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20대 임금, 경종 이윤
말이 없다, 나약하다, 불쌍하다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는 몇 안되는 이미지입니다
그의 어미는 장희빈이었습니다.
아비인 숙종이 어미 장희빈을 내치고 사약을 내려
죽이려 할 때 세자는 고작 14살에 불과했습니다.
어린 세자는 아비에게 찾아가
제발 어미의 목숨만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 했죠
또 노론 신하들에게 매달려
제발 어미를 죽이지 말아 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 대답은 "이게 다 세자를 위한 것입니다"
라는 노론 신하들의 차가운 냉소였죠
어미를 죽이기로 결정 했단 말을 듣고
어린 세자는 매일 울다 지쳐 잠들었습니다
그러다 어머니가 아직 안 죽었단 소식을 들으면
혹시나 어미가 살 수 있을까 살려주지 않을까 하여
다시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여기저기 다니며
제발 살려 달라고 빌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어린 세자 이윤은
어미의 죽음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아니 실제로는 세자 이윤은
어미의 임종조차 제대로 볼 수도 없었습니다.
노론 신하들이 내세운 정비 인현왕후의 상중이란 이유로
세자는 어머니의 마지막 현장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어미가 죽어갈 때 어린 세자는 그저 울면서
계모 인현왕후의 빈소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런 과정을 보았던 노론 신하들은
세자가 왕이 되면 자신의 어미를 죽인 노론에게
앙심을 품고 장차 해악을 가할까 염려했습니다
조선에는 이미 연산군의 전례가 있었죠,
그가 임금이 되기 전 세자 위를 폐하고 싶어했습니다.
숙종의 병세가 악화되어 드러눕자
세자에게 대리 청정을 시킨 것도 그 때문입니다.
말이 좋아서 대리청정이지
나약한 세자를 정치판 전면에 나오게 하여
만약 조그만 한 실수라도 하게 되면
그걸 꼬투리 잡아 끌어 내리고자 한 계략입니다.
물론 그도 그걸 너무 잘 알았기에
꼬투리를 안 잡히려고 필사적으로 말을 조심했습니다.
말을 조심하는 정도를 넘어 아예 극도로 아끼게 됩니다.
오직 한 마디만 했습니다.
"유의하겠다"
즉 "생각해 보겠다" 이거만 하며 끈질기게 버틴 거죠
노론 신하들이 이게 아닌데? 하고 느끼었는지
그럴 수록 더욱 더 세자를 압박을 했습니다
세자에게 무슨 의견이나 비답을 달라고
면전에서 윽박 지르고 논박해 봤죠
하지만 그에 대한 답변도
"유의하겠다" 였습니다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대리청정 이었기에
말 한 마디를 해도 아끼고 아끼어 뱉은 것이죠
그런 세자가 단 한번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승지가 아예 늦게 입시를 해 세자를 기다리게 한 사건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비서가 자신이 모시는 사장이
바지 사장 같다고 늦게 출근하며
사장 보고 비서를 기다리게 시킨 것입니다.
그때 세자는 " 너희가 감히 이럴 수 있냐" 며
승지들의 죄를 추궁한 적이 있습니다.
오랜 기간 세자가 스트레스 받으며 참은 게 터진 것이죠
근데 그 조차 거꾸로 세자가 질타를 받았습니다.
숙종은 오히려 세자를 질책을 했고
이내 세자는 자신의 행동을 거꾸로 사과를 해야 했습니다.
그 정도로 당시 세자의 입지가 너무 좁고 약했습니다.
숙종 앞에서 또 노론 신하들 앞에서
그저 죄인의 아들이기에 목숨을 걸고 행동 해야 하는
당시 경종의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안 될 정도입니다.
노론에서 당시 경종에 대해 평가하길
"세자는 때때로 벽을 향하고 앉아서 조그마한 소리로 중얼거려 다른 사람과 대화하는 것처럼 했다.
또 한밤중에 계단과 뜰 사이를 방황하기도 했고 정신도 안정되지 못했으며 지각도 불분명했다.
숙종의 상에도 한 번도 곡소리를 내지 않았으며 까닭 없이 웃기까지 했다."
