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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강해 (93)

김영환: 기적강해 57. 귀신들린 두 청년. 마8:28-34, 막5:1-20, 눅8:26-39

작성자람미|작성시간15.03.21|조회수151 목록 댓글 0

 

***김영환: 기적강해 57. 귀신들린 두 청년. 마8:28-34, 막5:1-20, 눅8:26-39

거라사 지방에 귀신들린 두 청년이 무덤에 거하면서 사람들을 괴롭히다가 예수께서 귀신을 추방시켜 두 청년을 고쳐 주셨습니다.  귀신들은 자고 이래 유익은 조금도 없고 온전히 악독만 끼치는 존재들입니다.

주님은 이일을 통해서 두가지 중요한 사실을 가르치시려는 것이니 첫째는 모든 사탄의 권세를 정복하시는 그의 위대한 권능을 표시하려고 하는 것이요 둘째는 사람의 생명을 물질 이상으로 더 중요시 하시는 그의 위대한 사랑의 발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귀신 또는 마귀는 특별히 사람들을 불행케 합니다.  에덴 동산에서 하와를 미혹하여 하나님의 노를 받도록 한 이후 지금까지 인간들을 괴롭게 하는 데 그의 활동면을 성서에서 지적한 것을 찾아 보면

첫째, 사람의 육체를 괴롭게 합니다.
(1) 여러가지 질병을 주어 고통을 받게도 하고(막9:18-22)
(2) 점을 치는 귀신들이 사람들을 악용하기도 하고(행16:16)
(3) 사람들을 죽이려고 공갈치며 위협하기도 합니다(막9:22)

둘째, 사람들의 심령을 괴롭게 합니다.
(1) 사람들을 미혹하여 거짓으로 가르치며(딤전4:1)
(2)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이간질을 자행하기도 하고(창3:1-8)
(3) 사람들의 착한마음을 강팍하게 충동 하기도 합니다(삼상19:8-11).

그러면 다음과 같이 귀신을 쫓으신 내용을 생각해 보면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1.  인간은 무엇이든지 그것에 얽매여 살고 있음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어떤자는 탐욕에만 얽매여서 얻지도 못하는 일의 욕심에 빠져  있고, 어떤 자는 술에 중독되어 그것을 먹으면 파멸에 임하게 됨을 알면서도 절제하지 못하고, 어떤자는 도박에 빠져 경제적 손실이 있는 것을 눈앞에 당하면서도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떻한 경우에도 헤어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예수를 만나지 아니하고는 인간 스스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8:3-11)에 음행을 하다가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잡힌 여인은 율법을 범했기 때문에 당연히 돌에 맞아 죽어야 했으며 그렇다고 해서 항소도 보상도 받을 수 없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그런데 이자가 예수를 만나게 되었고 이로써 용서받고 그 율법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으로 살게 된 것입니다.

본문의 이 두청년들도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일생을 불행하게 지냈을 것입니다.  지금 나는 어느 것에 얽매여 주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하는지 자신의 생활을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그 얽매인 것에서 벗어나야 할 것입니다.  이것만이 사는 길입니다.

2.  자유 분방하려고 했다는 뜻입니다.

이 귀신들린 사람을 고랑과 쇠사슬로 묶어 집에 머물도록 그는 고랑도 쇠사슬도 다 끊어 버렸습니다.  아무도 그의 자유를 제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유를 누리려고 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어떤 제재도 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무한 자유를 누리려고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부모의 말씀도, 스승의 말씀도, 성경 말씀도, 그 누구의 말도 잘 안듣습니다.  이는 이유가 없는 반항들입니다.

오늘날 이렇게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실정입니다.  성도들이여, 우리는 하나님에 계명을 거역하지 말고, 부모님의 말씀에 순응하며, 나라의 헌법을 준수하여 인륜의 윤리를 어기지 말것이며 자기 양심의 법도를 저버리지 말고 성령으로 말미암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될 뿐 아니라 무책임한 방종을 추방하며 책임있는 자유를 누릴줄 아는 자가 되어야 사람다운 가치를 나타내며 아름다운 삶이 될 것입니다.

3.  예수를 만나야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질문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사람 자신과 죄악 사이의 생각을 단절시킴으로서 그 사람의 보다 나은 자아를 불러 일으키려고 노력하셨습니다.  그 도움에는 어떤 희망과 가능성이 있는지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주님은 귀신들에게 나오라고 단호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곧 그 사람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았습니다.

이같이 예수님을 만나서 형통한 자들을 생각해 보면 성경 여러곳에서 찾아 볼 수가 있습니다.

(1) 혈루병 여인도 예수님 만나고 12년간의 장기 병에서 고침을 받았고(마15:15-21)
(2) 38년된 앉은 뱅이도 예수님 만나고 고침 받았고(요5:1-9)
(3) 나사로 가정도 예수님이 오시니 죽은자가 살아났고(요11:44)
(4) 나인성의 과부도 예수님 만나고서 슬픔이 기쁨이 되었고(눅7:11-17)
(5) 사업에 실패만 하던 베드로도 예수님 만나고 두배에 차고 넘치는 고기를 잡았습니다(눅5:1-11).

