太虎宮 tài hǔ gōng
* 주소: 山东省栖霞市迎宾路
* 전화번호 : 0535)5200799
* 입장료 : 45위엔->30위엔
* 교통 : 아래 "모씨장원" 글 참고.
* 가는 방법 추가 :
치사의 모씨장원에서 택시를 이용하시는 게 가장 빠르고 편리합니다.
모씨장원->태호궁 (기본요금 택시비 5위엔)
태호궁->치샤 장거리 버스정류장 (택시비 10위엔 내외)
* 개인적인 감상 :
매표소와 입장권에는 45위엔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로 30위엔을 내고 들어갔습니다.
개인적으로 흥정을 시도했던 것은 아니고, 매표소 직원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할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반응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30위엔도 좀 아깝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정문은 道자를 흰 대리석으로 형상화한 건축물로 상당히 근사합니다.
(정문에서 사진만 찍어보시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_-;;;)
내부로 들어가면 전형적인 중국의 사원 건축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주요건물 하나와 양 옆으로 배치된 보조건축물 둘로 건축군이 있고
뒤로 계속 진입해 들어가면 역시 같은 구조의 건축군이 있는 식입니다.
불교사원과 비슷한 구조인데 탑이 있을 자리에 탑 모양의 금속향로가 놓여있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사원 내부에는 도교의 여러 진인과 옥황상제 등의 상이 모셔져있고 제단과 제물이 있습니다.
무협지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구처기"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텐데요,
중국 도교의 한 지파인 전진교의 종파인 용문파의 창시자입니다.
(무협지 안에서는 대체로 음흉한 밀교의 수장으로 묘사되어 있지요. ^^)
태호궁은 구처기가 세운 도교사원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구처기를 주존으로 왕상월, 이지상을 협시로 모신 도당이 중간에 있더군요.
지금의 모습은 평신도는 거의 보이지 않고 그저 관광지가 되어버린 듯 싶구요.
도사들이 묵는 숙소도 있고(우연히 길을 잃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_-;;)
도교사원인 것은 맞는데... 뭔가 좀 이상한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가본 다른 도관과는 다르게... 도사 수가 신도 수보다 많은 것 같았어요.
(평일 낮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좀 그랬습니다. -_-;;;)
도사에게 뭘 좀 물어보려고 하면 거대한 향을 사라고 권유하는 것도 상당히 성가셨습니다.
"내가 도교 신자도 아닌데 향을 왜 사냐"고 해도 절대 굴하지 않고 계속 권유합니다.
무료라고 말하지만 기부금을 받아내려는 것 같고 전혀 분향을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원래의 본관사원 뒤에 아주 거대한 건축물이 있더군요.(멀리서도 보입니다.)
흥미가 생겨서 올라가봤더니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내부에 벽화를 그리는 중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3~4층 건물 높이는 될만한 엄청난 크기의 신선상(정확히 뭔지 모르겠습니다)이 있었구요.
완공되고 나면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 참 궁금한데 갔다오신 분이 알려주심 좋겠네요.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다시 안 갈 거구요, 다른 분들께도 그리 권하고 싶지가 않아요.
모씨장원에 갔다가 나와서 오랜만에 교외에 나왔는데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들른 곳입니다.
그럼에도 중국의 도교사원에 가본적이 없는 분이라면 흥미를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에게 중국의 도교문화를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교육적인 차원에서 가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각각의 사당 입구에 중국어-영어로 병기된 안내판이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 관련내용
개요: 중국 도교문화의 중요한 발상지 중의 하나. 서하시 경내의 공산(公山) 밑에 자리잡고 있다.
구처기 丘處機 (1148-1227) : 자 통밀(通密). 호 장춘자(長春子). 일명 장춘진인(長春眞人). 서하 북쪽 교외 빈도리(濱都里) 마을이 고향이며 1227년 베이징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도교(道敎)의 한 파인 전진교(全眞敎)의 개조(開祖) 왕중양(王重陽)의 가르침으로 학문이 깊어져, 전진교 7진인(眞人) 중 하나가 되었으며 전진교의 한 개 종파인 용문파(龍門派)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정치적 수완이 탁월하여 금나라와 송나라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사태를 주시하다가 원나라에 협력했다. 1191년에 고향으로 귀향해 태허궁의 전신인 빈도궁을 세웠는데 당시 금나라 금장종(金章宗)황제가 "태허관"이란 편액을 하사했다. 1207년에는 원나라 귀비가 구처기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6천권의 도교 경전을 보내주기도 했다.