노론의 악의적인 평가가 담겨 있다고는 하나
세자시절 경종이 어떤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지
또 얼마나 괴로워 했는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
경종을 주제로 한 방송에서는 그를 이렇게 평가했죠
"마치 횟집 수족관에 같혀 있는 생선의 심정일 것이다"
노론은 그런 세자에게 꼬투리를 잡고자 부단히 노력 했지만
극도로 조심하며 아예 말조차 하지 않는 세자를 두고
도무지 빌미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숙종이 1720년 승하 하게 되면서
아슬아슬하게 세자의 지위를 붙잡고 있던
세자가 드디어 왕으로 즉위를 하게 됩니다
숙종의 아들이자 영조의 형인 조선의 20대 임금 경종입니다.
(경종의 친필 글씨)
원래 경종은 어린시절 총명함으로
주위의 기대와 칭찬을 받았던 인물입니다.
특히 글씨를 매우 잘 써서 경종의 어필을 두고
신하들이 앞다투어 글씨를 가지고자 했을 정도였다고 하죠
그런 경종이 즉위 한 후
신하들이 경종에 대해 평가 하길 다음과 같이 전합니다
"주상은 평상시에 말과 웃음이 없어 사람들이 그 마음을 측량할 수가 없었다'
경종은 왕으로 즉위한 후 기록에 따라 실어증이 아닌가
의심이 될 정도로 말 자체를 극도로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아예 감정조차 표정으로 드러내지도 않았습니다.
여전히 세자 시절부터 해온 단 한마디
"유의하겠다" 만 반복할 뿐이었죠.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형식상 왕으로 즉위는 하였지만
세상은 여전히 노론 신하들의 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삼정승, 육조, 비변사, 삼사를 비롯한 각 행정기관,
군사를 움직이는 병권은 물론 유림들, 성균관의 학생들도
전부 노론 사람이었죠 심지어 왕을 모시는 내시, 궁인들도
모두 노론 측에서 심어둔 사람들이었습니다.
경종과 같은 기구 한 가족 사연을 겪은 왕이
조선 시대에 이미 한번 존재 있던 적이 있습니다.
바로 연산군입니다.
어미를 죽인 신하들에게 복수를 했다가
그 신하들이 반정을 일으켜 쫓아낸 왕이죠.
연산군은 어미가 죽을 때 어린이였기에
어미 죽음을 본적이 없음에도 저 지경이 되었습니다
하물며 경종은 자신의 눈앞에서 또 애원했음에도
결국 어미가 처참히 죽는 걸 직접 본 인물입니다
노론은 그런 경종을 예의 주시했고
경종도 그런 노론을 경계했습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노론과 대립하던
소론측의 조중우란 신하가 경종이 즉위하자 상소를 올립니다.
"왕이 된 경종의 친어머니인 장희빈의 명호를 회복하자"
장희빈의 아들 경종이 새로운 왕이 즉위 하였으니
이제 왕의 어머니 명예를 회복해 주자는 뜻입니다.
하지만 곧 노론 신하들과 사헌부는 반발하며
거꾸로 즉각적으로 이를 탄핵하게 됩니다
경종은 이런 노론의 눈치를 보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조중우를 벌하라고 지시하게 됩니다.
그렇게 왕의 명예를 회복하자 주장한 조중우는 끌려가서
모진 고문을 받고 잔인하게 매를 맞아서 죽임을 당합니다.
이걸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 사건으로 심지어 이런 일까지 벌어지게 됩니다.
이번에는 더 나아가 노론 측 신하인 윤지술이 상소를 올립니다.
"경종의 친어머니인 장희빈의 악랄함이 역사에 미흡하게 기록되었다!"
그러니까...
왕의 어머니를 더 악랄한 년으로 확정해야 한다!
대놓고 패드립 하는 상소를 올리는 지경에 이릅니다.
왕이 아닌 일반인도 부모를 욕하는 패드립을 듣게 되면
당연히 누구나 그에 분노하기 마련입니다.
당대 주상인 왕의 어머니를 공개적으로 까며
신하가 왕에게 패드립을 하는 기상천외한 상황이 터진 것이죠
평소 말이 없고 조용한 경종도 이는 더이상 못 참고
윤지술을 유배 보내라고 명령합니다.
근데 또 사헌부를 비롯한 노론 신하들이 극렬히 반대를 합니다
성균관 유생들까지 나서서 이를 반대하며 수업을 거부합니다.
