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성 고운사 여행
두레박 ・ 10시간 전
여행이 일상이라는 말을 서슴치 않는 나이지만, 사진을 찍는 데 시간을 많이 쓰는 관계로 주로 혼자 계획하고 단촐하게 다니는 여행에 익숙하다.
그런데, 이번에는 14명dl 함께 의성 산불로 많은 전각이 소실된 의성 고운사를 비롯하여 점곡의 사촌 마을, 돌아오는 길에 임청각을 돌아보고, 청량산의 청량사를 경유하여 주지스님과의 차담도 나누며 고운사를 만나고 난 후의 무거운 마음을 풀어보자는 여행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일을 맡게 되어 잘 할 수 있을까 염려되기도 한다.
출발 일 주일 전, 당일 여행으로는 좀 빡빡하게 일정을 잡다 보니 시행 착오는 없어야겠다는생각에 미리 남편과 둘이서 정해진 코스와 시간을 맞추어서 여행을 해 보기로 하고, 5월 30일 오전 7시에 집을 출발하여 의성으로 향한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다시 출발하니 식사 시간을 빼면 예상했던 대로 고운사까지 3시간이 소요되었다. ok~
다음은 안동 김씨과 풍산 류씨의 집성촌인 사촌 마을인데, 사촌 마을은 나로서는 초행이어서 오늘 사전 답사를 하게 된 주 이유가 사촌 마을 때문이다.
별다른 특별한 자료가 수집되지 않아서 직접 가 보는 수 밖에 없다는 판단에 꽤 먼 거리를 나서게 되었는데 역시나 만취당 외에는 일반적인 한옥 마을의 이미지를 벗어나기가 힘들기는 하다.
빠듯한 일정으로 들고 나는 시간만도 40분 정도는 소요되어서 *표를 찍어 놓는다.
임청각(보물) 전경
군자정(보물)
다음 목적지는 고성 이씨 종택이며, 임시 정부 초대 국무령 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 임청각으로 향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500년이 넘는 99칸짜리 고택이라는 의미도 크지만, 9명의 독립 운동가를 배출하였고, 일제 강점기 때 독립 운동의 기를 꺾기 위해서, 일제가 50 여 채의 건물을 허물고 고택 앞마당을 가로질러 철길을 놓았는데, 근 80년만인 올 2026년 4월에 복원 공사가 마무리되어, 철길이 제거되고 방음판이 제거되는 등 군자정에서 낙동강을 바라볼 수 있게끔 시야가 트이며 원래의 모습을 되찾게 되어서 잠시 들러 아픈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 옆에 자리한 국보 법흥사지7층전탑도 찾아볼 예정이다.
법흥사지7층전탑(국보) 철길을 달리는 기차의 진동으로 1층 기단부가 많이 훼손되었으며, 시멘트로 훼손된 부분을 보수해 놓았다.
소요 시간은 사촌 마을에서 30분 정도, 의성에서 점심 식사 후에 츨빌한디면 근 40분은 소요되겠다. 뭐 여기까지도 ok~
그런데, 임청각 옆의 한옥 까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며 생각해 보니 점심을 못먹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샌드위치 2개를 사왔던 터라 커피와 함께 점심으로 대신하고 청량사로 향한다.
시간이 어찌 소요될지를 물라 미리 청량사 주지이신 두현 스님께 전화는 드리지는 않았다.
계시면 뵙고 미리 감사 인사를 드릴 수 있으면 좋고, 스님께서 출타 중이시면 전화로 인사드리고 돌아오면 될 것 같아서 이다. 청량사까지도 예상했던 대로 40분 정도 소요되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도착하니 마침 두현 스님께서는 경내에 계시어 뵐 수가 있어 흔쾌히 호탕하게 차담 시간을 내어 주신 후의에 깊이 감사 인사를 드리며 잠시 대화를 나누고는 일 주일 뒤에 다시 뵙기로 하고 청량사를 나선다.
사전 답사를 해 보니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 냉커피 한 잔 마실 시간도 없었다.
어느 한 코스를 빼야 하는데... 하며 고민을 하는데 의성의 현숙이로부터 전화가 왔다.
고운사과 사촌 마을까지 문화해설사께서 안내를 해주시기로 약속이 되었다 하여 사촌 마을을 빼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마도 임청각을 건너가야 할 듯하다.
2026.6월
2025년 11월
2025.11월
드디어 6월 6일 오전 7시, 갑작스런 사정이 생긴 대장 문제씨와 정숙이가 함께 하지 못하고 양재역을 출발하여 의성 고운사로 향한다.