1222년에 서아시아 원정 중의 징기스칸의 초청을 받아 72세의 고령으로 제자인 이지상 등과 함께 멀리 서역까지 여행을 하여 징기스칸을 만난다.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징기스칸을 만나고, 그곳에서 불로장수의 비결을 묻는 징기스칸에게 전진교의 가르침을 설명한다. 징기스칸은 이에 보답하여 장춘진인에게 몽골 제국의 점령지 이디서라도 전진교를 보호하는 특혜를 베풀어 준다. 이를 바탕으로 전진교는 원나라 때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저작으로는 [대단직지(大丹直指)], [섭생소식논(攝生消息論)]과 [명도집(鳴道集) 등이 있다. 제자 이지상이 정리한 장춘진인서유기(長春真人西遊記) 및 현풍경회록은 서역 여행 때의 기록이고, 일행이 거쳐간 당시의 몽골고원 및 중앙아시아에 대한 상당히 귀중한 자료로 현재에 내려오고 있다.
새롭게 보수공사를 마친 수 십채의 사원건물 안에는 많은 도사들이 거주하며 도학을 공부하고 있다. 다양한 법사도 진행 중에 있었으며 신도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
* 참고자료
위키피디아, 브리태니커, 두산동아 백과사전의 "구처기"항목
http://blog.daum.net/fishman55/5612911
http://korean.cri.cn/1/2004/11/05/1@23947.htm
* 주소: 山东省栖霞市迎宾路
* 전화번호 : 0535)5200799
* 입장료 : 45위엔->30위엔
* 교통 : 아래 "모씨장원" 글 참고.
* 가는 방법 추가 :
치사의 모씨장원에서 택시를 이용하시는 게 가장 빠르고 편리합니다.
모씨장원->태호궁 (기본요금 택시비 5위엔)
태호궁->치샤 장거리 버스정류장 (택시비 10위엔 내외)
* 개인적인 감상 :
매표소와 입장권에는 45위엔으로 되어있으나 실제로 30위엔을 내고 들어갔습니다.
개인적으로 흥정을 시도했던 것은 아니고, 매표소 직원이 그렇게 말하더군요.
할인 이유는 모르겠습니다만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반응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30위엔도 좀 아깝다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습니다.
정문은 道자를 흰 대리석으로 형상화한 건축물로 상당히 근사합니다.
(정문에서 사진만 찍어보시는 것도 괜찮겠습니다. -_-;;;)
내부로 들어가면 전형적인 중국의 사원 건축 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주요건물 하나와 양 옆으로 배치된 보조건축물 둘로 건축군이 있고
뒤로 계속 진입해 들어가면 역시 같은 구조의 건축군이 있는 식입니다.
불교사원과 비슷한 구조인데 탑이 있을 자리에 탑 모양의 금속향로가 놓여있는 정도의 차이입니다.
사원 내부에는 도교의 여러 진인과 옥황상제 등의 상이 모셔져있고 제단과 제물이 있습니다.
무협지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구처기"라는 이름을 들어보셨을 텐데요,
중국 도교의 한 지파인 전진교의 종파인 용문파의 창시자입니다.
(무협지 안에서는 대체로 음흉한 밀교의 수장으로 묘사되어 있지요. ^^)
태호궁은 구처기가 세운 도교사원으로 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구처기를 주존으로 왕상월, 이지상을 협시로 모신 도당이 중간에 있더군요.
지금의 모습은 평신도는 거의 보이지 않고 그저 관광지가 되어버린 듯 싶구요.
도사들이 묵는 숙소도 있고(우연히 길을 잃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_-;;)
도교사원인 것은 맞는데... 뭔가 좀 이상한 분위기였습니다.
