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 신사복 아오야마 상사의 창업자 아오야마 고로(青山五郞)

작성자갑진|작성시간26.06.16|조회수19 목록 댓글 0

71. 신사복 아오야마 상사의 창업자 아오야마 고로(青山五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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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물에 대한 평가

 

아오야마 고로(青山五郞)는 1930년 일본 히로시마현 후추시에서 궁대공(宮大工)이었던 부친의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궁대공은 일본 전통 건축 양식을 계승하는 전문 목수로 못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 정교한 전통 공법을 사용한다. 부친은 교육열이 매우 높았기에 형들은 도쿄대학이나 도쿄공업대학에 진학하였으나, 본인은 젊은 시절 병으로 인해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큰 좌절을 겪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역경이 훗날 경영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고백을 한다.

사회생활의 첫발은 국가 기관인 일본전매공사(日本專賣公社)에서 시작하였다. 담배와 소금 등을 관리하는 정부 산하 기관인 이곳에서 경리 업무를 담당하며 실무를 익혔다. 이후 1964년 34세의 나이로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자택을 개조하여 10평 규모의 작은 양복점을 차리며 본격적인 창업의 길로 들어섰다.

창업 초기에는 수익이 불안정했기에 양복뿐만 아니라 채소 절임(츠케모노), 건어물, 음료수 등 돈이 될 만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판매하며 어려운 시기를 견뎠다. 그는 창업 첫날부터 형제들에게 일본 제일의 양복점이 되자라고 선언하며 회사 규모가 커져도 경제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골프를 치지 않으며 자가용을 타지 않는다는 철저한 현장 경영 원칙을 세웠다. 그는 1974년 일본 최초의 교외형 신사복 전문점인 사이조점을 개점하며 업계의 상식을 뒤엎는 혁신을 선보였다. 특히 당시 업계의 관행이었던 위탁 판매 방식을 버리고 제품을 모두 현금으로 매입하는 완전 매입제를 도입하여 가격 거품을 제거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1987년에는 점포 수가 100개를 돌파하였으며 이후 성공적으로 주식 시장에 상장하였다. 아오야마 가문은 사회 각계에서 인재들을 배출하였다. 장남 아오야마 오사무는 아오야마 상사의 사장을 역임하였고, 친동생 아오야마 유키오는 전 요미우리 TV 방송 사장을, 또 다른 동생 아오야마 하루오는 제3대 히로시마현 후추시장을 지냈다.

 

2 아오야마 고로(青山五郞)의 명조 분석

 

이 명조는 계수(癸水) 일간이 인월(寅月)에 태어났으나 을묘(乙卯)가 투간하여 강한 상관격(傷官格)을 이룬다. 본래 상관격은 정관을 보면 상관견관(傷官見官)이라 하여 파격으로 논하지만, 이 사주는 인오(寅午)가 합국(合局)을 이루어 상관이 재성으로 변화하는 화상위재(化傷爲財)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상관이 재성으로 변함에 따라 재왕생관(財旺生官)의 흐름이 완성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상관생재(傷官生財)가 재생관(財生官)으로 연결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더불어 일간이 무토(戊土) 정관과 무계합(戊癸合)을 하여 관을 취하는 구조를 완성하였는데, 이는 상관생재의 사업가적 기질로 사회에 진출하여 명예와 성공을 동시에 성취하는 핵심적인 배경이 된다. 그의 사주는 식재관(食財官)이 발달하여 신약(身弱)해질 수 있는 사주이므로 일간을 돕는 비겁과 인수인 금(金)과 수(水)가 희신이 되며 목(木)은 태과할 우려가 있어 불리하다. 화(火)는 재성으로서 상관생재와 재생관 사이에서 통관 역할을 하므로 길하게 작용한다. 아오야마 고로(青山五郞)가 오화(午火) 대운인 35세에 아오야마 상사를 창업한 것은 이러한 사주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그의 사업은 40세 이후 도래한 서방금운(西方金運)과 더불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이 시기는 태과(太過)한 식상관(食傷官)이 편인(偏印)에 의해 상관패인(傷官佩印)되면서 사유(思惟)와 발상이 비범하게 승화되었다. 1974년 일본 최초의 교외형 신사복 전문점인 사이조점을 개점하며 업계의 상식을 뒤엎는 혁신을 선보였는데 특히 당시 업계의 관행이었던 위탁 판매 방식을 버리고 제품을 모두 현금으로 매입하는 완전 매입제를 도입하여 가격 거품을 제거하였다. 이러한 전략으로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제품을 공급하며 아오야마 상사를 일본 최대의 신사복 체인으로 성장시켰다.

또한 년지(年支)의 편재가 화상위재(化傷爲財)를 이끌어 내는 점은 그가 궁대공(宮大工)이었던 부친으로부터 남다른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한다. 요컨대 이 사주는 상관생재와 재생관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사업가로서의 큰 성공과 명예를 동시에 거머쥘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3 아오야마 고로(青山五郞)의 주요 연혁

 

1930년 (庚午) 1세: 3월 4일 히로시마현 아시나군(현 후추시)에서 출생한다.

1964년 (甲辰) 35세: 5월, 히로시마현 후추시에서 아오야마 상사를 설립한다.

1967년 (丁未) 38세: 10월, 신사복 판매 영업에 특화한다.

1974년 (甲寅) 45세: 4월, 첫 교외형 점포인 사이조점(西条店)을 개점한다.

1977년 (丁巳) 48세: 8월, 본사를 후추시 후추정에서 후추시 우카이정으로 이전한다.

1987년 (丁卯) 58세: 4월, 점포 수가 100개를 돌파한다. 11월, 오사카 증권거래소 제2부 및 히로시마 증권거래소에 주식 상장한다.

1990년 (庚午) 61세: 8월, 본사를 후추시 우카이정에서 히로시마현 후쿠야마시 오지정으로 이전한다. 11월, 도쿄 증권거래소 시장 제2부에 주식 상장한다.

1997년 (丁丑) 68세: 6월,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한다.

2008년 (戊子) 79세: 1월 15일, 폐렴으로 사망한다. 사후 후쿠야마시 명예시민으로 추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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