이들과 같이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자들은 주님을 만나야 되겠습니다.  이미 주를 영접한 자들은 그에게서 떠날 생각을 하면 불행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4.  은혜를 배신하는 각박한 자들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거라사 지방의 두 청년은 귀신들로 부터
첫째, 무덤 사이에 거처를 삼기도 하고(2절)
둘째, 산과 무덤에서 소리를 지르므로 주민들을 불안케도 하고(5절)
셋째, 아무도 그들을 제어할 수 없도록 발작케 하고 (4절)
넷째, 자기 몸을 돌로 상하게도 하고(5절)
다섯째, 의복을 입지 못하게도 하고(눅8:27)

여섯째, 쇠사슬을 끊게도 하였습니다.  이같이 더러운 귀신들린 사람을 고쳐 주셨으니 즉 도저히 사람 구실을 할 수 없는자를 성하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격스럽고 고마운 일입니까.  이로써 거라사인들은 마땅히 예수께 특별한 사례를 드리고 대접이라도 했어야 마땅한데 그 지경에서 떠나시기를 요구하였습니다.  저들은 예수의 초자연적 능력을 확인하면서도 돼지의 떼죽음 같은 물질적 손실이 또 발생할가 염려되어 떠나기를 구한 것입니다.  사실 이 두 청년들은 주님께서 귀신을 내어 쫒지 아니했다면 이보다 더 많은 불행이 온다는 것을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에 붙잡힌 것을 감사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 청년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5.  인간의 생명을 가장 귀하게 여기심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귀신들을 쫓으시니 귀신들은 그 근처에 돼지떼에게 들어 가기를 원했습니다.  이는 고귀한 인간의 생명에게 귀신이 떠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귀신들이 돼지에게 들어가자 약 2,000마리의 돼지떼가 몽땅 바다에 들어가 죽었습니다.  돼지떼가 희생이 된 것이 아까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 대신 두생명의 인간이 온전해졌고 정상인으로서 생활하게 되었으며 생명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돼지 2,000마리의 값으로 계산하면 2,000 x 20만 = 4억원의 막대한 돈입니다.  그러나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두 생명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돼지 2,000마리보다 한 인간의 생명을 더 소중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인간을 가장 귀히 여기는 종교입니다.  우리 온 기독교들은 인간의 생명을 구원해 내는 선교와 교육을 위해서는 물질과 시간을 아까워 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6.  자신의 수치를 발견하면서 살으라는 것입니다.

(눅8:27) "벌거 벗었으나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했습니다.  오늘 을 사는 현대인들 중에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사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도덕적으로 부패하여 마치 옷을 벗은 상태에 있으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양심의 소리를 들으면서도 속이며 살아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삽니다.

무례한 일을 하고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릅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삽니다.  우리는 조그만한 허물에도 부끄러운 줄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특히 말세를 당한 이때에 벌거벗고 다니는 자가 되지 말고 그리스도의 옷, 세마포옷을 입고 다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한 계시록 16장15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고 하셨습니다.

7.  돈만 알고 예수의 존귀성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천 여마리의 돼지들이 떼죽음을 당하자 그 동리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떠나라고 했습니다.  이는 현대 세상도 일반입니다.  세상은 사람보다 경제를 우선적으로 사랑하는 경향이 많고 예수보다 돈을 더 환영합니다.  저들은 사람들이 온전케 된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돈만 손해 본것을 아쉽게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역사를 찬양하고 환영하려고 하지 않고 오히려 경계하며 떠나 달라고 했습니다.  은혜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돈의 가치보다 인간의 가치가 더 귀한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예수 믿고 인간이 변화되는 것을 기뻐하지 않고 돈이 좀 희생되는 것을 아쉬워합니다.  사실상 인간의 변화된 가치는 돈의 가치와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들은 예수를 추방했으니 모든 축복을 내쫓은 결과를 가져온 것입니다.  생명의 주를 떠나 보냈으니 죽음 밖에 남을 것이 없고 축복의 주님을 떠나 보냈으니 재화 밖에 남은 것이 없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린다 할지라도 예수님만은 잃지 말고 살것이며 모든 것이 다 우리에게 왔다가 지나가도 예수님만은 지나가지 못하도록 우리 마음에 항상 모시고 살 것입니다.

8.  복음 전파를 소원하시는 예수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도하시기를 원하고 계심을 알 수가 있습니다.  (눅8:39)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자기 가정으로 자기 일터로 돌아가 정상적인 일을 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자기가 체험한 은혜의 간증담과 주님이 행하신 일과 예수님에 대하여 그 온 지방에 전파했습니다.  이같이 예수님 앞에 나와 변화된 사람 그리스도안에서 온전하게 된 사람은 각각 자기 처소에서 정상적으로 살며 변화된 생활을 보여 주며 예수님께로 부터 받은 은혜를 간증하며 감사하며 예수님을 널리 전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언제나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생활을 통해서 변화된 온전한 생활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전하며 사는 성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결 론

비단 이 두 청년들뿐 아니라 그 지역 주민들도 보면 사람들은 무엇인가 매어서 그에 대한 노예로서 만족이든지 고생이든지간에 한평생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이 두 청년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아니하였으면 그 귀신의 장난으로 불행으로 세상을 마쳤을 것입니다.  또한 그곳 양돈 업자들도 돼지가 죽지 아니하였으면 그 직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종사하다가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 생활 방식을 바꾸려 했지만 이들이 받아 들이지 아니하여 영육이 불행하게 되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수님에 뜻을 알고 따르게 되었으니 천만 다행이며 더욱 오묘한 진리의 탐구로써 자유로히 복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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