제가 가본 다른 도관과는 다르게... 도사 수가 신도 수보다 많은 것 같았어요.
(평일 낮이었다는 점을 감안해도 좀 그랬습니다. -_-;;;)
도사에게 뭘 좀 물어보려고 하면 거대한 향을 사라고 권유하는 것도 상당히 성가셨습니다.
"내가 도교 신자도 아닌데 향을 왜 사냐"고 해도 절대 굴하지 않고 계속 권유합니다.
무료라고 말하지만 기부금을 받아내려는 것 같고 전혀 분향을 하고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갔을 때는 원래의 본관사원 뒤에 아주 거대한 건축물이 있더군요.(멀리서도 보입니다.)
흥미가 생겨서 올라가봤더니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내부에 벽화를 그리는 중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3~4층 건물 높이는 될만한 엄청난 크기의 신선상(정확히 뭔지 모르겠습니다)이 있었구요.
완공되고 나면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 참 궁금한데 갔다오신 분이 알려주심 좋겠네요.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다시 안 갈 거구요, 다른 분들께도 그리 권하고 싶지가 않아요.
모씨장원에 갔다가 나와서 오랜만에 교외에 나왔는데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들른 곳입니다.
그럼에도 중국의 도교사원에 가본적이 없는 분이라면 흥미를 느끼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에게 중국의 도교문화를 설명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면 교육적인 차원에서 가보는 것도 괜찮겠네요.
각각의 사당 입구에 중국어-영어로 병기된 안내판이 있어서 내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 관련내용
개요: 중국 도교문화의 중요한 발상지 중의 하나. 서하시 경내의 공산(公山) 밑에 자리잡고 있다.
구처기 丘處機 (1148-1227) : 자 통밀(通密). 호 장춘자(長春子). 일명 장춘진인(長春眞人). 서하 북쪽 교외 빈도리(濱都里) 마을이 고향이며 1227년 베이징에서 생애를 마감했다.
도교(道敎)의 한 파인 전진교(全眞敎)의 개조(開祖) 왕중양(王重陽)의 가르침으로 학문이 깊어져, 전진교 7진인(眞人) 중 하나가 되었으며 전진교의 한 개 종파인 용문파(龍門派)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정치적 수완이 탁월하여 금나라와 송나라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사태를 주시하다가 원나라에 협력했다. 1191년에 고향으로 귀향해 태허궁의 전신인 빈도궁을 세웠는데 당시 금나라 금장종(金章宗)황제가 "태허관"이란 편액을 하사했다. 1207년에는 원나라 귀비가 구처기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6천권의 도교 경전을 보내주기도 했다.
1222년에 서아시아 원정 중의 징기스칸의 초청을 받아 72세의 고령으로 제자인 이지상 등과 함께 멀리 서역까지 여행을 하여 징기스칸을 만난다. 현재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징기스칸을 만나고, 그곳에서 불로장수의 비결을 묻는 징기스칸에게 전진교의 가르침을 설명한다. 징기스칸은 이에 보답하여 장춘진인에게 몽골 제국의 점령지 이디서라도 전진교를 보호하는 특혜를 베풀어 준다. 이를 바탕으로 전진교는 원나라 때 크게 발전할 수 있었다.
저작으로는 [대단직지(大丹直指)], [섭생소식논(攝生消息論)]과 [명도집(鳴道集) 등이 있다. 제자 이지상이 정리한 장춘진인서유기(長春真人西遊記) 및 현풍경회록은 서역 여행 때의 기록이고, 일행이 거쳐간 당시의 몽골고원 및 중앙아시아에 대한 상당히 귀중한 자료로 현재에 내려오고 있다.
새롭게 보수공사를 마친 수 십채의 사원건물 안에는 많은 도사들이 거주하며 도학을 공부하고 있다. 다양한 법사도 진행 중에 있었으며 신도들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
* 참고자료
위키피디아, 브리태니커, 두산동아 백과사전의 "구처기"항목
http://blog.daum.net/fishman55/5612911
http://korean.cri.cn/1/2004/11/05/1@2394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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