십 리나 되는 산봉우리를 돌고 돌아
길 또한 아득한데
선인(仙人)이 간 자취
구름 가에 서려 있네
구름 타고 오른다는 뜻의 등운산(騰雲山), 그 이름에 걸맞게 절 이름도 고운사(高雲寺)...
경상북도 의성군 등에 위치한 천년고찰 고운사는 대한불교 조걔종 16교구의 본사이지만, 산세가 깊어서 덜 알려진 덕분에 고즈녁한 아름다운 사찰로 우리 옆에 남아 있는데, 2025년 3월22일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인하여 대웅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전각이 모두 소실되었다.
2025.11월 조계문(일주문)
2026년 6월
원래의 이름은 고운사 (高雲寺)였으나, 신라 말 최치원이 중건하면서 이름을 고운사(孤雲寺)로 바꾸었다.
전하는 말로는 고운 최치원이 여지, 여사라는 두 스님과 함께 이곳에 와서 가허루와 우화루라는 두 개의 누각을 지었는데, 이 때 高雲寺를 최치원의 호를 따서 孤雲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가허루는 훗날 가운루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가 이번 산불로 인해 완전히 소실되었다.
불타기 전의 가운루
2025. 11월 소실된 가운루, 우화루, 극락전 모습
국내 유일의 왕실 법당이었던 연수전의 전소된 모습
2025년 11월
2026년 6월
사람의 힘으로는 대항할 수 없는 대참사를 겪은 고운사를 참배하고 그 참상을 바라보고 고통을 나눠보려는 것이 이번 고운사 탐방의 목적이다.
절 입구를 지나서 아름드리 송림이 양쪽 길 가에서 호위를 하듯이 서 있는 길을 걸어 들어가면서 보니 소나무 몸통에는 화마에 얽킨 시커먼 자국이 그냥 남아 있으나 고고한 자태는 흐트러짐이 없다.
그 모습에 가슴이 저미는 듯 아파오는데, 그 소나무들은 꿋꿋이 서서 땅 밑으로부터 후손을 자라게 하느라 여념이 없다고 한다. 비록 불에 탓더라도 뿌리는 살아 있어서 차츰차츰 위쪽부터 말라 죽을지언정 그들은 후손이 자라날 때까지 버티고 서 있는단다. 그것이 자연 재생의 섭리이자 순리라고 한다.
그래서 고운사측은 불에 탄 나무들을 자르고 새로 심지 않고 불탄 그대로 두면서 자연적으로 숲이 다시 살아날 때를 기다리기로 했다고 한디.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11월에 와서 봤을 때보다는 화재의 잔재가 정비가 잘 되었다. 불탄 나무 아래도 새로운 잡목과 풀들이 자라나 을씨년스럽던 흑갈색 세상에 초록의 옷이 입혀지고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희망을 보여주고 있어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산비탈을 살펴 보니 야생화들도 앞다투어 피어나고 있다.
이리도 반가울 수가....!
꽃이 피는 것은
꽃의 힘이 아니라
뿌리의 힘이다
라는 말이 있듯이, 자연에서나 우리의 삶에서나 보이지 않는 뿌리는 어떠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심지어는 알아주는 이 없어도 물과 양분을 묵묵히 빨아 들이고 받쳐 주는 구실을 끝까지 해 내기에 이 지구가 존재하고 우리 인간들이 터전을 잃지 않고 사는구나 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된다.
마침 초파일이 지난 지 얼마되지 않아 서 오색의 초파일등이 어두운 마음에 환한 불을 밝혀 주고 있다.
공중에 달려 있는 등에 밝은 햇빛이 들어 가니 오색등이 켜지고, 그 그림자가 땅을 비추니 땅에서 또한번 등불이 피어나는... 가히 특이하고 화려한 아름다움이 가슴 속에 환희를 더해 준다. 아마도 슬픔이 있는 자리에 피어나니 더더욱 아름다운가 보다.
아름답고 환한 등빛 처럼 산불 피해를 입은 모든 산야와 주민들 , 그리고 고운사가 하루빨리 극복하고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기원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고운사를 돌아나와 사촌마을로 향한다.
사촌마을로 들어서는 길목의 아름다운 벽화들
만취당(晩翠堂)-보물
시촌 마을은 의성 점곡 마을에 있는 한옥마을로 안동 김씨와 풍산 류씨의 집성촌이다.
그 곳은 퇴계 이황의 제자인 김사원이 학문을 연구하고 제자를 가르치기 위해 세운 건물 만취당(晩翠堂)이 있다.
