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진태: 12. 솔로몬의 여인들. 왕상11:1-8
(왕상 11:1)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왕상 11:2) 여호와께서 일찌기 이 여러 국민에게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와 서로 통하지 말며 저희도 너희와 서로 통하게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저희를 연애하였더라 (왕상 11:3) 왕은 후비가 칠백인이요 빈장이 삼백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왕상 11:4)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왕상 11:5)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왕상 11:6) 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 같이 좇지 아니하고 (왕상 11:7)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왕상 11:8) 저가 또 이족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 (왕상11:1-8)
성서 속의 여인들(12) - 솔로몬의 여인들
성서 속의 여인들 오늘은 12번째로 이스라엘의 3대 임금인 솔로몬의 삶 속에 나타난 여인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솔로몬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역사에 가장 지혜로운 임금이었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의 삶의 마지막은 그렇게 아름다웠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면 왜! 가장 사랑을 많이 받은 지혜로운 왕인 솔로몬에게 마지막이 좋지 않게 마감이 되었을까? 우리는 이것을 한번 살펴 봄으로서 우리의 믿음 자세를 가다듬기를 원합니다. 우선 솔로몬의 출생을 살펴보면 그는 다윗과 밧세바라는 여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물론 이 밧세바는 우리야라는 사람의 아내였습니다. 우리야는 헷 사람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헷 사람이라는 말은 창23장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의 아내 사라를 위하여 매장지를 구입할 때 헷 사람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막벨라 동굴을 구입하게 됩니다. 이때 헷 사람이라는 말이 성경에 등장을 하는데 원래 이 민족은 가나안 원주민으로서 오랫동안 가나안 땅에서 살았던 족속입니다. 세계역사에서는 철기 문화를 가장 먼저 일으켰던 민족인 힛타이트 민족으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다윗은 그의 부하 중에 아히멜렉과 우리야를 두었는데 이들이 헷 족속입니다. 밧세바는 바로 이 우리야의 아내였습니다. 밧세바라는 이름의 뜻은 "풍요의 딸"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불러 간음한 뒤 자신의 행위가 범죄행위이고 그것이 곧 탄로가 날 줄을 알고 전쟁에 나가있는 우리야를 불렀으나 우리야는 성문에서 잠을 자고 집에 들어가지를 않으니 다윗이 요압에게 편지를 써서 저 우리야를 전쟁이 심한 지역에 보내서 죽게 하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결국 이로서 우리야는 죽게 되고 다윗은 밧세바를 합법적으로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물론 이것은 자신의 생각에서 볼 때에 합법적이라고 생각을 하였겠죠.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다윗을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책망하는 것이 삼하12장에 기록이 되어있고 이 하나님의 책망 앞에 다윗은 시편51편을 기록하면서 회개하게 됩니다. 이 일로 하나님께서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주셨던 첫 번째 아이가 태어난 지 7일만에 죽게 되는 아픔을 겪게 하였던 것을 우리는 삼하12:13-17절까지의 기록으로 잘 알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들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후에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태어난 다시 태어난 아들이 바로 솔로몬인데 하나님께서 그의 선지자 나단을 통하여 주신 이름은"여디디야"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 이름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임을 볼 때 이 솔로몬의 탄생은 하나님의 축복 속에 태어났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밧세바는 솔로몬 외에 3명의 아들이 더 있었음을 대상3:5절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어렵고 힘들었던 그 부모들과는 달리 솔로몬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그의 이복형제들의 권력싸움을 보고서 자랐습니다. 형 암논이 자신의 동생 다말을 폭행하였다는 이유로 그를 죽인 압살롬의 도망과 결국에는 아버지인 다윗을 왕위에서 쫓아낸 압살롬의 반역을 보았고 그후에 아도니야의 반역으로 또 한번 왕위 쟁탈전을 하는 그런 어려움을 솔로몬은 다 보고 자랐습니다. 그 왕위에 오르기 위하여 형제가 서로 죽이고 죽이는 안타까운 상황이 계속되는 것을 보고서 그가 과연 무엇을 생각하였겠습니까? 그러는 사이에 아버지 다윗은 이미 노쇠한 몸이 되었고 그의 모친인 밧세바의 노력으로 솔로몬이 다윗을 이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 그가 처음 왕으로 임명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때는 아주 겸손한 임금이었습니다. 왕상3장에 보시면 그가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드리는데 말이 일천번제이지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여러분들이 잘 알고 계실 줄 믿습니다. 더욱이 이 기브온은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9.6Km나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 거리를 왕복하면서 일천번제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매일 드렸다면 2년하고도 9개월이 걸렸을 것이고 만약에 1주일에 한번 제사를 드렸다면 19년 3개월이 걸렸을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기는 솔로몬이 일주일 한번만 드리지는 않았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가 매일 드렸다는 말인데 이것이 과연 쉬운 일이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일천번제의 엄청난 일을 감당하면서 그가 바로의 딸을 데려다가 자기의 아내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잠시 그의 결혼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은 앞으로 이 내용이 어떻게 전개 될 것인가? 를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과도 같은 것입니다. 바로는 애굽의 임금입니다. 그 애굽의 임금이 자신의 딸을 솔로몬의 아내로 주었다는 것은 당시에 솔로몬의 나라가 얼마나 왕성한 나라로 성장해 가는지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 솔론몬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셨던 축복은 백성들을 잘 다스리는 "지혜"와 부귀였습니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어린아이라고 말하고 이 많은 백성들을 재판 할 수 없사오니 지혜를 주옵소서 라고 기도함으로 그가 지혜를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그가 얼마나 겸손하고 지혜로웠는지 모릅니다.
