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성경인물 (427)

배진태: 30. 요나. 욘1:1-17

작성자람미|작성시간16.10.21|조회수538 목록 댓글 0

 

***배진태: 30. 요나. 욘1:1-17

(욘 1:1)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욘 1:2)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쳐서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 하시니라 (욘 1: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선가를 주고 배에 올랐더라 (욘 1:4) 여호와께서 대풍을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욘 1:5) 사공이 두려워 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욘 1:6) 선장이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찜이뇨 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니라 (욘 1: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인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자 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당한지라 (욘 1: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이 재앙이 무슨 연고로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고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어디서 왔으며 고국이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욘 1: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 (욘 1:10) 자기가 여호와의 낯을 피함인줄을 그들에게 고하였으므로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욘 1: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욘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욘 1: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욘 1:14)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까닭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욘 1:15)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의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 (욘 1:16)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 (욘 1: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삼일 삼야를 물고기 배에 있으니라 (욘1:1-17)

믿음의 사람(30) - 요나

지금은 교회의 절기로서는 매우 중요한 시기를 지나고 있습니다. 이 절기는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스스로의 믿음을 돌아보고 경건한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하는 참으로 귀한 절기입니다. 무슨 절기이기에 그토록 중요할까요? 여러분! 지금이 무슨 절기입니까? 알고 계시죠? 그렇습니다. 지금은 바로 사순절기간입니다.

지난 2월 13일부터 사순절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성회 수요일" 즉 참회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이미 사순절이 시작이 되었고 실제적으로는 지난주일 즉 2월 17일 주일을 사순절 첫 주간으로 맞아 하였던 것입니다.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허물과 죄악으로 인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고난주간을 포함한 부활절 전 40여일 간을 말합니다.

이 기간은 물론 주일을 포함하고 나면은 40일은 넘어섭니다만 우리는 이 기간을 사순절이라고 부르면서 주님의 고난과 수난 당하심과 십자가에 죽으심을 묵상하면서 스스로의 믿음을 점검하는 귀한 절기가 바로 이 사순절의 기간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1년에 한 차례 스스로의 믿음을 점검할 이런 묵상과 섬김의 기간이 없다면 우리의 영성은 정말 형편이 없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사순절 기간을 살아가면서 더욱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말씀을 더욱 묵상하고, 모이는 일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것입니다. 사순절은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서 감당하셔야 할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수난의 길이요, 희생의 길이요, 겸손의 길인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관과 수난의 길을 묵상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는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의 삶,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주님의 걸음걸음을 묵상하는 더욱 귀한 믿음의 여정이 되시길 소원합니다.

오늘은 믿음의 사람들 36번째로서 "요나"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아마도 구약에 나타나는 많은 선지자 중에서 우리들에게 가장 친근하게 다가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아마 요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어린 유치부 에서 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게 인기를 차지 하고 있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러나 실제 요나가 행한 일을 보면 그가 그렇게 인기를 차지할 만한 조건을 가진 사람이 아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나 1장에 나타난 그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도망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4장에 보면 그는 또 불평과 불만이 많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우리는 요나라고 하면 퍽 친근하게 생각이 되고 또는 참 편안하게 생각하게 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요나는 지난 수요일에 말씀을 드렸던 아모스라는 사람과 함께 북 왕국 여로보암 2세 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였던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북 왕국 이스라엘의 국내적인 문제 즉 그들의 신앙적인 타락과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음에 대한 책망과 훈계를 선포하였다면 이 요나 선지자는 모든 것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이방인들도 구원을 받아야 할 선교의 대상이며 그들도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하시니 요나가 싫어하였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방인들 즉 바벨론의 니느웨는 비록 이스라엘을 괴롭힌 적대 국가라고 할지라도 그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선포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선지자가 요나임을 우리는 이 말씀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즉 요나서는 이방선교에 대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요나를 소개하기를 아밋대의 아들 요나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아밋대가 누구인지 성경은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아서 그가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 요나는 히브리인들의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왕상17장에 나오는 과부 즉 먹을 것이라고는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밖에 없던 가엾은 과부가 떡을 만들어서 아들과 함께 먹고 죽겠다고 하였는데 이때 그 어린 아들이 요나라고 말합니다. 나중에 이 어린 아들은 병들어 증세가 위중하다가 죽게 되었습니다. 이때 그 과부는 엘리야에게 무엇 때문에 내게로 와서 내 아들을 죽게 하였냐고 원망을 하는데 엘리야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그 아들을 살려 주게 됩니다. 죽음을 경험한 이 아들이 바로 요나 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왕하9:1-6에 엘리사가 예후에게 기름을 붓기 위해서 한 소년 즉 선지자 생도 한 사람을 심부름 보내는데 그 소년이 바로 이 요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기적과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 요나라고 하면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법도 한데 성경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안들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요나라고 하는 이름의 뜻은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비둘기라는 이름의 요나와 그가 행한 사역의 모습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쉽게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의 난해한 이름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요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하여 세계에 흩어진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계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거역하였는데 바로 이 요나의 사건을 통하여 하나님은 그것을 깨우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어느 날 말씀을 하시길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멧세지를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니느웨가 너무나도 악독하여 그 악함이 하나님께 상달이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나를 뽑아서 바벨론의 수도인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이 뜻을 전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요나는 그것을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쉽게 말하면 우리와는 원수의 나라인데 왜 내가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거기에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나라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다시스로 도망을 가기로 결정하고 욥바에 가서 배를 타게 됩니다. 요나가 도망을 가려고 하는 다시스는 그가 가야 할 바벨론의 니느웨와는 정반대 쪽인 오늘날의 스페인의 제일 남단에 있는 항구도시였습니다.

