영조도 사도세자를 죽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었음. 사도 세자는 요즘 말로 하면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