사람은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면 받을수록 겸손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겸손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교만해지니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솔로몬이 산당을 헐고 성전을 건축하는데 7년의 세월이 흘렀고 자신이 살게 될 왕궁을 짓는데는 무려 13년이라는 세월이 걸렀습니다. 무려 20년의 세월 속에 백성들은 무척이나 힘들어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문제를 발견해 보아야 합니다. 왜! 그가 궁궐을 짓는데 13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을까? 물론 화려하게 짓고 웅장하게 짓다가 보니까? 그렇게 세월이 많이 걸렀겠죠? 그런데 우리는 그 문제의 답을 오늘 본문 3절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왕은 후비가 700명이고 빈장이 300명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솔로몬이 이웃 이방나라들과 서로 전쟁을 막고 함께 잘살기 위해서 정책적으로 이방인들과 결혼을 했는데 부인이 모두 1000명이라는 것입니다. 후비라는 말은 왕후라는 말이고 빈장이라는 말은 후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정말 대단한 일이지 않습니까?
출34:16절과 신7:3,4절에서 하나님은 다른 이방인들과 결혼하지 말 것을 말씀하셨는데 그 이유는 이방종교에 빠질 위험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히려 많은 이방여인들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가장 잘 지켜야 할 임금으로서 매우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솔로몬의 잘못된 믿음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그것은 그의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크게 성장시킨 것은 그의 능력이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아야 하는데 그가 그것을 알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자신의 나라를 든든히 세워가기 위해 서 많은 나라와 동맹을 맺기도 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자기 도취에 빠진 그런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이 오히려 승승장구할 때일수록 더욱 겸손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4절에 보시면 솔로몬이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을 좇게 하였기에 그 마음이 부친 다윗과 같지 아니하였고 여호와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 판단력이 떨어지게 되나 봅니다. 오늘 솔로몬이 바로 그 모습입니다. 시92:14절에 보시면 "늙어도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여 여호와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리로다" 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까? 즉 하나님 앞에 올바르게 살아가는 사람은 즉 구원의 은혜를 받고 감격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늙어도 더 많은 결실을 맺고 원숙한 믿음의 기품이 더 아름답다고 말씀하고 있고 그 아름다움은 바로 그의 삶 속에서 역사 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정직하심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한 이유는 그가 분명히 하나님의 전에 심겨져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솔로몬은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봉사하고 충성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말년이 아름답지 못함을 봅니다. 이런 문제가 어디에서 나왔는가? 그것은 자신이 자신의 믿음을 관리하지 못하였기에 그렇습니다. 자신의 믿음을 잘 관리하고 하나님 중심으로 서있었다면 결코 그는 이방여인들 때문에 하나님을 버리는 그런 안타까운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최근에 일어나는 한국정치 상황을 보면서도 사람이 마지막을 잘 마감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 하는 것을 느껴봅니다. 현직 대통령의 아들이 두 명이나 구속이 되고 그 아버지는 T.V를 통해서 대 국민사과를 몇 차례나 하게 되는 것을 볼 때 사람이 자신의 주위를 지켜 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 하는 것을 발견케 됩니다. 왜 대통령인들 자신의 아들들 단속을 잘 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제대로 안되었기에 문제가 커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을 잘 보았습니다. 아버지 다윗은 그가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철저히 의지하였고 신뢰하였기에 어려움을 겪어 내었던 그 은혜를 알았던 다윗이 결국에는 왕상2장을 통하여 아들인 자신에게 유언을 하기를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서 법률과 계명과 율례를 잘 지켜 행하라고 하였지만 그는 그것을 결국 잘 지키지 못하였고 네 자식들에게도 이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라고 하였지만 잘 가르치지 못해서 아들 르호보암 때에 가서는 나라가 두 개로 나누어지는 그런 아픔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솔로몬의 주위에 있던 여인들을 살펴보면 두 종류의 여인들이 나오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한 여인은 연약하던 솔로몬에게 왕위를 만들어준 여인이고 다른 여인들은 솔로몬의 나라를 이방신의 나라로 만들어 버린 그런 여인입니다.