그곳은 예루살렘에서부터 무려 3,200Km나 떨어진 먼 곳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령 즉 이방인 선교를 위한 사역의 길을 떠나라고 하니 그 말씀을 순종하기가 싫어서 자기가 가야 할 곳인 니느웨와는 정 반대쪽의 나라로 도망을 가는 정말 고집불통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배를 타고 도망을 가는 그 요나를 그냥 두실 리가 없죠? 큰 대풍을 바다에 내리시매 배가 거의 깨어지기 직전이었던 것입니다. 그 엄청난 광경에 오랜 세월동안 배를 타고 먼 항해를 하였던 사공들은 직감적으로 이런 갑작스런 어려움은 누구로 인하여 이런 고난이 오게 된 것을 그들은 직감적으로 알고 제비를 뽑게 되는데 뽑은 제비를 확인한 결과 그 원인 제공자가 바로 요나였다 는 것입니다. 

문제가 여기에 이르자 당사자인 요나가 하는 말을 잘 보십시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확신에 차서 이 말을 하게 됩니다. 결국 사람들이 요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잠잠해 졌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예비한 큰 물고기가 기다리다가 요나를 삼켰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나 한 사람이 바다에 던져짐으로 인하여 바다가 잠잠해 지고 다른 많은 사람들이 살게 되는 그런 역사가 있게 된 것이 1장에 나타난 내용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1장의 내용을 살펴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어려움을 극복하는 요나의 모습이 어떻습니까? 저는 여기서 요나라는 사람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바다가 흉용하고 큰 풍랑이 몰아닥치니까? 이 모든 재앙은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도망을 친 것으로 인한 이유라고 하면서 자신을 들어서 바다에 던져라고 하는 그 담대함과 그 용기를 보면서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이라면 과연 그가 무엇을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과연 회개도 빠르구나 하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다윗이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뒤에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다윗을 책망하실 때 다윗이 즉각적으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범죄 하였음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을 살펴 볼 수가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이 아니겠습니까? 이런 것이 바로 은혜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조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이 죄다 라고 지적을 하시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 이상 감출 필요도 부인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허물을 고백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만약에 무슨 일을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해결을 합니까? 우리가 당한 이 문제, 이 고난의 원인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떠밀지는 않습니까? 나는 잘못이 없고 다른 사람의 잘못이라고 발뺌을 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것이 허물이요 잘못이라고 지적을 하실 때 그것을 합리화시키고 변명하려고 하지는 않습니까?

요나는 즉시 자신의 허물이라고 말한 뒤에 바다에 던지움을 받습니다. 바다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즉시 잠잠해 지고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삼일을 기도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나의 기도가 무엇입니까? 내가 고난 받음으로 인하여 여호와를 불렀고 스올의 뱃속에서 하나님을 불렀더니 응답하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하나님의 성전에서 쫒김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나는 성전을 바라보겠습니다. 