만취당은 '늦을 만(晩), 푸를 취(翠), 집 당(堂)'의 "늘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집"이라는 뜻으로 김사원의 호(號)가 만취였기에 건물 이름도 만취당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만취당은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간직하고있는 귀중한 유물(보물)로, 후대에 증축되면서 T자형 평면을 갖게 되었으며, 16세기 사대부 가의 생활과 선비 문화를 잘 보여 주는 문화 유산으로 평가받 고 있다.
유성룡의 부인이 시집갈 때 타고 갔던 가마가 대들보 위에 얹혀 있다.
천장 대들보 위에는 서애 유성룡의 부인이 시집갈 때 타고 갔던 가마의 받침이 보관되어 있다.
'晩翠'는 겨울이 와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처럼, 선비는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자신의 학문과 올바른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만취당 현판은 명필 한석봉의 친필인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해설사님의 점곡 마을과 만취당, 김사원 선생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잘 듣고는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얘약해 놓은 예전 식당에서 아주 훌륭하고 맛있는 한정식으로 즐거움을 더하고 있는데, 현숙이의 부군께서 바쁜 시간을 쪼개어 인사를 나오시는 각별한 접대에 친구들 모두 크게 감사하였다.
식사를 끝내고 나니 시간이 촉박해져서 임청각 답사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청량사로 향한다.
청량산 청량사
청량사는 경북 봉화 청량산에 위치하였으며,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고, 송광사16국사의 끝스님인 법장 고봉선사가 중창했다.
청량산의 12 봉우리(육육봉)가 연꽃처럼 벌어진 가운데에 청량사가 위치하고 있어 특이한 아름다운 형세를 보여주고 있다.
퇴계 이황이 청량산을 매우 사랑하여 자주 찾았다고 하며, 스스로 '청량산인'이라고 부르며 청량정사를 지어 그곳에 오래 머물기도 하였는데. 도산서원을 지을 때에도 이곳에 지으려고 하였으나 산세가 너무 험하여 포기했다고 할 정도로 청량산을 사랑하였다고 한다.
또, 명필 김생과 고운 최치원도 이 산에 와서 수도했다고 한다.
청량사 대웅전인 유리보전
청량사에는 약사여래불(지불-종이로 만든 불상)을 모신 유리보전(琉璃寶殿)이 중심 법당이며, 현판은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에 머물 때 쓴 친필이라고 한다.
유리보전에 모셔진 약사여래는 중생의 병고와 고통을 치유하는 부처님이다. 따라서, 청량사에는 건강 회복, 마음 치유, 가족의 안녕을 기원하는 불자들의 발길이 많다고 한다.
응진전에는 공민왕과 노국공주상이 16나한과 함께 모셔져 있다.
유리보전에서 바라 본 세뿔소나무(세뿔 송아지 무덤)
유리보전 앞에는 가지가 세 갈래로 뻗은 늘씬하고 멋드러진 노송이 한 그루가 있는데,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봉화군 북곡리에 남민이라는 사람의 집에 뿔이 셋 난 송아지가 태어났다. 그 송아지는 몇 달 새 에 낙타만큼 커져서 힘이 셀 뿐만 아니라 매우 사나왔다. 연대사(옛날에 청량사 자리에 있던 절이라고 함) 주지가 그 집에 시주를 부탁해서 송아지를 데려와 짐을 나르게 했는데 송아지는 매우 순하게 일을 해냈다. 덕분에 이 가파른 산등성이에 대역사를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이 송아지가 힘을 다했는지 어느 날 갑자기 죽어서 절 앞에 묻으니 바로 그 자리에 가지가 셋 난 소나무가 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소나무를 '세뿔 송아지 무덤'이라고도 부른다.
이 가파른 산등성이에 절을 짓는 일이 얼마나 고달팠는지를 이야기해 주고 있다.
청량사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는데, 하나는 일주문에서 시작하는 구불구불하면서도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는 길과, 또 하나는 입석에서 오르는 오솔길로, 소요 시간은 비슷하나 걷는 길이 편하고 바라 보이는 풍경도 수려하고 아기자기해서 나는 늘 입석에서 오르는 길을 선호한다.
이번에도 그렇게 할 예정이었으나, 발목이 시원치 않은 친구가 있어서 스님께서 차량 봉사를 해 주신다고 하여 고맙게도 힘도 아끼고 시간도 절약하며 절까지 오를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스님께서 몸소 마중을 나와 주시고 계셔서 얼마나 고맙고 감사하든지.
차에서 내린 친구들은 단박에 청량산의 풍광에 빨려 들어 감탄이 여기저기서 터지고 사진 찍느라고 여념이 없다.
