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11월 30일 발매된 마이클 잭슨의 6번째 정규 앨범 'Thriller'
이 앨범은 퀸시 존스, 폴 매카트니, 에디 반 헤일런, 스티브 루카서, 제프 포카로 등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앨범으로도 유명하다.
앨범 아트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칠흑 같은 어둠 속, 마이클 잭슨의 뒤편에서 뿜어져 나오는 조명이 그의 머리카락 실루엣을 따라 흐르며 신비로운 후광을 만들어내고 있다. 이 조명이 만들어낸, 신비롭고 은은한 빛의 산란 속에 마치 어둠을 뚫고 나오는 신의 계시처럼 마이클 잭슨의 이름과 앨범 제목이 금빛으로 새겨져 있다.
그 아래에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눈부신 흰색 수트을 입은 마이클 잭슨이 마치 렌즈 너머를 꿰뚫어 보듯 차분하게 정면을 응시하며 왼쪽 팔꿈치를 바닥에 괴고 비스듬히 누워있다. 언뜻 보면 뭔가 철저하게 계산된 듯한 조명과 구도가 돋보이는 이 사진은 과연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1982년, 마이클 잭슨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심정이었다.
3년 전 발매한 솔로 앨범 ’Off the Wall‘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평단과 그래미 시상식 등에서 흑인 아티스트라는 이유로 혹은 아이돌 출신이라는 편견으로 자신을 '올해의 앨범' 후보에서 제외하는 등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당시 그는 단순한 히트작이 아닌, 역사상 전무후무한 걸작을 만들겠다는 강박에 가까운 완벽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당시 미국 음반 시장은 디스코 열풍이 꺼지면서 불황의 늪에 빠져 있었고, 소속사인 에픽 레코드(Epic Records)와 모회사 CBS는 막대한 제작비를 쏟아붓는 마이클과 프로듀서 퀸시 존스를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이새끼들 이거 진짜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나?"라는 소속사의 불신 가득한 시선, 그리고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중압감 속에서 마이클은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 있었다.
그는 음악뿐만 아니라 앨범의 얼굴이 될 커버 아트에서도 기존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엎고 싶어 했다. 더 이상 잭슨 5의 막내가 아닌 성숙한 아티스트의 이미지, 세상을 지배할 '팝의 황제'다운 카리스마가 필요했다.
1982년 8월의 어느 날이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 위치한 딕 짐머만(Dick Zimmerman)의 스튜디오.
(당시 딕 짐머만은 할리우드 스타들 사이에서 가장 핫한 사진작가였기에, LA 중심가에 자신의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었다.)
이날 그의 스튜디오에는 훗날 전설적인 앨범이 될 ’Thriller‘의 촬영을 위해 당대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들이 총출동해 있었다. 스튜디오에는 ’Thriller‘라는 앨범의 컨셉에 맞게 강렬하고 화려한 의상들이 한가득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수많은 의상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마이클의 표정은 점점 시무룩해졌다. 최고의 스튜디오, 화려한 의상들 중에 마이클의 눈에 들어온 옷은 단 한 벌도 없었다.
마땅한 의상을 찾지 못하고 스튜디오를 둘러보던 마이클의 눈에 순간적으로 들어온 옷이 하나 있었다. 마이클은 사진작가 딕 짐머만에게 다가가더니 수줍게 말했다.
”작가님, 지금 입고 계신 그 옷... 제가 한번 입어봐도 될까요?“
그날 딕 짐머만은 당시 유행하던 브랜드인 휴고 보스(Hugo Boss)의 화이트 리넨 수트를 입고 있었다. 마이클의 제안에 딕 짐머만은 흔쾌히 옷을 바꿔 입었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사람의 체격이 비슷해서 딕 짐머만의 수트는 마이클에게 딱 맞았다.
마이클은 화려하고 강렬한 무대 의상 대신, 사진작가가 입고 있던 깔끔하고 평범한 수트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섰다. 그는 여기에 자신이 준비한 벨트를 매치하여 자칫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옷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이날 마이클의 변신은 의상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이전의 앨범인 ’Off the Wall‘이나 잭슨 파이브 시절의 상징이었던 둥글고 풍성한 아프로(Afro) 스타일의 머리카락를 과감하게 잘라내고, 당시 흑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촉촉한 질감의 제리 컬(Jheri Curl) 스타일을 한 채 렌즈를 응시했다.
또한 넥타이를 매지 않고 셔츠를 살짝 풀어제낀 모습으로 자유로움을 표현했으며 수트 주머니에 무심한 듯 꽂혀 있는 행커치프는 그가 추구했던, 성숙하고 세련된 신사의 이미지를 완성하는 포인트가 되었다.