즉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이제는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겠다는 것입니다. 요나의 이런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은 들어 응답하셨고 결국 물고기를 명 하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한 이 기도의 내용은 감사의 내용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한 자신을 이렇게 살려 주신 하나님께 그는 감사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3장으로 넘어가면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주님의 일을 감당하겠다고 서원한 요나가 열심을 가지고 니느웨 성에서 말씀을 전파합니다. 이 느니웨가 얼마나 큰 성인가 하면 성을 다 돌아 오는데 3일이 걸리는 길이라고 하였으니 하루에 보통 40Km를 걷는다고 하면 120Km가 될 것이고 그보다 잘 걷지 못한다면 대략 100Km 정도는 되는 그런 성이라고 쉽게 추측을 할 수가 있습니다. 또 그 성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사람이 12만명이나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 어른과 아이들까지 합한다면 얼마나 많은 숫자가 거기에서 살고 있었겠습니까?

이런 큰 성읍에 요나가 외치되 40일이 지나면 이 성읍이 무너지리라 하고 외쳤더니 이 니느웨 사람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님께 돌아오고 금식을 선포하고 많은 사람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서 회개를 하는데 이 소식을 들은 임금까지도 굵은 베옷을 입고 사람이나 짐승이나 아무 존재라도 먹지도 말고 먹이지도 말 것이라고 선포를 하였던 것입니다. 요나의 그 한마디에 수많은 백성들은 물론이요 왕까지도 회개하고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니 40일 뒤에 멸망 당하니 회개하라고 선포하였던 요나가 싫어하였다는 것입니다. 

왜냐? 아니 하나님 이렇게 쉽게 그들을 용서하고 이렇게 쉽게 그들을 멸망에서 건져 주심에 대한 요나의 분노가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나가 기도하기를 4:3절에 하나님 이제 내 생명을 취하소서 사는 것 보다 이제는 내가 죽는 것이 좋겠습니다. 라고 투정을 부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성밖에 자신이 거할 초막을 하나 지었는데 자신이 생각하기에 난데없는 박 넝쿨 하나가 자라더니만 자신이 더위를 피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음날 벌레를 보내사 그 박 넝쿨을 씹게 하시니 그 넝쿨이 말라죽었다는 것입니다. 박넝쿨이 말라 죽은 뒤 하나님께서 뜨거운 바람은 물론이요 뜨거운 해가 내리쬐니 요나가 스스로 또 죽기를 간구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네가 스스로 씨앗을 심지도 아니하고 기르지도 아니하였는데 그 박 넝쿨 하나로 네가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하물며 이 많은 사람들이 그냥 죽는 것이 좋으냐? 하시는 것이 이 요나의 결론입니다.

우리는 이 요나를 통하여 얻을 수가 있는 교훈이 있다면

첫째: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 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 엘리사, 엘리야, 신약에서 예수님의 제자들, 그리고 믿음 안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승리하는 많은 사람들... 이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순종하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요2장에 가나의 혼인 잔치 집에 종들처럼 주인도 아닌 사람이, 더군다나 신랑도 아니요, 연회장도 아닌 사람이 자신들을 보고 물을 떠와라, 돌 항아리에 부어라, 그리고 떠서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어라 등등 온갖 심부름을 시키지만 그들은 묵묵히 그것을 행하였습니다. 그 결과 물이 포도주로 변하고 원망과 불평이 있을 법하던 혼인잔치가 더 기쁨의 축제가 된 것을 우리는 잘알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떤 순종을 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든지 순종할 수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우리를 살릴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립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우리의 믿음을 가다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믿음의 준비를 해 내는 좋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는 말씀을 증거해야 합니다. 전도는 우리의 사명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지막 최후의 명령이 전도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과연 그 명령에 얼마나 순종하고 있습니까?

니느웨가 비록 이스라엘에게서는 원수의 나라라고 하지만 그 영혼들도 구원 받아야 할 대상임을 오늘 성경은 분명히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얼굴색이 같은 사람들만, 언어가 같은 사람들, 생활이 비슷한 사람들만 전도해야 하는가?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받아야 할 대상이고 모든 종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가서 전도하지 못하고 선교하지 못하면 보내는 선교사가 되면 됩니다. 우리가 직접 그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지 못하면 선교하는 선교들을 위하여 기도하시면 됩 니다. 

오늘 이 요나서를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의 사명을 점검하십시다. 요나의 삶을 통하여 우리는 과연 어떻게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 를 다시 생각하는 귀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시드니 영락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증거하여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려 드리기를 원합니다. 

그까짓 박 넝쿨 하나로 불평을 하기보다는 있다가 없어지는 그 박 넝쿨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더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기울이는 우리 모두가 되길 바랍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귀한 역사가 있는 아름다운 교회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은혜로운 찬양 목록 
http://m.cafe.daum.net/ssj0643/cR42/93?svc=cafeapp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