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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대당서역기 74

작성자법천도일스님|작성시간26.06.14|조회수1 목록 댓글 0
#인도구도여행
#현장스님
#대당서역기
#gemini


대당서역기 74


네티즌의 질문에
제가 먼저 답하고
그 내용에 대하여
인공지능 Gemini가
보충설명을 하였습니다


------------


보내주신 《대당서역기》
일흔세 번째 문답 글,


아주 깊이 있게
잘 읽었습니다.


현장스님의 구법 여정을
따라가며 지리적·역사적
맥락을 짚어내시는 안목이
언제나 감탄을 자아냅니다.


​작성하신 답변은 당시의
종교적 배경(불교와
힌두교의 공존)과 현대
파키스탄의 형성 과정
(영국 독립기 분리),


그리고 서북부 카이베르
고개(Khyber Pass)를
통한 끊임없는 민족
이동의 역사를 아주
명쾌하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내용의 정확성을
위한 제언 (글리다
종족의 정체)
​'글리다 종족'**은


현장스님이
기록한 '끼라따(Kirata,
訖羅多/흘라다)' 또는
'키다라(Kidara,
寄多羅/기다라) 훈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집니다.


​정체:


이들은 중앙아시아 계열의
유목민(백훈족 또는
에프탈 계열)으로, 5~6세기경
파키스탄 북부(간다라 지역)와
인도 북부를 침략하여 수많은
사찰과 불상을 파괴하고
스님들을 박해했던
종족입니다.


현장스님이 간다라에
도착했을 때 황폐해진
사원들을 보며 이들의
잔학함을 기록에
남겼습니다.


​현 파키스탄인과의 관계:


"외부에서 끊임없이
유입되었다"고 말씀하신
대로, 이 글리다(키다라
/에프탈) 종족 역시 그
루트로 들어와 현지
주민들과 섞였습니다.


따라서 현 파키스탄 북부
주민들의 유전적·역사적
조상 중 한 줄기를
이룬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가독성을 높이기
위한 답변 보완안


​스님의 따뜻하고 친근한
어조를 그대로 살리면서,


단락의 흐름을 조금 더
매끄럽게 다듬은 추천
답변 양식입니다.


불교를 박해한 종족에 대한
설명을 살짝 얹었습니다.
​당시 현장스님이 목격하고
기록하신 '글리다(키다라 훈족)'
종족은 외부에서 흘러들어와
간다라 지방의 수많은
불법을 무너뜨린 잔인한
유목민 세력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의 파키스탄인들은
과거 이 지역을 거쳐 간
글리다 종족을 비롯해
수많은 이주민의 피가
섞인 후손들이 맞습니다.


​종교 문제에 대해 설명해
드리자면, 현장스님
당시(7세기)에는 아직
이슬람교가 인도 대륙에
들어오기 전이었습니다.


그때는 불교와 힌두교가
함께 피어나던 시대였지요.


지금의 파키스탄이
이슬람 국가가 된 것은
훗날의 일입니다.


영국으로부터 인도가
독립할 때(1947년),
이슬람교도들이 무리를
이루어 따로 세운 나라가
바로 지금의 파키스탄이기
때문에, 현재는 인구의
대부분이 이슬람교도입니다.


​오랜 세월 인도 대륙은
기온이 온화하고 물산이
풍부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풍요를 찾아
외부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민족들이 밀고 들어왔습니다.


​지리적으로 보면 이들이
들어올 수 있는 통로는
오직 지금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북부
국경지대뿐이었습니다.


중국에서 출발하신 현장스님
역시 바로 그 험난한 길을
걸어가신 것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길목(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에
먼저 살고 있던 사람들은 인도
대륙으로 치고 들어가려는
거대한 침략자들과 끊임없이
물리적으로 충돌하며 피를 섞을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고대 인류에 가장
가깝다는 드라비다족도,


​카스피해 부근에서
쳐들어온 아리아인도,


​알렉산더 대왕이
이끄는 그리스인도,


​불교를 융성시켰던
쿠샨왕조 카니시카왕의
월지족도,


​비록 정복은 실패했지만
잔인하게 밀고
들어왔던 몽골족도,


​훗날 인도 전역을 지배한
무굴제국의 유목민들도,


​모두 이 파키스탄 길목을
통해 인도 대륙을
침공하고 정복했습니다.


글리다 종족 역시 이
거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불교를 박해하며 흔적을
남긴 한 페이지입니다.


​스님의 글은 지리적 요충지가
가진 숙명과 역사적 명암을
담담하면서도 묵직하게
전달하고 있어, 읽는
이들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간다라 미술의 고향이자
현장스님의 발자취가
남은 파키스탄의 옛 역사를
이렇듯 쉽게 풀어주시니


포교원의 불자님들께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부가 될 것입니다.


------------


네티즌의 고마운 질문
덕분에 저도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부산 동래구 쇠미로
만월사 부산포교원
법천 합장


사진은 인도에 그리스문화가
들어오게된 계기를
제공한 알렉산더대왕
최대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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