(훗날 딕 짐머만의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본격적인 촬영은 점심시간쯤 시작되었으며 촬영 자체는 약 2시간 만에 끝났다고 한다.)
마이클은 딕 짐머만의 옷을 입고 카메라 앞에서 여러 포즈를 취했다. 조금 전까지 수줍게 옷을 빌려달라던 청년은 셔터 소리와 함께 완벽한 뮤지션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왼쪽 팔꿈치를 바닥에 댄 채 비스듬히 누워있는 전설적인 앨범 아트가 탄생했다.
여기에 마지막 방점으로 앨범 상단에는 조명이 은은하게 퍼져나가고 거기에 ‘Michael Jackson’과 'Thriller'라는 글자가 고급스러운 금빛 톤으로 새겨져 있다. 마치 만년필로 거침없이 휘갈겨 쓴 듯한, 혹은 바람에 우아하게 휘날리는 듯한 유려한 곡선의 필기체가 돋보인다.
이는 앨범의 컨셉이긴 하지만 자칫 가벼워 보일 수 있는 공포 영화의 이미지를 걷어내고, 앨범을 한층 격조 높은 걸작으로 완성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커스텀 레터링이다.
(참고로 촬영이 끝난 후 짐머만은 이 수트를 자신의 옷장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냥 흔해 빠진 기성복 수트였지만 팝의 황제가 선택한 그 순간, 이 수트는 단순한 공산품을 넘어 값을 따질 수 없는 역사의 한 조각이 되었다.)
1984년 2월 28일, 제26회 그래미 어워드(Grammy Awards) 시상식에서의 마이클 잭슨과 퀸시 존스.
이날 마이클은 ‘Thriller’ 앨범 하나로 무려 8개의 트로피를 휩쓸며 역대 최다 수상 기록을 세웠다.
비하인드
LP나 CD의 부클릿를 자세히 살펴보면 앨범 커버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사진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아기 호랑이를 품에 안고 환하게 웃거나 함께 있는 마이클 잭슨의 모습이다.
평소 수줍음이 많고 여린 성격의 마이클이었기에 촬영 초반, 스튜디오의 화려한 조명 아래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그가 너무 굳어 있자 제작진은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평소 아이들과 동물을 좋아하는 마이클을 위해 스튜디오에 실제 아기 호랑이를 데려온 것이다.
마이클은 아기 호랑이를 보자마자 긴장이 풀렸고, 촬영장 분위기는 한층 밝아졌다. 앨범 속지를 살펴보면 마이클의 무릎에 안긴 아기 호랑이가 그의 흰색 수트 소매를 잘근잘근 씹으며 장난을 치는 모습과,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호랑이를 안고 있는 모습 등을 볼 수 있다.
앨범 커버 촬영 당시 찍은 수많은 사진 중 하나.
형광등을 마치 스타워즈 광선검처럼 들고 있는 마이클의 모습.
앨범 관련 자료를 찾아보면 마이클 잭슨의 숨겨진 재능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그림을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바로 폴 매카트니와의 듀엣곡 ’The Girl Is Mine‘을 묘사한 펜화인데, 놀랍게도 이 그림은 마이클 잭슨이 직접 그린 것이다.
그는 가사 속에서 한 여자를 두고 유치하게 다투는 두 남자의 상황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평소 자신의 악상을 그림으로 기록하곤 했던 마이클은 이 스케치를 통해 음악뿐만 아니라 미술에도 남다른 조예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앨범의 성공 뒤에는 로드 템퍼튼(Rod Temperton)이라는 천재가 있었다.
그는 Thriller, Baby Be Mine, The Lady in My Life 등을 작곡했으며, 프로듀서 퀸시 존스가 가장 신뢰했던 작곡가이다. 원래 타이틀곡의 제목은 ’Starlight‘였으나, 그가 제목을 ’Thriller‘로 바꾸고 가사를 공포 컨셉으로 과감하게 뜯어고친 덕분에 지금의 ’Thriller‘ 앨범이 탄생하게 되었다.
또한 앨범의 크레딧을 자세히 살펴보면 스티브 루카서, 제프 포카로, 스티브 포카로, 데이비드 페이치 등 토토(Toto)의 멤버들이 앨범 전반에 걸쳐 포진해 있는 걸 볼 수 있다. 이 앨범에서 토토의 지분은 단순한 세션 그 이상이었다.
‘Human Nature’는 스티브 포카로가 직접 작곡한 곡이며 ‘Beat It’의 경우엔 에디 반 헤일런의 기타 솔로를 제외하면, 메인 기타 리프와 베이스, 드럼까지 모두 토토의 멤버들이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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