스님께 인사드리고 나니 스님께 예정에 없던 일정이 생겨서 절 구경은 나중에 하고 우선 차담부터 들어가기로 한다.
그런 와중에도 두현 스님께서는 친구들을 모아 놓고 청량산과 청량사에 대한 설명을 자상히 해 주셨다.
또한, 봉화에 사는 송홍락 동기가 달려와서 합류하니 모임이 더욱 묵직해지는 느낌이다.
보통 주지 스님 하면 서슬이 퍼렇고 어려운 선입견을 갖게 되는데, 청량사 주지 스님은 참으로 친절하고 다정한 느낌이 든다. 침검당에 들어서니 14명의 찻상을 아주 간결하고 깔끔하게도 준비해 놓으신 것이 스님의 성품이 그대로 보이는 듯하다.
차를 다 따르고 나니 스님의 말씀이 시작되고 우리들의 질문도 받으시는데,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마음 공부에 관하여 말씀해 주신다.
대부분의 친구들이 차담에 익숙하지 않고 경험이 없는지라 나부터도 듣는 자세로 시종일관하였는데 정윤용 동기가 질문도 많이 드리고 답변도 나름대로 잘 하더니 스님의 말씀도 잘 기억하고 요악해 주어서 그 내용을 옮겨 본다.
"윤회에 관한 말씀 중에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비록 다른 사람이지만 시간은 계속 이어져서 어제 지은 업보 만큼은 오늘의 나에게 고스란히 이어져 있다는 말씀과 이렇게 끊임없이 변하면서도 이어지는 것이 시간이고 삶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육신이 무너져서 죽음에 이르더라도 어제에서 오늘로 이어지듯이 이번 생의 마지막 찰나의 에너지가 다음 생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래서 선업을 쌓으면 그 에너지가 다음 생에도 이어지는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그리고, '화'를 어찌 다스려야 하느지에 대한 말씀도 해 주셨다.
'화가 치밀어오르는 것은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므로 화가 치밀어 오르는 찰나에 곧바로 그 화를 바라보라고 하신다. 그러면 관조의 상태로 들어가 평정을 찾을 수 있다'고 하신다."
다른 여러 말씀도 해 주셨지만 들을 때는 받아들여지고 이해가 되었는데 돌이켜 기억해 내려고 하니 잘 떠오르질 않는다.
바쁘신 중에서 자상이 친절하게 응대해 주시고 말씀해 주시는 덕분에 이번 청량사 참배는 참으로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될 것 같다.
우리 일행은 두윤 스님과 작별 인사를 하고는 절 구경에 나선다.
유리보전에 들어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유리보전 앞에서 내려다 보는 청량산의 가슴이 뻥 뚫리는 장쾌한 아름다움은 고운사에서의 화마의 상처가 주었던 우울함을 말끔히 씼어내 주었다.
하산길은 차량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입석으로 내려가겠노라고 스님께 말씀드리고,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스님과 헤어진다.
청량사 응진전(공민왕과 노국공주, 16나한상이 있다.)
입석으로 향하는 길에 어풍대에서 바라다 보는 청량사의 전경을 바라보는 일은 청량사 답사의 하이라이트인데 안타깝게도 화숙이만 함게 보고 다른 친구들은 아랫길로 갔다.
뒤에 현숙이의 말이
'그 길은 신의 한 수 였어'
라고 말할 정도로 입석으로 가는 오솔길이 인상 깊고 좋았다고 한다.
참으로 다행이다. 아마도 가을에 오면 그 화려하고 아름다운 길에 더욱 반하게 되리라......!
발목이 불편한 사람을 살피지 못한 것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현숙이의 말로 불편함이 조금은 씻어져 내려갔다.
입석으로 가는 오솔길
갑자기 마련한 당일 여행으로 빠듯하게 시간을 쓰게 되었지만 나름대로 잘 마친 것 같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는 여러 말보다 각자 오늘 있었던 차담 내용을 더듬고 청량사를 회상하는 시간이 좋을 듯하여 진행자로서의 의례적인 멘트도 하지 않고 침묵하며 어둑어둑해지는 창밖을 바라본다.
잠시 휴게소에 들러서 동기 정희가 출발 시간에 지각했다고 우동 턱을 내는 덕분에 맛있는 우동으로 저녁까지 해결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여러 가지로 감사한 은총의 하루였다.
"인연은 억지로 만들 수 없고, 공덕은 헛되이 사라지지 않는다"
라는 불가의 말씀으로 고운사 탐방기를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