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사업가이자 근검의 도를 설파한 교조, 요시모토 하루히코

작성자갑진|작성시간26.06.11|조회수13 목록 댓글 0

68. 사업가이자 근검의 도를 설파한 교조, 요시모토 하루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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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물에 대한 평가

 

요시모토 하루히코(吉本晴彦)는 1923년 오사카 우메다의 유서 깊은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조부 히코타로(彦太郎)에게서 근검절약을 실천하고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근검의 도를 엄격하게 전수받으며 성장했으며, 이러한 가르침은 그의 평생 인생관과 경영 철학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다.

격동의 청년기를 보내며 학도 동원을 경험하고 중국에서 종전을 맞이한 그는, 복귀 후 1946년 도시샤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함과 동시에 부동산 사업에 뛰어들어 요시모토 토지건물 주식회사 사장에 취임하였다.

사업가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1970년 자신의 반생을 담아 근검절약의 중요성을 역설한 저서 근검절약의 인생(どケチ人生)을 출간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1973년에는 대일본 근검절약 실천회(大日本どケチ教)를 설립하고 교조에 취임하며 사회적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당시 그는 산토리 부회장 토리이 미치오(鳥井道夫), 모리시타 진탄 사장 모리시타 야스시(森下泰)와 함께 오사카의 3대 근검가로 불리기도 하였다. 요시모토 하루히코(吉本晴彦)가 설립한 대일본 근검절약 실천회는 일반적인 신앙의 대상이나 교리 중심의 종교와는 성격이 다르다. 그가 교조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교라는 표현을 썼지만, 이는 실질적인 종교라기보다는 경제 철학을 공유하는 실천 공동체에 가깝다.

1976년에는 국철 오사카역 인근에 랜드마크인 원형 빌딩 오사카 마루빌딩(大阪マルビル)을 완공하고 사장직을 역임하였다. 이후 오사카 상공회의소 상임의원과 간사이 경제동우회 간사 등을 지내며 지역 경제 발전에 기여했고, 황수포장과 오사카 부지사 표창을 다수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말년에는 2004년(甲申년, 82세) 회사가 산업재생기구의 지원을 받아 다이와 하우스 공업의 자회사가 되는 경영상의 변화를 겪었으며 2017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2 요시모토 하루히코의 명조 분석

 

요시모토 하루히코(吉本晴彦)의 사주는 병화(丙火) 일간이 신유(辛酉) 월에 태어난 재격(財格) 사주이다. 명리학에서 재성이 월주에 투출하여 재기통문(財氣通門)하면 부유함을 타고난 것으로 보는데, 이 사주는 월주에 신유(辛酉) 재성이 뚜렷하게 자리하고 있어 그 발현이 매우 강하다. 특히 년간(年干)에 계수(癸水) 정관(正官)이 투출하여 재성이 관성을 생하는 재생관(財生官)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이는 재성이 노출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재물의 손실을 관성이 보호하는 격국으로, 노출된 황금보화를 관청의 보호로 지키는 형상이다.

이 사주의 핵심은 재왕신강관성위재(財旺身强官星衛財)로 요약된다. 재성(財星)이 왕성하고 일간이 강건한 가운데, 관성(官星)이 재성(財星)을 지켜주고 보호하는 구조를 완벽히 갖추었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재물 축적을 넘어, 그 재물을 지키고 사회적 명예를 유지하는 기반이 되었다. 그가 평생 동안 근검의 도를 실천하며 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오사카 마루빌딩이라는 랜드마크를 세워 경영인으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사주적 역량과 조상의 보호가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사주상 병화(丙火) 일간이 갑목(甲木) 인수를 보고 오오(午午)라는 형살(刑殺)이 자리하여 화기(火氣)가 태과하고 편고(偏枯)해질 우려가 있다. 그러나 년주(年柱)에 위치한 계해(癸亥)가 금(金)의 생조를 받아 오해암합(午亥暗合)으로 화기(火氣)를 억제하고 조정한다. 이는 조상궁(祖上宮)에 있는 관살(官殺)의 기운이 자신의 형살(刑殺)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형국이다. 결과적으로 그는 조상의 음덕(蔭德)과 혜택을 크게 입은 사주이다. 이와 같은 구조가 그가 오사카 우메다의 유서 깊은 대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부귀와 명예를 모두 갖춘 명문가 출신임을 명리학적으로 뒷받침한다. 또한 겁재(劫財)가 태과한 듯하나 금수(金水)와 목화(木火)가 상호 보완하며 각자 희신(喜神)의 역할을 수행하고 기신(忌神)이 적어 인생 전반에 걸쳐 큰 곤경 없이 평탄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었다. 이러한 팔자에서 충분히 제복이 된 목화(木火)는 기신(忌神)이 아니고 희신(喜神)의 역할을 수행한다.

 

3 요시모토 하루히코(吉本晴彦) 연혁

 

1923년(癸亥년, 1세): 오사카 우메다의 대지주 집안에서 출생. 조부 히코타로(彦太郎)로부터 극단적 절약 철학을 배움.

이후(청년기): 학도 동원을 경험하고 중국에서 종전을 맞이함.

1946년(丙戌년, 24세): 일본으로 복귀 후에 부동산 사업을 시작함. 도시샤 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함과 동시에 부동산 사업을 일으키고 요시모토 토지건물 주식회사 사장에 취임.

1970년(庚戌년, 48세): 자신의 반생을 바탕으로 절약을 권장한 저서 근검절약의 인생(どケチ人生)이 베스트셀러가 됨.

1973년(癸丑년, 51세): 대일본 근검절약 실천회(大日本どケチ教)를 설립하고 교조에 취임함. 전 산토리(サントリー) 부회장 토리이 미치오(鳥井道夫), 전 모리시타 진탄(森下仁丹) 사장 모리시타 야스시(森下泰)와 함께 오사카의 3대 근검가라고 불림.

1976년(丙辰년, 54세): 국철 오사카역 인근에 원형 빌딩 오사카 마루빌딩(大阪マルビル)을 완공함. 동 빌딩을 관리하는 오사카 마루빌딩의 사장 등을 역임함.

이후 활동기: 오사카 상공회의소 상임의원 외에 간사이 경제동우회 간사 등을 역임함. 황수포장, 오사카 부지사 표창 등을 다수 수상함.

2004년(甲申년, 82세): 회사가 산업재생기구의 지원을 받기로 결정됨. 이후 다이와 하우스 공업(大和ハウス工業)의 자회사가 됨.

2017년(丁酉년, 95세):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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