경종은 결국 어머니를 욕 보인 윤지술을 풀어주게 됩니다.
아비인 숙종 시절이었다면 상상조차 못 할 일이죠
숙종의 전매특허인 환국을 일으켜도 전혀 손색 없는 사안입니다
근데 경종은 그런 힘이 없음을 보여준 사건입니다.
그렇게 호구 잡힘을 증명한 경종의 즉위 1년이 지나자
노론은 정말 해선 안되는 짓을 하기에 이릅니다.
"연잉군을 왕세제로 임명해 주소서!"
당시 경종의 나이가 고작 32살이고
비였던 선의 왕후의 나이가 겨우 17살이었습니다.
과거 경종이 세자로 책봉 될 때 노론에서 극렬히 반대를 한
가장 큰 이유는 숙종의 후사가 가능하다였죠
노론 측이 옹립한 왕후인 인현 왕후의 나이가 22살이니
언제든 후사를 볼 수 있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랬던 노론 신하들이 이번에는 정반대의 논리를 주장한 것이죠
17살의 왕후가 멀쩡히 살아 있고 왕의 나이가 32살인데
왕이 지금 당장 후사가 없다.?? 그런 다급한? 이유로
왕의 동생인 연잉군을 왕세제로 임명 하라 한 것입니다.
일설에는 경종이 고자여서 후사가 없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당연히 공식화 된 내용이 아닙니다.
감히 살아있는 왕에게 후계자 문제를 신하가 거론하는 것 자체가
사실상 역모에 가까운 행동입니다.
심지어 이런 엄청난 주장을 한 시점이
경종이 왕으로 즉위 한지 고작 1년 만에 벌어진 일입니다.
그래요 딱 즉위 1년 만의 일입니다.
한 줌도 안되는 소수 세력인 소론만 경종을 지지할 뿐이고
권력을 모두 장악한 노론이 숙종의 또 다른 아들 연잉군(훗날의 영조)을 밀던 시기입니다.
경종이 왕으로 즉위 한지 고작 1년만에
노론 신하들이 왕에게 너와 너의 자식을 인정 할 수 없으니
우리가 밀고 있는 왕자 연잉군을 다음 후계자인 왕세제로 임명하라
공개적으로 요청한 사건입니다.
그리고 경종은 이를 "승낙" 합니다.
경종을 모시던 소론 신하들이 놀라서 난리가 납니다.
왕의 후사가 없으면 신하의 본분은 군왕의 건강을 빌고
왕에게 조속히 후사를 얻으시라 충언을 해야 할 뿐이다.
"신하가 어찌 감히 젊은 왕을 능멸하여 동생을 후계로 세우라 하냐!!"
라며 눈물 흘리며 읍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경종은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진 것인지
그렇게 반발하는 소론을 조용히 물리칩니다.
말도 없고 표정도 없는 왕, 유순한 왕 경종이
또 그냥 순순히 노론의 의견을 승낙을 한 것입니다.
유약한 경종이 노론의 겁박에 결국 굴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아니면 세자시절 극심한 스트레스로 평소 병약했던 경종인지라
정말 후사가 불가능했는지도 모릅니다.
경종은 이미 스스로 연잉군을 후계로 여겼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조선 건국 이래 왕자의 난을 일으킨 이방원을 제외하면
전례가 없는 왕의 동생을 다음 후계자 삼는 것을 경종이 허락한 것입니다.
더 기가 막히는 일은 이런 왕세제 임명을 두고
청나라에 알리러 간 노론 신하들의 작태에서 일어납니다
청나라에서는 이 소식을 듣고 당연히
"님들아.. 이게 말이 되는 주장임?" 하며 의아하게 여기게 됩니다.
그때 사신으로 간 노론 신하가 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왕이 '발기불능' 이라 자손을 둘 수가 없다"
사실상 이 발언 하나로 집안을 모두 멸족을 시켜도
부족할 정도의 참람하고 무엄한 언사입니다.
신하가 감히 입에 담아선 안될 내용으로
군주인 경종을 공개적으로 능멸한 발언이죠
그런 짓을 무려 청나라에 외교 사절로 가서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매번 순순히 노론에게 숙였던 경종이었습니다
그 나약한 모습에 노론 신하들도 모종의 자신감을 얻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다 결국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진짜로 선을 넘는 무리한 주장을 하게 됩니다.