첫째: 그에 왕위를 만들어 준 여인은 어머니 밧세바입니다. 밧세바. 그는 그야말로 세상의 온갖 풍상을 다 겪은 여인입니다. 그는 많은 환란과 고초를 겪었기에 세상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노련한 여인이 된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니 그가 지혜롭고 판단력이 분명한 여인이 된 것입니다. 다윗의 많은 자식들이 서로 임금이 되려고 하는 그런 혼란한 상황 속에서 그는 다윗에게 직접 나아가 후임문제를 해결을 한 것 을 보면 정말 대단한 여자다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노쇠한 다윗에게 나아가 자신의 아들 솔로몬을 단도직입적으로 후임 왕으로 결정해 줄 것을 요구한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한 치맛바람의 소유자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강한 어머니 밑에서 성장한 것이 솔로몬의 성격은 유약하고 부드러울 수밖에 더 있었겠습니까?. 그는 어머니 밧세바의 절대적인 노력으로 그냥 왕위를 넘겨받은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솔로몬으로 왕위를 이어가도록 하셨지만 말입니다. 밧세바는 선지자 나단과 제사장 사독과 군대장관 브나냐를 통하여 그의 아들 솔로몬이 임금이 되도록 배후에서 조종한 그야말로 막강한 파워를 가진 여인이었습니다. 어쩌면 솔로몬은 이 밧세바 어머니의 후광과 노력으로 왕위에 오르게 되었고 지도력을 키워나가게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많은 이방여인들입니다. 이 많은 여인들이 솔로몬으로 하여금 믿음의 판단력이 떨어지도록 하였던 것입니다. 5절에 보시면 "솔로몬이 시돈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으며 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에 산당을 지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니 그 많은 후비와 빈장들이 각기 자신의 나라 신들을 섬겼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무슨 선택받은 이스라엘의 모습입니까? 이것이 과연 말씀 안에서 축복 받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모습입니까? 솔로몬 그 한 사람이 잘못 선택하여 맺어진 정략결혼이 이토록 엄청난 형벌로 다가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이 솔로몬의 여인들을 살펴보면서 얻을 수가 있는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의 믿음의 자세입니다. 모든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영광과 욕망 때문에 많은 나라들과 동맹을 맺고 약속을 하였겠지만 하나님은 이것을 기뻐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가진 판단의 기준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판단기준이 중요함을 깨달아 주안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찾아 행하는 우리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또 하나 가질 수가 있는 교훈이 있다면 "많은 것 즉 양보다 는 단 한 개라도 질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는 무려 1000명이나 되는 부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1000명이나 되는 부인은 결국에는 자신에게 부담감입니다.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 많은 부인들을 위하여 왕궁을 13년이나 걸려서 지어야 했던 것이 아닙니까? 뿐만 아니라 식구가 많다가 보니 이 솔로몬의 하루에 사용하는 양식이 얼마나 많은가? 하면 왕상4:22절에 보면 밀가루가 30석이요, 굵은 밀가루가 60석이고 살진 소가 10마리고 초장의 소가 20마리요 양이 100마
리요 수사슴과 암사슴과 살진 새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의 축복은 축복으로 잘 관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지 그것으로 오히려 타락의 길을 걷는다면 이는 축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쓰임을 받아야 할 것이며 그것으로 인하여 우리의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또 우리 주위에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할 사람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함께 고민하고 함께 아파할 믿음의 동역자를 두어야 합니다.
솔로몬 그는 말년에 그런 믿음의 동역자를 두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솔로몬을 통하여 각기 자신의 목적을 이루려는 그 많은 여인들 사이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안타까운 솔로몬을 발견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의 동역자, 믿음의 동역자로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더욱 믿음 안에서 서로에게 유익하고 존귀한 존재가 되도록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는 좋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은혜로운 찬양 목록
http://m.cafe.daum.net/ssj0643/cR42/93?svc=cafeap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