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088호 토기장이 원망 말고 너 자신을 발전시켜라 (삼상16:7~13)
창세기 1장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창1:26). 그냥 대충 만드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손수 당신의 형상대로, 쓰임에 맞게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씌움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잠16:4).
그것은 마치 토기장이가 토기를 만들 때와 같습니다. 목회 전에 이천으로 도자기를 만들러 다닌 적이 있는데요. 그때 초보인 저도 ‘무엇을 만들겠다, 어디에 쓰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흙을 적당히 떼어 물레에 돌려 쓰임새에 맞게 만들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토기장이요, 우리는 그가 빚은 토기라고 비유했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사64:8). 토기장이들은 자기가 만든 토기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도 당신이 만드신 우리를 분신, 곧 자식이라 하시고, ‘나는 너희의 아버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만든 하나님께 불만이 많습니다. 이는 토기가 토기장이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격으로,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나?’ 하는 겁니다. ‘저 사람은 다리도 긴데 나는 왜 이리 짧게 만들었나?’, ‘저 사람은 머리가 좋아서 한 번만 배우면 척척 다 아는데 나는 왜 새머리인가?’, ‘저 사람은 손재주가 있는데 나는 왜 똥손?’ 등등 불만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예전부터 많았는지 성경은 일찍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아 네가 뉘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뇨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드는 권이 없느냐”(롬9:20~21).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적합하게 만드셨습니다. 당신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당신의 것을 찾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달란트를 주셨는데, 당신이 남의 것만 바라보고 부러워하느라 정작 자신의 적성, 자신의 달란트, 자신의 천직을 찾지 못했기에 당신 삶이 그 모양 그 꼴인 것입니다. 당신이 말하는 ‘성공한 저 사람’은 하나님이 특별히 신경 써서 빚으셔서가 아니라 일찍이 자기 적성을 찾고, 그것을 살려 그 우물을 깊이 팠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당신을 대충, 잘못 만들어서 당신이 성공 못한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와 적성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고, 또 그것을 하찮게 여겨 개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가 바로 사울입니다. 하나님이 사울의 겸손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지혜를 보시고 그를 이스라엘 초대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사울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잘 발전시켜 나갔더라면 그는 하나님께 버림도 받지 않았을 테고, 비참하게 최후를 맞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사울은 다윗의 것만 바라봤습니다. 다윗의 용맹함과 자신을 늘 비교했고, 다윗의 것을 탐했습니다. 이는 탐내도 빼앗을 수 없는 것이라 그를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자고로 지나친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에 이르는 법(약1:15), 토기장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토기를 아껴보지 않고 망치로 깨버리듯, 하나님이 마음에 들지 않는 사울을 깨트리셨습니다. “나 여호와가 이르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이 토기장이의 하는 것 같이 내가 능히 너희에게 행하지 못하겠느냐 이스라엘 족속아 진흙이 토기장이의 손에 있음 같이 너희가 내 손에 있느니라”(렘18:6).
여러분, 뚝배기가 ‘나도 저 항아리가 되어 많은 걸 담고 싶다.’ 해서 항아리 분량의 물을 뚝배기에 부어준다고 해도 뚝배기는 자기 분량 이상을 담을 수 없습니다. 괜히 물이 넘쳐 주변을 물바다로 만들 뿐. 의사, 판사가 좋다고 다 그 직종만 하려고 한다면 어찌 될까요? 분량이 안 되는 사람은 이루지도 못할 그 공부하느라 죽어날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성공한다는 것은 자기의 분량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지 남과 겨루어 이기는 것을 의미하지 않고,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 남들에게 좋아 보이는 곳에 이르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꽃을 좋아하고 잘 만지면 꽃 박사가 되면 성공한 것이고, 음식에 일가견이 있으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식당을 하면 성공이고, 그것이 행복입니다. ‘요리사보다 판사가 낫지.’ 이런 말도 안 되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버려야 나도 행복하고 이 사회도 발전하게 됩니다.
여러분, 70이 넘게 살아보니까 감나무가 사과나무 안 됩디다. 남자가 여자 안 됩디다. 접붙임을 해도 감나무가 사과나무가 온전히 될 수 없고, 수술을 해도 완전하게 남자가 여자가 되진 않습디다. 왜냐? 토기장이인 하나님이 애초에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괜히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고 하니까 가랑이가 찢어지는 것이고, 송충이는 갈잎을 먹으니까 배탈이 나는 겁니다. 운명론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뱁새로 태어났으면 뱁새로 멋지게 살면 되는 겁니다. 황새가 뱁새보다 더 행복하다고 누가 말합디까? 큰 그릇이 항상 좋은 것이 아닙니다. 금 그릇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비록 종지라도 내 것에 만족하고 깨끗할 때 매일 주인 밥상에 오를 수 있는 겁니다.
자동차에도 핸들과 타이어, 백미러, 다 그 기능이 다르고 하는 일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어느 것 하나 불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눈과 코, 귀, 입. 팔, 다리, 모두 생김새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지만,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다 대통령일 수 없고, 다 사장일 수 없고, 다 목사일 수 없습니다. 정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사업하는 사람도 있고,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술습득에 능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긴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저렇게 생긴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에는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고전12:28~31)라고 하셨고,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뇨’(고전12:17)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서 깨달은 것은 행복은 직업순도, 재력순도, 성적순도 아니라는 겁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 자기가 잘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삶이 신바람이 난다는 겁니다. 제아무리 명품신발이래도 안 맞으면 발이 까지고 온몸이 아픕니다. 값싼 운동화라도 내 발에 맞아야 편하지요. 남이 볼 때 좀 하찮은 일 같아도 내가 편하고 좋으면 그것이 행복인 겁니다. 그러니 제발 남의 인생을 살지 마세요. 또 대리인생도 살지 마세요. ‘나는 못했으니 내 자식만은~’ 이런 거 하지 마세요. 자식도 죽고 나도 죽습니다. 억지 춘향은 힘든 겁니다.
여러분, 인생은 보물찾기입니다. 이 보물찾기 중에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것은 내 달란트, 내 적성입니다. 그것 찾아 개발하고 집중할 때 그 분야에 최고가 되는 것입니다. 같은 씨를 심어도 토양이 맞으면 훨씬 잘 자라는 법, 남미에 가면 집채만 한 선인장이 있습니다. 토양이 맞았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되는 게 없었습니까? 당신 것이 아니라서 그런 겁니다. 이제 당신의 길, 당신의 달란트를 찾아 괘도를 수정하세요.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30배, 60배, 100배 남겨 풍성하고 행복한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고래는 바다가 제일이고 호랑이는 산에서 으뜸이다
너는 유일한 사람이다 너의 개성과 달란트를 찾아라
♣ 은혜로운 찬양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