"왕 세제에게 대리청정을 시키소서"
이게 연잉군을 왕세제로 임명한 지 2달 만에 일어난 일이자
왕세제 책봉식이 거행 된지 고작 보름만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황당하게도 경종은 이를 "승낙" 합니다.
!!!!!!!!!!!!!!!!!!!!! ???????????????
여전히 말이 없고 무표정하며 어눌하고 나약한 왕입니다.
대체 무슨 생각을 가진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엄청난 요구를 그냥 너무 쉽게 승낙해 버린 것이죠
근데 이건 신하가 왕에게 너 더이상 왕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니
후계 문제를 정하는 여부의 정도를 떠나서
이미 조선 왕조에서는 아예 말이 안되는 것입니다.
조선이 유교의 "충효사상" 을 근본으로 삼고
"왕정 체제" 를 유지하는 국가인 이상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조선의 대리 청정은 오직 왕이 충성심을 시험하는 용도
그 이상의 다른 의미가 없습니다.
현재의 왕이 신하들에게 대리청정을 하겠다고 하면
이는 절대 안된다고 하는게 정답입니다.
신하들이 극구 말리며 안됩니다! 라고 매일 비는 것이
정해진 예법이자 행동입니다.
대부분 왕권과 신권이 다툴 때 왕이 심술을 부리며
신하들 고생하라고 연기하는 용도거든요
유교의 충효를 근본으로 삼는 조선이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왕이 대리청정을 언급했을 때
"아니되옵니다" 말고는 다른 대답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죠.
물론 진짜도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 세종대왕에게 양위한 적이 있고
세종이 아들 문종에게 대리청정을 시킨 적이 있으며
당장 경종의 아비인 숙종이 그런 적이 있습니다.
왕권이 지극히 강력한 가운데 늙은 군주가 대권을 가지면서
젊은 아들에게 업무를 분담시켜 함께하는 경우죠.
그런데 경종은 32세의 젊은 왕으로
이런 사례도 아닐 뿐더러 이 경우 정해진 정답이 있음에도
심지어 대리청정을 승낙하는 기막힌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아무리 힘이 없는 소론이라고는 하지만
이는 용납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닙니다.
조선 건국 이래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발칵 뒤집어지며 난리가 납니다
소론 신하들이 맹렬하게 노론을 탄핵 했죠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노론 신하들은
그제서야 "아니되옵니다"로 선회했습니다.
정해진 예법 그대로 왕에게
다시 대리 청정 승낙을 거두어 줄것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또 무슨 생각인지
정말 알 수 없는 경종은 또 조용히 "승낙을 철회" 합니다.
근데 이후 상당히 일이 흥미롭게 진행 됩니다.
얼마 뒤 경종이 뜬금없이 연잉군에게 "대리청정"을 시키겠다
다시 대리청정을 하라 선언한 것이죠
당연히 이번에는 소론, 노론, 연잉군
모두가 나와서 교과서적인 정답을 외쳤습니다.
절대 안되는 일이라고 말리며 모두가 반대를 합니다
그럼에도 경종이 대리청정의 뜻을 끝까지 거두질 않습니다.
???뭐지
그리고 여기에 노론이 크게 낚이게 됩니다. 파닥 파닥~
그래... "경종이 진짜로 대리청정을 시키고 싶어해서 저러는 것이다!"
이게 왠 떡이냐? 여기며 착각을 한 노론은
소론의 반대 상소가 올라오면 승정원을 통해 모두 물리쳐
대리청정 철회 요청 상소문을 숨겨 버리기까지 합니다.
그렇게 조용히 대리청정이 확정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밤 소론 측 신하 조태구가
왕과의 독대를 요청하며 입궁하게 됩니다.
당연히 대리청정에 대한 말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왕의 비서실인 승정원을 장악한 노론 신하 홍계적이
이 사실을 알고 놀라서 알현을 막아보려 했죠
하지만 세자시절 부터 모셔온 내관이 조태구가 궁에 왔음을
왕에게 알려서 결국 독대가 성사가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조태구는 통곡하면서
노론이 왕을 능멸하는 참람한 현 상황을 설명하고
왕의 자리는 결코 사사로운 자리가 아니다!
대리청정을 해선 안된다고 간언을 하게 됩니다
그날 밤 경종은 "대리청정 명령을 철회" 합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노론의 4대신을 비롯해
육조 관원들이 크게 놀라서 난리가 납니다.
그 당시 모습을 마치 변란이 터진 것과 같았다고 하는데
뭔가 일이 잘 못 돌아가고 있음을 크게 느낀
노론 신하들이 야밤에 궁궐로 죄다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납작 엎드려
그제서야 때늦은 "대리청정 반대"를 재차 주장했지만
그렇게 왕의 대리청정 명령에 반대를 하지 않고
거꾸로 이를 이용하려고 시도한 노론은 빼박 역적으로 확정됩니다.
노론은 대리 청정을 실현 시킨 것도 아니면서
이를 반대하기는 커녕 부추겨 악의적으로 이용한
사실상 불충한 역심만 시인하는 최악의 상황에 떨어져 버린 것이죠
다음 날 이대로 죽을 수 없다 여긴 노론 신하들이
조정에 나와 밤에 독대한 조태구가 죄가 있다,
승정원이 막았는데 어찌 들어 온 것이냐?
은밀하게 환관과 교통 해 오며 결탁했다 절차가 잘 못되었다 등
조태구를 벌해야 한다 등등의 주장을 마구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이제까지 조정에서 신하들을 대할 때
항상 조용했고 실어증 환자 마냥 말 없이 앉아 있던 군주로
항상 어눌한 말투에 조용하고 나약하게 그저 순응만 하던 경종이
갑자기 대노하며 일갈을 합니다
"결탁이니 교통이니 하는 따위의 말을 지껄이다니 무엄하다!!"
마치 유주얼서스펙트 반전처럼
나약하고 병약한 왕으로 말조차 없던 경종이...
노론의 무엄하고 참람한 무례를
매번 순응하고 그저 받아주던 그 경종이...
노론을 상대할 모든 명분과 준비를 갖추게 되자마자
갑자기 급 반전을 하며 모습을 드러내 돌변해 버린 것이죠.
경종 실록에는 이 당시의 모습을
"하룻밤 사이에 건단(乾斷)을 크게 휘둘렀다’ 라고 기록 합니다
왕을 하늘에 빗대어 군주가 결단을 내렸단 말이죠
곧이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꼭 미리 준비 된 것 처럼
목호룡의 고변이라는 노론이 역모를 꾀한다는 상소가 올라 옵니다.
노론이 경종을 삼급수 암살로서 시해하려 했다!
(삼급수란 노론 세력이 경종을 시해하기 위해 구상했다고 하는 세 가지 방법으로,
대급수(大急手)·소급수(小急手)·평지수(平地手)를 말합니다.
대급수는 칼로 시해하는 방법이고, 소급수는 독살,, 평지수는 전지(傳旨)를 위조하여 반정을 일으키는 방법입니다)
노론 신하들은 즉시 가당치도 않다고
놀라서 설설 기면서 살려 달라고 읍소를 하였지만
경종은 그 상소를 오히려 칭찬하면서
"생각한 바를 솔직하게 올린 것을 깊이 받아들인다! " 라고 선언하고
조선이 왕의 나라임을 마치 증명이라도 하듯
노론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돌입합니다.
경종은 마치 그동안의 오랜 한을 풀기라도 하듯
노론에 대한 잔인하고 완벽한 숙청을 감행했습니다.
노론의 영수를 비롯해 노론 4대신을 처형하고
비변사, 육조, 삼사에 있는 노론 일파를 일거에 색출하여
전부 역모로 처형시킵니다
수 많은 노론 명문가들이 줄줄이 엮여서 형장으로 끌려갔죠
과거 경종의 어미 장희빈에 대해 패드립을 날렸으나
노론의 반대로 유배에서 풀어 준 윤지술은
이번에는 역모라는 엄청난 죄로 일족이 멸족됩니다.
이 당시 노론 4대신을 비롯해 노론 신하 60명이 역모로 처형되고
160명 이상이 유배형을 받으며 줄줄이 엮어서 전부 숙청이 되었습니다.
이를 신임옥사라 부릅니다
참으로 신기한게 경종은 세자 시절 부터 즉위 한 후에도
항상 병약함을 트레이드 마크로 달고 살았습니다.
병에 걸려 앓아 누웠다는 기록만 3개월에 한번씩 나올 정도로
언제나 매번 병에 걸려 살았던 왕이죠
근데 이 노론 대숙청의 기간에는
단 한번도 아프다. 병에 걸렸다는 기록이 안나옵니다.
또한 하룻밤 사이에 삼사와 승정원, 좌우의정등 주요 관직을 모조리 갈아치워 버립니다.
이때 경종의 갑작스런 돌변과 숙청 사건을 두고
유약한 경종을 소론이 조종했다는 주장도 일부 있지만,
한 가지 잊은 중요한 사실이 있죠.
경종이 누구의 아들인지 말입니다.
경종의 아버지는 조선 최고의 카리스마를 가진 왕이자
환국으로 떡 먹듯이 신하들을 죽이고 유배 보내버리는 것으로 유명한 숙종이고
경종의 어머니는 조선에서 가장 유명한
궁중 암투 싸움의 주인공인 장희빈입니다.
언제나 조용하고 말이 없으며 유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경종은
사실은 그 무서운 분노를 참고 숨기고 있던 사람이죠.
세자 시절 자신을 노리던 세력들...
즉위 하자 마자 자신을 모욕하고 능멸 하던 세력들...
모두 그저 묵묵히 참고 참고 견디다
절호의 기회가 오자 그것을 놓치지 않고
한 번에 덫을 놓아 싹쓸어 버린 것입니다.
이 사건에 대해 당시의 사관은 다음과 같이 평가 합니다
"왕께서는 평소에 지나치게 얌전하셔서 흉악한 무리들이 전하를 업신여겼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하늘과 땅을 뒤집듯 피의 숙청을 하시니 전하께서 본성을 숨기고 계셨음을 이제야 알겠다"
그리고 마지막 중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왕세제 연잉군의 존재입니다.
연잉군은 노론이 강력하게 밀던 왕자이자
차기 후계자 왕세제로 옹립된 인물입니다.
또한 이 모든 숙청의 단초가 된 대리청정의 당사자입니다.
당연히 연잉군은 역모의 수괴로 고발되기까지 했습니다
연잉군은 그때마다
"저 같은 죄인이 어찌 세제가 됩니까 폐해 달라"고 간청했죠...
하지만 경종은 절대 연잉군을 건들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보호했습니다.
노론의 숙청이 한창 진행되며 소론 강경파가 연잉군의 죄를 탄핵했죠
근데 경종이 여기서 다시 한 번 극대노 합니다.
"한번만 더 연잉군을 역모에 엮으면 소론 너네도 끝장이다"
라고 소론 신하들에게 일갈을 했죠
소론도 너무 놀라서 연잉군이 경종의 '역린'임을 알고
이후 조용히 닥치게 됩니다.
이유는 경종과 연잉군 단 두명은
유일하게 남겨진 효종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효종혈맥 또는 삼종혈맥(효종-현종-숙종) 으로 지칭 되는 이 혈통은
인조반정 이후 성립된 조선 후기 왕실에서
가장 중요한 가장 정통성 있는 혈통이됩니다.
이 혈통이기 때문에 왕이 정통성을 가지는 것이고
이 혈통이기에 왕이 힘을 지니는 이유와 근거가 됩니다.
영조가 사도세자의 아들 정조를 끝까지 지킨 이유도
바로 이 귀중한 혈통이기 때문입니다.
경종이 후사가 없는 상황에서 만약 연잉군이 죽게 된다면
효종의 후손은 끊어짐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존재입니다
훗날 영조가 되는 연잉군과 형인 경종은
조선 후기 붕당 정치에서 매우 독특한 애증의 관계죠
영조는 당시 자신을 지켜준 경종을 두고
말년에 매번 황형을 그리워하며 슬퍼했다고 합니다.
경종이 바로 그 왕세제 연잉군이 올린
간장 게장과 감을 먹고 어느 날 급사를 하였다는 경종 독살설은
사학계에서는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경종은 심성이 나약하고 여린 이미지로
비쳐지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비대하고, 어릴때부터 살이 쪘었고,
신하들과 조회를 하면서도
소변을 못 참는 당뇨증세와 각종 소화기 질환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또한, 실록과 매일 매일 작성하는 승정원 일기에도 연잉군이
간장게장과 단감을 바쳤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 독살설은 이인좌의 난때 반란군들이 주로 퍼트린 흑색선전에서 기인하였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